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잎으로 몸 보강했던 조상 지혜 전해주고파
솔잎으로 몸 보강했던 조상 지혜 전해주고파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05.10 10: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북의 명인을 만나다 48 전통주 완주 송화백일주 조영귀 명인]

 

솔잎으로 몸 보강했던 조상 지혜 전해주고파

황금빛깔과 솔잎 향이 송화백일주의 매력

고산지대 스님들의 원기를 북돋아주던 약

“수왕사와 주조장, 문화의 산실되길 바라”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가. 꿈을 향해 발을 딛는 것이 두려운가.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전북대신문이 다양한 분야의 멘토들을 만나봤다. 자신이 정한 길에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고 담담히 역량을 키워나가 결국은 ‘명인’의 칭호를 얻은 사람들이 바로 그 주인공. 전북대신문에서 그들의 삶과 열정을 전하려 한다. <엮은이 밝힘>

▲ 사찰에서 보는 성스러운 곡차 문화

봄볕이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 지난 4월의 어느 날, 수왕사가 위치한 모악산 부근에서 조영귀(71) 명인을 만났다. 조 명인은 송화백일주를 빚는 우리나라 제 1호 식품명인이다. 전통주로 불리는 송화백일주는 곡차이기도 하다. 곡차는 곡물로 만든 일종의 차다. 절에 사는 스님들은 술을 담고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차를 담고 차를 마신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술을 빚는다. 송화백일주도 이와 마찬가지다. 조 명인은 “성스러운 곡차 정신을 바탕으로 차를 만들고 차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송화백일주를 빚는다”라고 말했다.

혼자서 수양을 하는 스님들에게는 보통 세 가지 지병이 따른다. 찬 바위 위에서 참선 수양을 하다 얻는 냉병, 높은 데서 오래 살아 고산병, 먹는 것이 부실해 걸리는 영양실조가 바로 그것이다. 모악산 아래 위치한 수왕사는 전라북도에서 가장 높은 산 아래에 있는 절이다. 그렇다 보니 이곳의 스님들 역시 고산병을 피하기 힘들었다. 예부터 몸을 보강하는데 소나무를 활용했으며 송화백일주 또한 솔잎 가루로 술을 담가 차로 만든 형태이다. “우리 사찰에서는 그간 스님들이 있을 수 있는 몇 가지 병들을 예방하고 퇴치하기 위해서 이 곡차를 일주일에 한 모금씩을 마셨어요. 한두 모금을 마심으로써 기를 돌려주는 역할을 해주었죠.”

송화백일주도 제 몸을 감춰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바로 일정강점기 시절이다. 술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일본의 문화말살정책으로 당시 누룩을 만들다 걸리면 재산을 몰수하는 등 엄격한 형벌에 처해 졌다. 그는 “사실상 그때 마을의 민속주가 사라졌다”라며 “그러나 일본이 불교를 신봉하는 나라였기 때문에 절에서는 그 법에 영향을 받지 않고 술을 만들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후 86아시안게임부터 88올림픽까지 국가적 행사를 치르기에 앞서 나라에서 우리 것을 개발하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송화백일주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 수왕사와의 운명 같은 인연

조 명인은 수왕사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된 것인가? 그가 11살이던 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촌의 49재를 위해 사찰에 동행한 그는 그 자리에서 스님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그 때 당시 스님은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이 하는 것이었다”라며 “부모님의 허락을 구하기 위해 1년 동안 단식도 했다”라고 말했다. 가장 깨끗한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스님이 되겠다고 결심한 그는 집안의 반대에도 끈질기게 그의 뜻을 이어갔다.

정식으로 스님이 된 조 명인은 전국사찰을 돌기 시작했다. 처음 간 곳이 송광사 그다음 간 곳이 직지사다. 이후 금산사 쪽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조 명인이 15살이 되는 무렵 수왕사 주지스님과 딱 마주하게 된다. “그 때 주지스님이 나를 딱 보더니 그 이후로 내가 가는 사찰마다 따라와서 말씀해주시더라고. 운명적으로 수왕사를 지켜야 한다고. 결국 17살 때 수왕사를 지키게 됐죠.” 이렇게 수왕사에 입성한 그는 역대주지에게 전해지는 12대 송화백일주 기능보유자가 됐다

.

 

▲조 명인이 빚은 생명수, 송화백일주

조 명인은 송화백일주의 특징으로 고유의 황금 빛깔과 향긋한 솔잎 향을 꼽았다. 그는 솔잎, 송화가루, 산수유, 구기자, 오미자 등의 좋은 재료와 재료의 적절한 배합으로 술 고유의 빛깔과 향을 내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술의 빛깔과 향을 내기위해 고된 노력이 있었음을 알렸다.

송화백일주가 탄생하기 위해선 100일이 넘는 명인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먼저 송화가루와 솔잎 등의 재료를 깨끗한 물과 섞어 밀봉해 발효한다. 발효가 끝나면 알코올 함유량 16% 가량의 청주가 탄생한다. 이를 증류기로 끓여 알코올 함유량 40%의 증류주를 만들고 산수유나 오미자 등의 재료와 함께 100일 동안 저온 숙성을 거치면 송화백일주가 탄생한다.

조 명인은 수많은 주조 과정 중 손의 청결함을 가장 중요시했다. 그는 “티끌의 손톱 때도 허용치 않고 항상 깨끗한 손을 유지해야한다”라며 “특히 술을 만들기 전 손을 꼭 멸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평소 손에 있는 나쁜 미생물들을 제거해야 명인이 원하는 최고의 효모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조 명인은 술을 보관할 때의 온도의 중요성을 함께 강조했다. 좋은 효모를 만들기 위해서는 술의 온도를 20도로 유지해야 하며 관리를 잘못해 술의 온도가 30~40도까지 올라가면 유해한 세균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고 말했다. 명인은 최고의 술을 만들기 위해 철저한 위생과 주조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전했다.

조 명인은 이렇게 만들어진 송화백일주를 생명수라고 표현한다. 그는 “송화백일주는 단순히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 아니고 험준한 산 속에서 사는 스님들의 원기를 북돋아주는 일종의 약”이라고 전했다.

▲스님, 디자인을 만나다

조 명인에게 인생 중 가장 기뻤을 때를 묻자 포장 디자인 대상을 받았을 때라고 답했다. 그는 “나는 본래 춤이나 미술 같은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며 “벽만 보고 사는 단조로운 수행자의 삶을 벗어나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펼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과거 전남 광주를 오가며 디자인 공부를 했다. 6개월간의 디자인 공부를 마친 조 명인은 포장 디자인 대회에 출품을 하기로 마음먹고 다방면으로 고심했다. 출품하고자 한 작품은 술을 담는 병이다.

조 명인은 우리나라의 용기 문화에 대해 고민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마개가 있는 병 문화가 아니라 입구를 막지 않고 담아두는 옹기 문화”라며 “술을 병에 보관하기 위해선 마개의 존재가 필연적이었다”라고 전했다. 기존의 호리병 구조는 코르크 마개로 입구를 막아도 내용물이 쉽게 새는 구조였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물이 새지 않을만한 병의 구조를 생각해 내야 했다. 수많은 고심 끝에 그는 호리병 목에 볼록하게 튀어나와있는 부분을 없애 목을 얇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볼록한 부분을 병의 입구 쪽으로 옮겼다. 점점 좁아지는 병의 구조와 울퉁불퉁한 입구 모양 덕에 코르크 마개가 병 내부의 압력을 잘 견디게 되고 내용물이 새지 않았다. 그는 철저한 준비로 심사위원들 앞에서 성공적으로 작품 발표를 마쳐 대상의 영애를 안았다. 명인은 “수상 뒤 술병을 생산하는 공장들이 이 아이디어를 차용해 병을 생산하기 시작했다”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전통 살아있는 문화 후대에게 전하고파

조 명인은 송화백일주라는 전통이 살아있는 문화를 후대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사업인이 아니기 때문에 돈에 연연하지 않고 술을 빚어 갈 것”이라며 “현재 전수자들도 물욕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이라고 전했다. 덧붙여 조상의 지혜를 전해주는 교두보 역할에 충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지스님이며 식품 명인이기도 한 조 명인은 미래의 수왕사와 송화백일주 주조장에 대한 바람도 내비쳤다. 그는 “새로 지어지는 절이 유형문화재로 지정될 예정”이라며 “현재 무형문화재 발현의 장소인 주조장과 함께 문화의 산실이 됐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또한 새로 지어지는 절의 문을 신도들에게 활짝 열어 주지스님의 권한이었던 절의 관리를 수왕사 신도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이며 인터뷰를 마쳤다.

서도경 객원기자 dgseo611@jbnu.ac.kr

장경식 기자 guri53942@jbnu.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