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사랑에 고뇌하는 청춘들에게 보내는 편지
삶과 사랑에 고뇌하는 청춘들에게 보내는 편지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05.1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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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젊은 베르터의 고뇌’

삶과 사랑에 고뇌하는 청춘들에게 보내는 편지

 

▲스물다섯 괴테의 슬픔보다 깊은 ‘고뇌’

스물다섯 살의 한 청년이 있다. 그는 고향을 떠나 베츨라에 머물며 고등법원에서 근무하던 중 샤를로테 부프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샤를로테에게는 이미 약혼자 케스트너가 있었고, 청년은 샤를로테에 대한 마음을 단념하기 위해 근무를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고향 프랑크푸르트에서 실연의 아픔을 달래며 지내던 청년은 고등법원에 근무하던 시절 알고 지내던 동료 예루잘렘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약혼자가 있던 샤를로테를 사랑한 자신처럼 결혼한 여인인 헤르트를 사랑했던 예루잘렘이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비관, 일터에서의 불화 등을 견디지 못해 케스트너에게 권총을 빌려 자살했다.

베르터의 일생과 너무도 비슷한 이 스물다섯 살의 청년은 세계적인 독일의 문학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다. 실연의 아픔과 동료의 비극적인 죽음에 괴로워하던 젊은 괴테는 자신과 예루잘렘의 경험을 담은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완성한다. 14주만에 소설을 완성한 괴테는 후에 “나는 몽유병자처럼 거의 무의식 중에 써 내려갔다. 작품을 통해 폭풍우처럼 격렬한 격정에서 구제되었고, 일생일대의 고해를 하고 난 후처럼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담고 있기엔 벅찬 마음을 작품에 담아 쏟아 낸 괴테는 고통으로부터 치유 될 수 있었고, 괴테와 같이 휘청거리던 청춘들은 그가 창조해 낸 베르터를 통해 위안 받고 공감할 수 있었다.

괴테의 첫 소설인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서한체 소설로, 빌헬름에게 편지를 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책을 펼친 독자들은 편지를 받아보는 베르터의 친구 빌헬름으로 시작해 어느새 로테를 사랑하고, 고뇌하고, 펜을 들어 편지를 쓰는 베르터가 되어 있을 것이다.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원제목의 ‘Leiden’이란 독일어 단어는 사전적인 의미에서도 심리적인 측면 뿐 아니라 신체적인 고통까지 포함하는 단어이다. 심리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해도 슬픔이라는 단편적인 감정보다는 복잡한, 슬픔을 포함한 번뇌나 정신적인 고통을 뜻한다. 지나칠 정도로 감상적이고 어린아이 같았던 베르터를 죽음으로 몰아간 격정은 ‘슬픔’보다는 ‘고뇌’로 해석하는 것이 작품 속 베르터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질풍노도의 시기와 ‘베르터 효과’

18세기 후반 유럽 청년들 사이에서 청색 코트와 노란 조끼, 그리고 권총 자살이 유행처럼 번졌다. 약 2,000여명이 베르터처럼 옷을 입고 목숨을 끊었다. 유명인의 자살에 대한 모방 자살을 뜻하는 베르터 효과는 <젊은 베르터의 고뇌>에서 시작됐다.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베르터 효과에서도 느낄 수 있듯 1774년 출간되자마자 전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괴테를 단숨에 유명 작가의 반열로 올려놓았다. ‘베르터 효과’를 불러온 자살 소동은 괴테에 대한 비난과 소설에 대한 판매 금지 요청을 불러왔고, 1775년 독일 계몽주의 작가인 크리스토프 니콜라이는 풍자 소설 <젊은 베르터의 기쁨>을 써 괴테를 비판하기도 했다.

괴테는 슈투름 운트 드랑, 즉 ‘질풍노도’ 시기의 독일 문학 운동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다. 당시 독일은 이성과 합리만을 중시하는 계몽주의가 지배적이었다. 슈투름 운트 드랑은 이성에만 편중되어 인간 본연의 감정을 무시하는 무미건조한 형식주의를 타파하고 생명과 자유, 개성의 해방에 목적을 갖고 있었다.

로테를 향한 베르터의 사랑이 아무리 안타깝고 절절해도 작품 속 주인공의 죽음을 모방할 정도로 동일시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단순히 비극적인 사랑과 실연을 다룬 연애소설이 아닌 사회적 통념과 시대에 대한 저항, 실현될 수 없는 이상에 대한 좌절을 정열적으로 풀어낸 작품이기에 당시 청년들의 집단적인 열망을 대변했고 그들의 정신세계에 강력한 호소력을 갖게 되었다. 합리적인 감정 절제에 반발하여 극단적인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한 슈투름 운트 드랑 문학 운동의 대표작이자 구심 역할을 한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당시 유럽의 시대와 떼어놓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괴테는 1786년 귀족 사회에 대한 비판을 완화하고 편집자의 역할이 두드러진 개작본을 완성했고, 지금 읽을 수 있는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이때 만들어진 개작본이다.

18세기의 예술이나 문학작품의 본질적인 기능은 장르를 막론하고 독자에게 오락과 교훈을 제공하는 것이었고, 기독교적 관념에 따라 자살은 죄악으로 여겨졌다. 때문에 장래가 유망한 예술가 청년이 사랑에 실패하고 자살한다는 결말은 신선하고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자살을 옹호하고 미화한다는 비난도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 때문에 독자들은 ‘베르터는 왜 자살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현실 속 우리의 모습을 닮은 ‘베르터’

젊은 변호사인 베르터는 상속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간 마을 발하임에서 로테라는 여인을 만난다. 그는 그녀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로테를 사랑하게 된다. “나는 아침에 해가 뜨자마자 발하임으로 가서 그곳 주막집의 채소밭에서 완두콩을 따고 자리 잡고 앉아서 콩껍질의 심줄을 떼어내면서 호메로스의 작품을 읽는다. 내 기분은 정말로 흐뭇하다. 인간의 솔직하고 허식없는 기쁨을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라는 편지를 통해 베르터의 안정된 정신세계와 가식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로테의 약혼자 알베르트가 돌아오자 베르터는 로테를 잊기 위해 발하임을 떠나 공사관에서 근무하기로 결심한다. 자신을 잘 이해해주는 B양과 C백작을 만나는 등 도시 나름의 기쁨도 있었지만 상사인 공사와의 마찰이 심화되며 베르터는 심한 ‘직장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러던 와중 로테와 알베르트가 자신에게 이야기도 없이 이미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상실감과 허무감에 빠진다.

베르터는 편지를 통해 “공사가 ‘이것도 틀리지는 않았지만 다시 꼼꼼히 검토해보게’라며 문서를 도로 내밀 때마다 나는 미칠 지경이 된다”며 호소하거나 “접속사 하나도 빼놓아서는 안 되고 내가 즐겨 쓰는 문장에 도치법이라도 튀어나오면 그는 질색을 한다”며 사소한 것 하나까지 부딪히는 모습을 보인다. 인내심이 바닥난 베르터는 공사에게 반발하고 결국 장관으로부터 견책 지시를 받는다. 후에 C백작의 초대를 받아 나간 모임에선 사교계에서 따돌림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B양 역시 자신으로 인해 곤란함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안 베르터는 공사관에 사표를 내고 로테가 있는 발하임으로 돌아간다.

베르터의 내면 심리가 악화되면서 가상의 화자가 끼어들고, 작품의 끝 부분은 베르터가 죽기 직전에 남긴 쪽지와 글줄들로 이루어진다. 그가 정기적으로 편지나 일기를 쓰지 못할만큼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려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호메로스를 읽으며 마음의 위안을 얻던 베르터는 “오시안이 내 마음속에서 호메로스를 쫓아버렸네”라고 말한다. 죽음과 우울한 낭만적인 정서를 노래하는 오시안에 흠뻑 빠져들며 죽음에 대한 동경이 깊어진다.

로테와 알베르트는 돌아온 베르터를 반기며 따듯하게 보살펴준다. 하지만 그럴수록 깊어지는 로테에 대한 사랑과 집착은 불안정한 상태의 베르터를 점점 더 갉아먹는다. 로테와 베르터에 대한 소문이 돌자 알베르트는 로테에게 베르터와의 관계를 정리할 것을 부탁한다. 로테를 만나 오시안의 노래를 읽던 베르터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채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로테는 그를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며 결별을 선언한다. 서서히 황폐해져가던 그의 내면은 결정적으로 붕괴하고, 다음날 아침 베르터는 알베르트에게 여행을 떠난다는 구실로 권총을 빌려 자살한다. 그는 그의 희망대로 로테를 만날 때 입었던 노란 조끼와 청색 코트를 입고 매장되었다.

우리는 가끔 깊고 진한 그리움, 우울함, 벅찬 설렘과 같은 자각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책이나 영화, 노래를 통해 마주치곤 한다. 감정에 충실한 것이 죄가 되는 시대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자기 자신의 감정에 잠겨버린, 침전하는 감정 속에서 벗어날 의지를 잃고 스스로를 파멸시킨 베르터를 떠올리면 공허와 먹먹함이 마음을 채운다. 사랑을 잃고 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인간관계에 실패한 베르터를 마냥 타자로 두고 선을 긋기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은 ‘아픔을 딛고 성장하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아픔을 아픔 자체로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게 되는 긴 여운을 통해 위안을 준다. 슬플 때 듣는 이별 노래 같은 소설,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통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깊이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김혜경 객원기자

wkj12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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