[조경에 힘쓴 장명수 제 12대 총장] 수십 년간 이어진 나무사랑, 캠퍼스에서 꽃피다
[조경에 힘쓴 장명수 제 12대 총장] 수십 년간 이어진 나무사랑, 캠퍼스에서 꽃피다
  • 전북대신문
  • 승인 2018.12.05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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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려 힘써
수많은 반대에도 애정과 정성들여 조경 조성해
지역과 함께 어우러진 캠퍼스로 지속 발전하길

 

최근 건지광장이 완공되면서 우리학교 캠퍼스 조경이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건지광장 일대의 울창한 나무들은 단연 돋보였다. 놀랍게도 나무 대부분은 매입해온 것이 아니라 캠퍼스 내의 나무를 이식한 것이었다. 바로 이 나무들을 심고 가꾼 장명수(공대‧건축) 제 12대 총장을 만나봤다.

장명수 총장은 1994년 9월, 총장으로 위임된 후 여러 방면에서 학교에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중 타 대학들보다 비교적 부족했던 조경에 눈이 갔다. 그는 조경을 위해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이는 학교의 외관만을 위한 일은 아니었다. 나무가 많은 공간에서 지낸 학생들이 삭막한 환경에서 지낸 학생들 보다 더욱 긍정적인 정서를 함양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은 학계의 여러 연구들이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줬다.

생각보다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우선 나무의 공급처 확보가 문제였다. 수많은 나무를 모두 구매하기에는 재정 상황이 넉넉지 않았다. 장명수 총장은 전주와 완주 근교 도시 계획으로 유실될 나무와 저수지로 수몰 위기에 처한 나무, 아파트 공사 등으로 뽑힐 나무들을 선별했다. 장명수 총장은 당시 변산 댐에서 수몰될 나무들을 옮겨 심을 때의 일화를 전했다. 장 총장은 “댐에서 나온 나무들을 학교에 옮겨 심으면 60% 이상 죽을 것이라며 주변에서 만류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옮겨 심은 나무에 번호를 새겨 매일 출근길에 ‘나무야 꼭 살아라’라고 말하며 토닥였다”고 전했다. 그 결과 다섯 그루를 제외한 모든 나무가 생존하는 기적과 같은 결과를 냈다.

또 다른 어려움은 구성원의 반대였다. 당시 많은 교수들이 나무 심기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 재정을 차라리 연구비로 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장 총장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구성원들을 지속적으로 설득했다”고 밝혔다. 반대했던 교수들의 연구실 앞에도 나무가 우거지기 시작하자 불만 섞인 목소리가 점차 줄었다.

장 총장은 나무 심기 외에도 또 다른 조경 사업을 진행했다. 바로 학교 정문 교체가 그것이다. 구정문은 서쪽에 있어 건물들이 왜소하게 보이는 느낌을 강하게 줬다. 그래서 장 총장은 남쪽으로 뚫린 뽕나무 밭에 새로운 정문 신축을 계획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많은 구성원이 신정문이라 부르는 정문이다. 진입로가 넓어지자 캠퍼스가 훨씬 넓어지는 효과를 낳았다.

장 총장은 좋은 공연장 하나가 구성원과 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추진한 것이 전북대학교 삼성문화회관 신축이었다. 당시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시공되기 전으로 전주에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장 총장은 수도권에 비해 문화생활의 폭이 좁은 구성원과 지역민을 생각하면 늘 안타까웠다. 삼성문화회관은 지금까지도 구성원과 지역민들의 다양한 문화생활 향유의 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장 총장은 우리학교가 현재 다양하게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전주의 훌륭한 문화 자원인 한옥마을의 풍경과도 이어져 더 나은 캠퍼스가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 무수한 노력으로 길러낸 나무가 조경에 이용돼 뿌듯함이 배가 됐다”고 전했다.

장명수 총장은 학생들에게 야망을 품으라며 조언했다. 이어 학생들이 타 수도권 대학에 주눅 들지 않고 큰 꿈을 이루기 바란다며 학생들에 대한 여전한 애정을 드러냈다.

박민하 기자 min7546@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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