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의 어둠
마음속의 어둠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04.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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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마음속의 어둠

양승현 국어교육 14

1. 반쪽짜리 정의

오늘도 하루를 훨씬 넘긴 새벽에야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가 소리 나는 쪽으로 자꾸만 당겨졌다. 무언가에 자꾸 부딪히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뒤따라오는 것으로 보아 술도 진탕 마신 듯했다. 작년 기자 시험에 합격하여 올해 초부터 수습기자 생활을 시작한 이래, 오빠는 거의 매일을 술에 취해서 들어왔다. 알아서 자기 방에 들어가겠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마저 하던 생각을 계속했다. 내일 동아리방에 들러서 처리해야 할 일들. 한 신입생이 가입 신청서와 함께 제출한 커플링이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그 커플링은 반으로 쪼개져 있었다. 오빠가 방문을 닫는 소리가 내 방에까지 크게 울렸다. 다시 또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와 오빠도 이젠 쪼개져 이을 수 없게 된 걸까.

작년부터 멀어진 오빠와의 거리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이제는 그 거리감이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오빠가 내는 작은 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어쩌다 거실에서 눈이라도 마주칠 때면 인사말 정도는 건넸지만 이젠 그조차도 불편한 지경이다. 문제는 오빠도 나와 마찬가지일 것인데 도통 나와의 관계를 회복할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모순과 위선을 인정한다면 난 언제라도 그 불편한 관계를 회복할 의향이 있으나 오빠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집을 피우며 뻗대고만 있다.

작년, 그러니까 오빠가 군대를 막 제대하고 한창 기자 시험을 준비하던 때였다. 아버지는 기숙사에서 혼자 지내는 것보다 오빠와 함께 지내는 것이 좋겠다며 방 두 개와 거실이 딸린 빌라를 구해주셨다. 서로 친했기 때문에 같이 자취하면서도 큰 갈등 없이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빠는 거실에서 틈틈이 뉴스를 챙겨보며 각각의 기사들을 분석하곤 했는데, 나도 종종 옆에 붙어서 내 의견을 덧붙이기도 했다. 여느 날처럼 같이 뉴스를 보던 저녁이었다. 오빠는 집회 행렬을 이루는 여성들을 보고 조소하며 한숨을 쉬었다.

- 넌 저런 데 안 나가지?

아마 무심코 물어봤을 거였다. 그러나 난 그 무심한 질문에 불꽃이 일었다. 기자를 준비한다는 사람이, 무엇보다 우리 오빠가 저런 당연한 호소에도 공감하지 못한다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 오빠,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인 유교문화가 그동안 여성을 어떻게 옭아매왔는지 몰라? 지금 여성들이 모여 집회를 하고 온라인에서도 목소리를 높이는 건 지난 세월 이어져 온 불합리를 지금이라도 바로잡겠다는 거잖아.

- 불합리를 바로 잡는다. 그거 좋아. 근데 지금의 여성들은 저들만의 편익을 요구하고 있잖아. 이건 불합리를 바로 잡는다기보다는 이익집단이 목표를 이뤄내기 위한 활동에 더 가까운 거지. 그러니 진정성이 없을 수밖에. 그리고 지금 시위에 나간 여자들이 남자의 고초에 대해 이해할 수나 있겠냐? 군대부터 사회에 나가서까지 남성에게 이 사회가 지우는 짐들이 얼마나 많은데? 권리를 요구하기 전에 사회적 책임을 나눠가질 생각을 할 줄도 알아야 하는 거야.

포털사이트의 댓글 창에서나 보던 말들이 오빠의 입에서 술술 풀려 나오다니. 특히 여성들이 이익집단이라는 그 듣도 보도 못한 잡소리는 불꽃에 기름을 부었다. 성대까지 타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이성을 놓지 않으려고 애썼다.

- 오빠, 여성이 어떻게 이익집단이야? 일부의 주장을 여성 전체의 주장으로 호도하지 마. 지금 여성들이 제기하고 있는 주요한 문제들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잖아. 알면서 왜 그래? 밤길 안전하게 걷고 싶다. 화장실 안심하고 쓰고 싶다. 이런 것들. 그리고 꼭 남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같이 언급해야 돼? 성별을 떠나서, 인간으로서 도리를 지켜달라는 건데?

- 인간으로서 도리라. 말 잘했네. 시위 현장에서의 그 비윤리적인 구호들, 남성들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는 시위자들의 행태. 이런 것들은 인간으로서 도리를 지키는 행위냐? 소위 말해서 지금 집회 나가있는 여자들은 피해자라는 프레임을 저희들 스스로에게 덧씌우면서 사회적인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해. 더 웃긴 게 뭔지 알아? 그 보호라는 게 결국은 여성 전용 시설, 여성 가산점, 여성 할당제와 같은 거잖아? 결국은 지들만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을 끝내고 득의양양해 하며 나의 반론을 기다리던 그 쌍판이란. 경멸스러웠다. 곧장 자리를 박찼다. 오빠는 이 사회의 모든 여성들이 겪어 왔던, 그리고 현재 겪고 있는 온갖 부조리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설령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여성들의 힘겨운 외침을 그저 이익을 취하기 위한 행위라 지껄일 수 있을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기에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는 억압과 부조리에 대해 언급했고 오빠를 설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토록 경멸해마지않던 논리들이 오빠의 음성으로 변환되어 내 가슴을 할퀴곤 했다. 오빠는 말꼬투리를 잡아 내 진심을 소모적인 논쟁으로 이끌어갈 뿐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며 나에게 기자의 꿈을 피력해왔으나 그 정의 어디에도 여성은 없었다. 위선과 모순으로 점철된 오빠의 정의, 나를 포함한 여성의 목소리에는 귀를 막아버린 정의를 확인한 이후 난 설득을 포기했다. 내 경험상, 그런 류의 위선자들은 쉽게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못했다. 서로 부딪혀봤자 내 기운만 빠질 뿐이었고 그런 역겨운 설교도 들을 이유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오빠와의 말수도 줄어들었고 한번 멀어진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친밀했던 우리 남매의 관계가 이토록 멀어질 줄, 더군다나 내가 그토록 경멸하는 이유로 멀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급속도로 냉각된 서로의 기류가 새삼스럽게 느껴질 때면 예의 기분 나쁜 답답함이 마음을 눌러왔다. 지금처럼 잠들지 못하고 밤늦게 침대에 누워 뒤척거리고 있는 순간에는 그 답답함이 증폭되는 것만 같다. 오빠는 이런 내 심정을 알고나 있을까. 그럼에도 난 오빠에게 최대한의 배려를 베풀어주고 있다. 스스로의 잘못을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벅차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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