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명인을 만나다 44 향토술담기 전주 이강주 조정형 명인] 미친 짓이라던 전통주에 대한 열정, 이강주 지켜냈죠
[전북의 명인을 만나다 44 향토술담기 전주 이강주 조정형 명인] 미친 짓이라던 전통주에 대한 열정, 이강주 지켜냈죠
  • 전북대신문
  • 승인 2018.12.05 13: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양주 빚는 모습 보며 자연스럽게 관심 가져
도전정신 가지고 이강주와 전통술 알리기 힘써
꿈꿨던 전통술 관련 박물관 개관 위해 준비 중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가. 꿈을 향해 발을 딛는 것이 두려운가.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전북대신문이 다양한 분야의 멘토들을 만나봤다. 자신이 정한 길에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고 담담히 역량을 키워나가 결국은 ‘명인’의 칭호를 얻은 사람들이 바로 그 주인공. 전북대신문에서 그들의 삶과 열정을 전하려 한다. <엮은이 밝힘>

▲ 어깨 너머로 배운 술 빚기

“가양주라고, 옛날엔 집집마다 빚는 술이 있었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 6호이자 전통식품명인 제 9호인 조정형 명인(78)은 이강주를 빚게 된 계기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주조법으로 만든 가양주, 명인은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가양주인 이강주를 빚는 모습을 봐 왔다. 그의 집안에서는 어머니 대까지 5대 째 이강주를 빚어왔다.

그렇다고 그가 처음부터 이강주를 빚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학교 농화학과를 졸업 한 명인의 첫 직업은 공무원이었다. 그러나 발효학을 전공한 조 명인은 지방 유수 양조회사 공장장으로 스카우트 됐다. 그곳에서 다양한 주조법을 경험하면 할수록 조 명인 마음 한 편에서는 전통주에 대한 외사랑이 커나가고 있었다. 제대로 된 전통주를 만들고 싶어졌다. 하지만 주위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젊은 시절 집에서 술을 만드는 것은 불법이었다. 술 빚는 일을 천하게 여기던 때이기도 했다. 한학자였던 부친과 가람이병기 선생을 외할아버지로 둔 조 명인의 집안 반대 역시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조정형 명인은 꿈을 꺾지 않았다. 전국을 돌며 전통주를 공부하고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가족과 직장으로부터 ‘미친 짓을 한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모아 책을 냈고 그를 바탕으로 조 명인에 대한 다큐가 제작됐다. 그의 열정 덕인지 그는 40대의 나이에 향토문화재 자리까지 오르게 됐다. 당시 향토문화재로 지정된 명인들 중 최연소였다. 그의 향토문화재 지정은 이강주가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되는 시발점이었다.

▲ 힘들게 키워낸 지금의 회사

술의 제조에 있어서는 단연 손에 꼽히는 조 명인이지만 지금과 같은 명성이 쉽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조 명인은 “향토문화재가 됐다고 바로 일이 잘 풀린 것은 아니었다”며 “서울 올림픽 개최로 정부 차원에서 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해 무형문화재 선정을 많이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나였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에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향토문화재로 선정되며 점차 이강주가 언론을 타기 시작했고 점차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회사를 견고히 다질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이의 큰 도움 덕분이었다. 조 명인은 “방송에 나온 이강주 공장을 보고 신세계 그룹에서 연락이 왔다”며 “그 곳에서 지원금을 내준 것은 물론, 유통‧판매에도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신세계 그룹의 파격적인 조건으로 조 명인은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가 운영하는 이강주 제조 회사의 기틀을 견고히 할 수 있었다. 전통주의 매력을 알아보고 거침없이 투자를 해 준 신세계 그룹 회장 및 여러 은인 덕에 이강주는 지금까지도 그 맥을 이을 수 있었던 것이다.

조 명인은 “이강주로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도움을 줬던 많은 사람들이 하나하나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며 그가 일궈낸 성과들이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조 명인은 “이강주가 남북적십자 만찬에 대표 술로 오르고 2005년 청와대의 고 노무현 대통령 설 선물에 포함된 것은 물론 현재 청와대에 납품 되는 등의 성과는 모두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 덕분”이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 이강주의 매력은 숙취 없는 개운함

이강주는 배 이(梨)와 생강 강(疆), 즉 배와 생강으로 만든 술을 말한다. 이강주에는 배와 생강뿐만 아니라 계피, 울금, 꿀이 들어가는 고급술이다. 조선시대의 3대 술 중 하나라고 기록에 남아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조 명인은 이강주의 매력에 대해 “다섯 가지 재료의 맛의 오묘한 어우러짐이 매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매력으로 그는 숙취가 없는 깔끔함을 꼽았다. 이강주에 들어간 다섯 가지 재료들이 위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조 명인은 깔끔한 이 맛을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이강주는 각 재료 간 섞는 비율이 가장 중요하다. 조 명인은 이 비율을 수백, 수십 번의 경험을 통해 익혔다. 자칫 배를 많이 넣으면 배주가 되고 생각이 많이 들어가면 생강주가 된다. 또 자연에서 나오는 재료들로 술을 담그기 때문에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재료의 맛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조 명인은 “이러한 변수들을 모두 고려한 후 머릿속에 있는 하나의 기준을 통해 각 재료의 비율을 맞춰 배합 한다”며 “이강주는 전통 술 중에서 만드는 과정이 가장 많은 술이기 때문에 주조 과정과 재료 배합 비율을 배우는 것이 까다로웠다”고 말했다.

그는 전통주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 “전통주라는 것이 국산 원료로 만들어지고 주조 과정이 까다롭다보니 젊은 세대가 마시기엔 가격적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한국 사람이 밥을 먹어야 힘이 나듯 우리의 전통 술이 우리의 몸에 잘 맞으니 한 번 마셔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전했다. 특히 조 명인은 “여러 술을 섞어 마시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며 자신에게 꼭 맞는 전통주를 젊은이들이 찾아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명인의 최종목표는 후계자 양성

조 명인은 78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건강한 모습에 오랫동안 주조 작업을 하고 싶어 할 거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그는 이미 은퇴시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조 명인은 “내가 나이에 비해 오래 활동하고 있는 편이지만 아마 85세 전으로는 은퇴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이제는 슬슬 후계자 양성에 힘을 쏟을 때 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딸에게 이강주 주조법을 가르치고 있다.

조 명인에게는 오래전부터 꿈꿔온 세 가지 목표가 있다. 학교를 세우는 것과 박물관을 만드는 것 그리고 자신의 책을 내는 것이다. 학교를 세우는 것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포기했고 책을 내는 것은 이미 세 권의 책을 출판함으로서 성공했다. 그는 이제 마지막 목표인 박물관 설립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조 명인은 우리나라의 전통주와 관련된 물품들을 수집하고 있다. 박물관이 들어설 부지도 매입해 놓은 상태다. 조 명인은 “우리 술에 대해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박물관 설립을 계획하게 됐다”며 “우리 술과 관련된 자료와 물건들로 이뤄진 박물관을 곧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명인은 오랜 시간 우리 술을 알리기 위해 활동해왔다. 그의 노력 덕에 우리의 전통 술은 널리 알려지고 또 상업화를 통해 대중에게 보급되기도 했다. 이제 그는 최종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만이 잡을 수 있는 것”이라는 조 명인은 그저 이익을 얻기 위해 술을 만드는 장사꾼이 아닌 술을 정말 사랑하고 좋아하는 기술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인생의 반 이상을 술과 함께 살아온 조정형 명인, 술과 함께 넉넉히 발효된 그의 인생은 이강주만큼 깊은 여운을 남긴다.

박청한 기자 qkrcjdgks1@jbnu.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