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죽음
우리들의 죽음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05.10 10:29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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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죽음

소방서에서 근무하던 때가 떠오른다. 벌써 2년 전이다. 날 좋은 봄, 따뜻한 햇볕 아래 고양이와 함께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던 와중 다급한 출동 벨이 울린다. “구급출동 구급출동, ○○센터 구급출동 있습니다. 위치는 □□아파트, 노인이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된다고 합니다.” 느낌이 싸했다.

□□아파트는 구급대원끼리 ‘던전’이라는 별칭으로 부를 정도로 도심 속의 빈민촌이다. 가스와 물이 끊겨서 고지서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상태는 기본인 곳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방바닥에서 끈적끈적한 오물이 묻어 흰 양말이 그새 회색빛으로 변하는 곳. 집 안에 이상한 냄새가 계속 맴돌아 후각세포의 말미까지 자극하는 그런 장소였다.

그날따라 왠지 모를 깊은 한숨을 쉬면서 장비를 챙기고 구급차에 올랐다. 급하게 문을 개방하고 들어가자마자 부패한 시신의 냄새가 코를 넘어서 폐부까지 찌르고 시신은 검게 변해있다. 고독사가 분명해졌다. 워낙 뇌리에 깊숙이 각인된 탓일까, 2년간 소방서에서 봤던 이런 차가운 죽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유독 쨍쨍한 햇살 아래서 생각난다.

이 시점에서 가수 정태춘의 「우리들의 죽음」이라는 노래를 꺼내 본다. 1990년 3월 9일 한 맞벌이 부부의 자녀가 비극적으로 숨진 사건을 노래로 담았다. “부부는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가면서 부엌칼과 연탄불에 아이들 다칠까 봐 밥과 요강을 들여놓고 문에 자물쇠를 채웠다. 인근에 어린이집이 있었지만 오후 5시까지만 맡아줘 도움이 안 됐다. 방문을 열었을 때 누나는 엎드린 채, 동생은 옷가지에 코를 묻은 채 숨져 있었다. 방문에는 옅은 손톱자국이 있었다.”

노래가 나온 지 근 20년이 지났지만 ‘우리들의 죽음’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파노라마는 판자촌, 비닐하우스 촌, 쪽방, 고시원, 원룸 등 형태만 다르게 반복된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아예 없을 거라 단정하고 무심코 지나칠 뿐이다. 삶의 냉혹함은 그때 그 시절에 견줘봤을 때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우리들의 죽음’에 누가 관심을 가져주는 것일까. 우리들은 ‘우리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베네딕트 엔더슨은 “민족이란 본디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상상의 공동체”라고 했다. 과연 모두가 진정으로 같은 눈높이에서 같은 상상을 할 수 있을까. 조던 필 감독은 영화 『어스』를 통해 단절되고 분열된 미국사회를 꼬집었다. 그 대사를 짧게나마 오마주 해본다. “It’s US.”, “We are Koreans.”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 지구촌이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라냐고 물어보면 누구나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과감히 물어볼 때다. 더께처럼 내려앉은 ‘우리들의’ 절망과 체념과 실망 속에서 희망을 틔우려는 당신들의 노력은 과연 결실이 있었는가? 어느 순간 쉬어버리지 않았는가?

김원오(정치외교․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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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나민 "C" 2019-05-20 22:52:59
제목을 참 잘지었네요 ㅎㅎ

프로폴리스 2019-05-11 17:00:23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꿋꿋하게 소방 업무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복학생 2019-05-11 13:22:39
간만에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글이네요 ㅎㅎ 잘보고 갑니다!

의방 2019-05-10 23:45:28
의무소방으로 근무하셨나봐요!
저도 의방으로 근무했었는데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대학생 2019-05-10 23:23:35
정말 상황이 생생하게 느껴지네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