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NU 교양 100선 읽기프로젝트. 최인호 ‘타인의 방’
CBNU 교양 100선 읽기프로젝트. 최인호 ‘타인의 방’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03.2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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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인간 소외 현상과 불안에 주목하다

 

▲ 현실과 환상 사이 그 어디쯤에서

1970년 작가군의 선두주자, 1970년대 한국 문단의 소설 붐을 일으킨 당사자. 바로 최인호 작가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타인의 방’은 1971년 ‘문학과 지성’을 통해 발표됐다. 작품은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가 아파트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호들갑스럽게 맞이해 줄 것으로 기대한 아내가 나오지 않는다. ‘마땅히 더운 음식으로 대접 받았어야’했고 ‘정리된 시내에서 파이프를 피워 물고, 음악을 들었어야 했’던 그는 여전히 응답 없는 초인종만을 누르고 있다. 기다리고 누르기를 반복하자 이웃이 나와 ‘수금’을 하러 왔냐며 누구냐 묻는다. 수년을 살아온 아파트에서 ‘그’는 이웃 주민으로부터 낯선 사람 취급을 받는다.

겨우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내를 찾지만 아내는 없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쪽지를 발견한다.

‘여보, 오늘 아침 전보가 왔는데, 친정 아버님이 위독하시다는 거예요. 잠깐 다녀오겠어요. 당신은 피로하실 테니 제가 출장 가신 것을 잘 말씀드리겠어요. 편히 쉬세요. 밥상은 부엌에 차려 놨어요. 당신의 아내가’

‘그’가 아파트 외에 있을 때는 서술자와 등장인물의 목소리가 구분된다. 그러나 ‘그’가 아파트 내부로 들어오면서 작품은 ‘그’의 내면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집에 들어온 ‘그’는 평소와 달리 모든 것이 낯설어진다. ‘무심코 중얼거’리며 듣게 된 스스로의 목소리가 ‘타인의 소리’처럼 들리고 거울에 비친 ‘그’의 모습이 ‘뚜렷한 형상을 가지지 않은 사내가 이상하게 부풀어서 확대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다 갑자기 아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아내는 내가 출장 간 날부터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아내는 내일 저녁 내가 돌아올 것을 예측하고 잘해야 내일 모래 아침에 도착할 것이다. 다소 민망하고 부끄러워하면서 아내ᅟᅳᆫ 내게 마지막하게 사과를 할 것이다.’

그의 무의식은 극에 달한다. 그의 무의식들은 환상을 만들어낸다. ‘분명히 잠근 샤우어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고’, ‘부엌 석유곤로가 불붙고’, 스푼이 ‘비늘 번뜩이는 물고기처럼 튀어’ 오른다. 그러다 다시 보면 물건들은 ‘놀라웁게도 뻔뻔스러운 낯짝으로 제자리에 가라앉아 있’다. 어디 그뿐인가. ‘방안 어두운 구석구석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옷장의 거울과 화장대의 거울이 투명한 교미를 하는 소리도’ 들린다. 심지어 ‘소켓’은 속삭이기까지 한다. ‘그’는 이미 깊은 환상에 빠져 있다.

▲ ‘타인의 방’에 나타난 정치적 무의식

작품이 발표됐던 1970년대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격하게 이뤄지던 때였다. 공동체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삶의 근거지들은 개인으로 파편화돼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만연해지던 때였다. 사람이 직접 해왔던 분야들이 기계로 대체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급격히 소외된다. 급기야 인간보다 기계가 중요해지면서 인간은 파편화됐다.

작가는 ‘소외’와 그 속에서 양산되는 현대인의 ‘불안’에 주목했다. 일상이 일상처럼 느껴지지 않고 극심한 소외감 속에서 생각한다. 나는 누구이며 여기는 어디고 이것들은 무엇인가.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되자 모든 것들이 더 이상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한 깊은 고민들은 환상을 만들어내고 사물들을 낯설게 느끼며 급기야 가장 편안하게 영위해왔던 공간마저 타인의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비단 1970년대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에 더욱 잘 읽히는 면이 있다. 우리는 여러 통로를 통해 극심한 개인주의와 소외를 목도한다. 부패한 시신으로 발견된 고시원의 누군가, 며칠 동안 먹지 못해 쪽지로 생사를 알린 또 다른 누군가.

그들 역시 극심한 소외 속에서 자신의 방을 타인의 방으로 느끼며 환상에 갇혀 수일을 보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발표된 지 50년이 넘은 소설에서 지적한 문제들에 현대의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동조하고 있는 것은 단지 작품 자체의 훌륭함때문으로 결론 내리기엔 어딘가 씁쓸함이 남는다.

▲ 지나치기 어려운 정치적 무의식의 흔적들

1970년대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그를 위해 많은 젊은이들과 시민들이 희생을 감수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빈민이 양산됐으며 그로 인한 노동계의 문제는 극에 달았다.

그러나 작품에는 치열한 현실인식이 보이지 않는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당시 부의 상징인 아파트에서 ‘파이프를 피워 물고, 음악을’ 드는 고급 취향을 누리는 상류층으로 정도로 묘사된다.

일제 강점기가 극에 치달았던 1930년대 우리의 문학사를 되짚어보자. 당시 저항의 흔적을 담은 작품들보다 모더니즘 또는 순수의 이름을 단 작품들이 대거 발표됐다. 그들 대부분은 공통적으로 친일 문학인의 길을 걸었다. 작품 속 현실을 허무나 낭만, 초현실주의 등으로 묘사해 사회의 불합리함을 드러내고자 노력한 작가들도 있었으나 우리는 그들을 저항 정신을 지닌 문학인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타인의 방’ 역시 마찬가지이다. 모든 문제는 개인화 돼 있고 그 해법마저 환상에 빠지는 것으로 귀결된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 불의에 항거하고 있다는 증거 역시 찾기 어렵다. 단지 ‘그의 의식이 닿는 물건들마다 일제히 흔들거리면서 흥을 돋기 시작하는 것’과 ‘스스로가 ’사물‘이 되는 식의 환상에 자신을 가두는 것으로 부조리에 저항하는 형상을 표현하고 싶었을지는 모르나, 역시 우리는 그를 현실인식이 치열했던 문학인으로 부르지 않는다.

▲ 에필로그에 나타난 일상화된 소외

에필로그 쯤으로 보이는 ‘타인의 방’ 마지막 부분이 꽤 흥미롭다.

‘다음 다음 날 오후쯤 한 여인이 이 방에 들어왔다. 그녀는 방안에 누군가 침입한 흔적을 발견했다....<중략> 그러나 그녀는 곧 잊어버린 것이 없는 대신 새로운 물건이 하나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물건은 그녀가 매우 좋아했던 것이었으므로 며칠 동안은 먼지도 털고 좀 뭣하긴 하지만 키스도 하긴 했었다.’

‘한 여인’은 누구인가. 그녀가 발견한 매우 ‘새로운 물건’은 또 무엇인가. 소설에서 직접적인 언급은 없으나 ‘그’가 이틀 정도후면 돌아올 것이라 예측한 그의 아내 정도로 추측하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또한 ‘새로운 물건’ 역시 ‘그녀가 매우 좋아했던 것’이었고 익숙하게 받아 들인 것으로 보아 ‘그’ 즉, 남편으로 보인다.

헌데 그녀는 ‘별 소용이 닿지 않는 물건임을 알아차렸고 싫증이 났으므로 그 물건을 다락 잡동사니 속에 처넣’는다. 그리고 메모를 남긴다.

‘여보. 오늘 아침 전보가 왔는데 친정 아버님이....’

일상의 반복, 인간 소외의 나날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그것처럼 말이다.

이영규 객원기자

f-presiden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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