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03.2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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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모를 자신의 머리 위로 높게 던지고, 그동안 동고동락했던 선후배들과 사진을 찍는다. 축하 꽃다발을 건내는 가족과 헹가래질 하는 친구들. 지난 2월 22일, 우리 학교 학위수여식 현장의 풍경들이다.

분위기를 한껏 높이는 그들의 모습이 다른 한편으로는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보냈던 곳을 떠난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아쉬울 것이다. 더욱 요즘 같이 청년이 살기 어려운 세상 속에서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저마다의 삶을 일궈 가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학위수여식은 정들었던 공간과 사람과의 이별 뿐 아니라 누구보다 푸르렀던 자신의 청춘과의 이별이다.

고학년들의 졸업식 며칠 이후 입학식이 진행됐다. 수많은 청춘이 떠난 그 자리에 2019학번의 새로운 청춘들이 가득할 것이다. 큰 지도를 들고 강의실을 찾고 다양한 능력을 발산할 동아리를 찾고 각종 환영식에서 풋풋함을 자랑할 신입생들. 새로운 시작에 설레는 마음을 가감 없이 뽐낼 그들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며 영화 <그랜 토리노(Gran Torino, 2008)>가 생각났다.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배우이자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이 영화에는 삶을 끝낼 준비를 하는 노인과 이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어 시작할 준비를 하는 소년의 우정이 담겨있다. 물론 영화 속 노인과 소년처럼 졸업을 한 사람과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이 만나 우정을 나눌 일은 없기에 다소 이상한 생각의 전개일 수 있다. 그럼에도 본 영화가 생각난 것은 ‘누군가의 끝’과 ‘누군가의 시작’을 바라보면서, 이것이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끝 이후엔 새로운 시작이 다가온다.

끝은 항상 아쉽고, 시작은 항상 설렌다. 졸업을 아쉬워하고, 입학이 설레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니 학위수여식에서의 밝은 분위기가 아쉬움을 달래기 위함만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안에는 새로운 시작을 향한 설렘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개화와 낙화가 공존하는 봄. 누군가는 청춘을 마무리하고 누군가는 청춘을 시작할 것이다. 말 그대로 ‘청춘(靑春)’이다. 누구보다 빛났던 청춘이었고, 누구보다 빛날 그들의 청춘을 예찬하며 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

박도연(정치외교·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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