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명인을 만나다 45 박사골 옛날 쌀엿 원이숙 명인]”끈끈한 정으로 달콤한 엿을 만들었죠“
[전북의 명인을 만나다 45 박사골 옛날 쌀엿 원이숙 명인]”끈끈한 정으로 달콤한 엿을 만들었죠“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04.18 15: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수입으로 시작한 공장, 일자리 창출 이뤄내
엿은 건강식품이자 암 극복 도운 생명의 은인
단맛의 비결은 첨가물 NO, 오직 엿기름 사용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가. 꿈을 향해 발을 딛는 것이 두려운가.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전북대신문이 다양한 분야의 멘토들을 만나봤다. 자신이 정한 길에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고 담담히 역량을 키워나가 결국은 ‘명인’의 칭호를 얻은 사람들이 바로 그 주인공. 전북대신문에서 그들의 삶과 열정을 전하려 한다. <엮은이 밝힘>

 

▲함께 만드는 달콤한 엿

”그때 그 시절에는 집집마다 모여서 엿을 만들었지.” 엿과 33년을 함께 살아온 원이숙(71) 명인은 엿을 만들었던 계기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엿과 함께 마을을 발전시킨 명인을 고소한 냄새가 나는 삼계면 정미소 앞 엿 공장에서 만나봤다.

고소한 향기와 달콤한 맛의 매력을 가진 엿. 엿은 한국의 전통음식이자 쌀을 이용한 발효식품이다. 원 명인은 처음부터 상품의 목적으로 엿을 만들어 왔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원 명인은 33년 전 정미소를 차리기 위해 엿 공장이 위치한 임실 삼계면으로 내려오게 됐다. 처음엔 가내수공업 수준으로 엿 만들기를 시작했다. 당시엔 판매보다는 집에 귀한 손님이 오면 접대용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농가 수입으로는 자식들의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이에 당시 마을 부녀 회장이었던 그는 다른 마을들의 엿 판매 사례를 참고해 엿 판매를 마을에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삼계면 사람들은 자식 교육의 열정이 뛰어나다“며 ”일반적인 농가 수입으로는 교육비를 감당하지 못해 엿을 판매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전라북도 임실군 삼계면의 별명은 ‘박사골’이다. 인구 1600명 남짓한 지역에서 160여명의 박사가 배출됐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삼계면 사람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은 남다르다. 이후 본격적으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판매가 시작됐고, 수익이 생기면서 가내수공업 체제보다는 구체적인 사업 체제가 필요했다. 그는 ”25년 전에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엿을 만들었다“며 ”지적도하고 야단도 치며 엿 만들기를 가르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8년 전 법인화를 통해 이제는 마을 주민들 13명이 참여하면서 주민공동체 사업으로 변화하고 있다. 현재는 연 평균 3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조그마한 시골 마을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매출의 대부분 인건비로 충당되며 마을의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전북 제일의 엿

명인의 엿에는 어떠한 첨가물도 들어가지 않는다. 오직 천연재료를 이용해 엿을 만든다. 엿을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삼계면에서 친환경 재배를 통해 생산된 쌀, 겉보리, 콩, 참깨, 생강 등을 공수한다. 쌀을 포함한 재료를 세척한 뒤 고두밥을 짓는다. 된밥을 엿기름과 함께 발효를 시켜 식혜를 만든다. 이후 발효시킨 식혜를 짜 농축시킨 다음 농도를 맞춘다. 농도까지 맞추게 되면 식히고 늘이면서 엿을 완성 한다.

그는 “맛있는 엿은 좋은 쌀과 엿기름에 의해 좌우 된다”고 말했다. 명인 엿의 단맛 비결은 설탕 또는 다른 첨가물이 아닌 엿기름 바로 그 자체이다. 이를 위해 그는 2~3cm 정도 되는 새싹인 햇보리를 이용한다. 원 명인은 “새싹을 하루에 2번씩 씻는다”며 ”다른 사람들은 엿기름 만드는 것에 신경을 덜 쓰는데 우리는 과정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인다“고 엿기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엿은 건강식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엿을 섭취하면 모든 기능이 편안해 진다고 말했다. 원 명인은 ”기관지를 세척해주고 위와 같은 소화기관도 소화가 잘되도록 도와준다“며 ”엿은 건강식품으로도 정말 좋은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명인의 엿은 전통음식 부분에서 여러 번 수상할 정도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그는 ”명절 때가 되면 하루에 트럭 2~3차가 팔릴 만큼 전북 제일의 엿이 됐다“며 ”많은 사람들이 엿을 찾아줘 고맙다“고 덧붙였다.

▲암 투병에도 엿 만들기 포기 안 해

명인은 “22년 전에 유방암에 걸렸었다”며 “4명의 자식들을 두고 갈 생각에 가슴이 철렁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자녀들은 사춘기 시절이나 입시준비생이었다. 더욱 신경써야할 자식들을 두고 명인은 시련에 빠졌다. 하지만 명인은 막내가 대학교만 들어갈 때까지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런 심정으로도 명인은 엿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정성들여 엿을 만들었다. 그는 “암환자들에게 식품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맛과 더불어 건강까지 챙기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며 전했다.

마을사람들 또한 명인을 돕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섰다. 부족한 일손을 충원하기 위해 엿 만들기에 동참했다. 이런 마음들이 전해진 듯 명인은 수차례 항암 치료를 이겨 냈고 완치라는 결과를 얻었다. 그는 “아픈 상황이기에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태였다”며 “그러나 도와주는 사람들 있어 버텼다. 사람은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내 몸 챙기듯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다”고 전했다.

원이숙 명인은 학생들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살라고 조언했다. 사람은 서로 소중하기 때문에 사람을 진정성 있게 대하면 좋은 결과가 따른다는 뜻이었다. 그는 “형식적으로 실속을 찾기보다는 매순간 진실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최기웅 기자 roal12340@jbnu.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