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 대대로 내려온 천리장, 그 명맥 유지해야죠
가문 대대로 내려온 천리장, 그 명맥 유지해야죠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04.10 10: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북의 명인을 만나다 47 완주 천리장 윤왕순 명인]

가문 대대로 내려온 천리장, 그 명맥 유지해야죠

조선시대 수라상에 올리던 고급 간장

지방적인 우둔살이 방부제 역할을 톡톡

파평 윤씨 가문 내림장, 현재 딸에게 전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가. 꿈을 향해 발을 딛는 것이 두려운가.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전북대신문이 다양한 분야의 멘토들을 만나봤다. 자신이 정한 길에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고 담담히 역량을 키워나가 결국은 ‘명인’의 칭호를 얻은 사람들이 바로 그 주인공. 전북대신문에서 그들의 삶과 열정을 전하려 한다. <엮은이 밝힘>

전주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는 완주 경천면. 시내버스와 택시를 번갈아 타며 그곳에 도착했다. 기자는 웬일로 헤매지 않고 명인의 작업소를 찾을 수 있었다. 간장의 짠 내음과 구수한 냄새가 이정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장독 사이에서 전통식품 명인 제50호로 지정된 윤왕순(69) 명인이 기자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천 리를 가도 상하지 않는 간장

윤 명인은 “천리장은 간장이야”라며 명칭을 낯설어 하는 이들이 많다며 설명을 시작했다. 천리장은 ‘천 리를 들고 가도 상하지 않는다’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상하지 않는 비결은 간장에 들어간 소의 우둔살이다. 지방이 적은 우둔살이 방부제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장조림의 간장 맛과 비슷해 사람들은 천리장을 고기장이라고도 부른다.

윤 명인은 질 좋은 장을 만들기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 직접 농사지은 콩을 전통방식 그대로 메주를 쑤고 잘 말려 곰팡이가 필 때까지 기다린다. 이후 간수가 빠진 소금물을 더해 숙성시킨다. 이를 깨끗이 거르면 천리장의 주재료인 맛이 달고 맑은 감청장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소의 볼기짝 살인 우둔살을 썰어 채반에 말린 뒤 삶고, 이를 가루로 만들어 감청장과 함께 넣어 가마솥에서 오랜 시간 졸여내면 천리장이 완성된다. 천리장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전국에서 윤 명인뿐이다. 비교적 간단해 보이지만 시도해본 사람들은 “흉내조차 쉽지 않다”라고 입을 모은다.

음식에서 천리장의 역할은 조미장이다. 쉽게 말해 조미료다. 간장을 졸여 만들기 때문에 조금만 넣어 먹어도 음식의 풍미가 달라진다. 그는 “떡국이나 만둣국 등과도 잘 어울리고 나물을 무쳐 먹어도 맛이 좋다”라고 설명했다. 천리장 만들기에 도전해 보려는 이들에게는 “조림장이라 유통기한이 길지만 오래되면 색이 변색 된다”라며 “조금씩 만들어서 간단하게 먹는 것이 좋다”라고 조언했다.

윤 명인은 천리장 외에도 소고기, 꿩고기, 닭고기, 숭어, 전복, 새우 등 다양한 식재료가 들어가는 어육장과 육포를 갈아서 넣은 육포 고추장 등도 만들고 있다.

▲300년 넘게 대대로 내려온 내림장

천리장은 우리나라 최초 음식 책인 ‘신가요록’과 ‘증보산림경제’에서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오랜 역사가 있는 전통 장으로, 파평 윤씨 가문의 내림장이다. 특히 고종에게 진상됐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아무나 맛볼 수 없는 귀한 장이다. 윤 명인은 “할머니께서 조선시대 때 궁을 자주 다니면서 천리장 만드는 법에 대해 배웠다는 말을 들었다”라고 설명했다.

윤 명인은 그의 어머니가 장 담그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보며 천리장 제조방법을 배웠다. 그는 “어머니께서 천리장을 만들기 위해 고기를 말려놓으면 몰래 먹고 간장이 있으면 몰래 가져가서 떠먹으며 천리장을 접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머니는 윤 명인을 혼내면서도 천리장을 만들 때면 딸들을 불러 모아 놓고 “배워두면 나중에 쓸 일이 있을 거야”라며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윤 명인은 초등학교 졸업 후 38년간 서울 살이 후 다시 고향에 내려왔다. 그는 “어린 시절 혼나면서 먹었던 그 맛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생각이 나더라. 장을 담그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 이상 그 맛을 재현하고 싶었다”라며 천리장을 만든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어머니의 맛과 집안의 맛을 재현하기까지 10년, 본격적으로 만든 지 20년, 총 30년이란 세월을 천리장과 함께 보냈다. 윤 명인은 “실패를 거듭해도 맛있는 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라며 “천리장을 만드는 것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다. 그만두고 싶거나 힘든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천리장의 비법은 현재 윤 명인의 딸이 배우고 있다. 그의 딸 역시 50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배움에 나이는 중요치 않다’라는 것을 증명하듯 식품 관련 전공 석사 학위를 취득 후 박사과정 중에 있다. 그는 “천리장이 후대에도 계속 보존돼 여러 사람이 맛을 봤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할 수 있을 때까지 만들고 싶어

윤왕순 명인은 다시 20대로 돌아간다 해도 역시 천리장을 만들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천리장 만의 고유 맛을 많은 이들에게 선보여 주고 싶은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명인은 “요즘 음식은 설탕이나 미원 같은 조미료가 들어가 자극적”이라며 “전통음식은 먹고 나면 개운한데 외식을 하게 되면 조미료가 첨가돼 그렇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웃이나 손님들이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맛있다는 말을 듣는 것이 가장 기분이 좋다.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나의 보람”이라고 전했다. 그는 “천리장을 통해 우리 후손들이 우리의 맛을 잊지 않도록 지금처럼 전통을 이어간다는 자부심으로, 정성 들여 장을 담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윤왕순 명인은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다 보면 길이 생길 것이다”라며 “학생들의 앞길을 응원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토종 음식에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라며 “천리장 외에도 다양한 전통음식에 관심을 갖고 직접 그 풍미를 느껴보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최기웅 기자 roal12340@jbnu.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