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에 연연하지 않았던 장군, 독창적인 부대 지휘로 실력 인정받아
인기에 연연하지 않았던 장군, 독창적인 부대 지휘로 실력 인정받아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05.1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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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 ROTC 출신으로 장군의 반열에 오른 이순창 예비역 육군 준장

인기에 연연하지 않았던 장군, 독창적인 부대 지휘로 실력 인정받아

 

불리한 여건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 창의력과 성실함

구태의 틀 깨고 전투훈련 혁신, ‘정죽’이라는 호 받아

후배들에게 ‘뿌린 대로 거두리라’ 등 강조하며 격려

지방대 ROTC 출신으로 장군의 반열에 올라, 33년 동안 모범적인 군생활로 전북대학교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는 이순창(철학·72) 장군을 만나봤다.

철학과를 졸업한 이 장군의 어린 시절 꿈은 사실 언론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군 장교를 좋아했던 아버지의 뜻이 이 장군의 진로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ROTC 입단을 통해 장교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이순창장군은 “전라도, 비육사출신이라 어려움이 많았다”고 군생활을 회상했다.

그는 특히 “한 지휘관이 그의 상급 지휘관이나 부하들의 호(好), 불호(不好)에 맞춰서 임무를 부여하고 업무를 추진하는 소심한 태도는 지휘관의 책임을 망각한 행동이며, 자신과 부하들의 생명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자살적인 행동”이라는 신념을 견지해온 군인이었다.

당시 주류가 아닌 ROTC 출신으로, 군대에서 웬만큼 잘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 장군은 ‘비대칭 전략’을 썼다. 비대칭 전략이란 상대방의 우위 전력을 피하면서 약점이나 급소를 공격할 수 있는 전략을 말한다. 이 장군은 사관학교 출신들이 잘하지 못하는 것을 더 잘하겠다는 전략을 사용한 것이었다.

경기도 포천과 강원도 철원에서 소령으로 근무하던 당시, 그의 업무는땅굴을 탐지하는 것이었다. 이 장군은 당시 누구나 갈 수 없었던 정규 육군대학을 수료한 장교로서 “땅굴 탐지와 심리전이라는 한직을 맡은 그 시절나 자신이 너무도 한심했고, 능력이 아니라 출신을 중시하는 군의 보직행태에 대해 분노했다”고 술회했다. 하지만 굴하지 않았다. 그는 “보고서라도 잘 쓰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러한 것을 통해서라도 군 조직에서 이순창이라는 존재를 드러내야 했다.

이 장군의 존재는 군단의 작전상황 브리핑과 5분 발표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시 부대에서는 장교들이 돌아가며 주제를 선정해 군단의 전 간부들을 대상으로 5분 동안 발표를 했다. 누군가에게는 짧은 5분이었지만 이 장군은 5분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누

군가는 별 볼일 없는 보직이라 여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며 “남들과 달리 나는 내용을 모두 외워 원고를 보지 않고 발표 했다”고 말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일화다. 군단에서 상황근무를 하고 있던 어느 날 새벽, 노태우 대통령이 경기도 포천 방향으로 이동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만일 노 대통령이 군단을 방문한다면 상황브리핑을 해야 했으므로, 부대에서는 급하게 대통령에 대한 브리핑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당시 관행대로라면 대령급 이상이 브리핑을 해야 했다. 그런데 상황실에 도착한 당시의 군단장은 이 장군이 상황근무를 하고 있는 것을 보더니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당시 소령 계급에 불과했던 이 장군에서 상황 보고를 하도록 조치했다. 이 장군이 군단장에게 “그러면 대통령 브리핑 내용을 한번 시연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하자 군단장은 “이 소령이 평상시에 하던대로 브리핑을 하면 된다”고 지시하고 연습 브리핑을 받지 않았다. 브리핑실력에 대한 신뢰와 이 장군의 성실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1999년, 이 장군은 제3보병 연대장으로 근무하던 당시의 사단장으로부터 ‘정죽(程竹)’이라는 호를 받았다. 정죽은 대나무 잣대라는 뜻이다. 당시의 사단장은 ROTC 출신 장교를 썩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ROTC 출신 장교는 직무 지식도 부족하고, 부대 지휘 능력도 결여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사단장은 이 장군에게 “근무평가를 하면서 4명의 연대장 중에서 자네를 최하위로 평가했다. 그런데 6개월을 지나고 보니 내 판단이 틀렸다. 자네가 최고의 연대장이었다”고 고백했다. 이를 기점으로 그 사단장은 ROTC 출신 장교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이 장군은 그때부터 그 사단장이 ROTC 출신 장교를 판단하는 기준이 됐다. 이것이 이 장군에게 대나무 잣대라는 뜻의 호가 붙여진 이유다. 이 장군이라는 잣대를 기준으로 ROTC 출신 장교들의 합격·불합격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말이다.

이 장군은 “그 일이 있고 난 후 그 사단장은 나에 대한 신뢰를 몸소 실천해줬다”고 감사를 표명했다. 사단장은 이 장군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최하위로 평가한 근무평정을 다시 평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 장군은1999년 12월 중순에 연대장 보직이 끝나고 상급부대로 전보되는 명령을 받았는데, 그 사단장은 이 장군에 대한 사단장의 재평가를 위해서 이 장군에 대한 육군 명령 취소 건의를 하였다. “근무평정을 재평가하기 위해 사단장이 상급부대에 명령을 수정해주도록 건의하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이는 이 장군에 대한 상급 지휘관의 신뢰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이 장군의 노력은 여러 방면에서 ‘육군 최초’라는 이름을 회자되게 했다. 이 장군은 ROTC 출신 장교 중 최초로 미국에서 전략학 공부를 했다. 지난 2005년 을지훈련 시 최초로 한미연합사령관(라포트 대장)에게 직접 영어 브리핑을 했고, 육사에서 4년 동안 리더십을 강의했다. 지칠 줄 모르는 그의 노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는 “학창시절 열정적으로 배우지 못했던 아쉬움과 맘껏 공부하지 못했던 응어리를 풀려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학창시절 창의력이 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는 부대를 지휘할 때 드러난 것 같다.” 이는 수도방위사령부 예하의 사단장으로 재직했을당시 보여준 혁신적인 교육훈련 방식에서 엿볼 수 있었다. 이 장군 사단은2년 연속 교육훈련 최우수사단으로 선정돼 부대표창을 받았다.

이 장군의 교육훈련 방식은 기존 구태의 틀을 완전히 깨는 것이었다. 사단 장병들은 8시에 훈련을 시작하고 17시에 훈련을 종료하는 패턴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장군은 이러한 훈련 패턴을 과감히 개선했다. 그는 장병들에게 “전쟁이 8시에 일어나고 17시에 끝나는가? 혹서기에는 적의 공격이 없는가? 폭설이 내리면 전쟁이 없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그리고 훈련시간대를 불규칙하게 변화시키고, 혹서기와 폭설이 내리면 그러한 기상조건을 극복하는 훈련을 하도록 조치했다. 전쟁이란 상황과 시간을 봐 가며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투원들이 여러 상황에 적절하면서도 신속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의아해 하며 힘들어 하던 장병들도 점점 이 장군의 설득에 수긍하고 훈련에 잘 임해줬다.

이 장군은 후배들에게 두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는 ‘뿌린 대로 거두리라’이다. 그는 “오늘 자신이 뿌린 씨앗이 그대로 나에게 되돌아온다”는 말을 기억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창조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노력하라고 덧붙였다.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서 몰입함으로써 자신의 장점을 계발하고, 자신만의 브랜드를 갖추라는 뜻이었다. 그자신이 비대칭 전략을 인생에 빗대어 활용했던 것처럼 말이다.

둘째로 ‘You complete me’. 이순창 장군은 상대가 나를 완성시켜 주는 사람임을 인정하며 그들과 함께 살아가라고 말했다. 상대는 나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내 반쪽이기때문이다.

현재 이 장군은 모교에서 국가안보론과 전쟁사 등의 강의를 하고 있다.

후배들에게 국가안보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깨달음을 전해주고 싶다는 이장군.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지만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며 그 일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서도경 객원기자

dgseo611@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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