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의 어둠
마음속의 어둠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05.1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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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어둠

3. 오빠의 목검

1교시 수업이 있지만 오늘도 결석해야 할 것 같다. 집회 물품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손질이 필요한 것들은 미리 분류를 해둬야 했는데 학기 초의 행사들과 일정이 겹쳐서 시작도 못한 상태였다. 무심코 시계를 보니 벌써 9시가 넘었다. 요즘 들어서 학점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생각이 불현 듯 스쳤다. 집회신고서 제출과 플랜카드와 팻말 준비 등으로 일주일 내내 전공 공부할 시간 따위는 나질 않았다. 그렇다고 동아리에 할애하는 시간을 줄이고 싶지는 않다. 집회에 참여하면서 여성이기에 간직해야만 했던 마음 속 응어리를 뱉어낼 수 있었고 그때만큼은 예의 답답증도 얼씬할 수 없었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에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우리 신문사에서 내일 너희 학교 집회 취재 간다는데 내가 갈 수도 있어.’

이것은 동생을 위한 오빠의 배려인가? 그렇다면 집회를 위해 사전 정보를 제공하는 격이었다. 그럴 의도는 분명 아닐 텐데. 뒤이어 문자가 하나 더 왔다.

‘네가 동아리 회장이었냐? 즉석에서 주최 측 인터뷰를 한다는데 신문에 네 사진 나갈 수 있음.’

‘난 상관없어. 기사나 객관적으로 써줘.’

답장을 보내고 나서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오빠가 취재에 나온다면 내 목소리를, 우리 여성들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들려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오빠가 알아챈 이상 부모님에게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어떤 직업을 희망하는지 말은 해둬야 했다. 오빠가 먼저 나불대기 전에 말이다.

집에 들어와 보니 오빠의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6시가 조금 넘은 이 시간에 오빠가 집에 있는 일은 드물었다. 살짝 열려 있는 방문 안을 들여다보니 오빠가 노트북을 응시하며 무언가에 열중해 있다. 또 그 반쪽짜리 정의를 위해 끙끙대고 있을 것이다. 몇 시에 취재하러 올 건지 묻고 이왕이면 오빠가 취재를 나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덧붙이려 했으나 방해는 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내 방으로 들어왔다. 집중하고 있는 오빠의 옆얼굴에는 아직도 어렸을 적 검정색 목검을 들고 진지하게 자세를 잡던 그 얼굴이 남아있었다.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도 어린애 같은 모습이 남아있는 거겠지.

내가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오빠는 검도 학원엘 다니고 있었다. 아빠는 그런 오빠에게 검정색 목검까지 사다주며 집에서까지 연습을 시켰다. 검을 들고 연습하던 오빠를 보면서 나도 목검을 사달라고 아빠에게 떼를 썼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았다.

“여자애가 무슨 목검이냐. 위험하다.”

얼마 후에 우리 남매는 목검을 두고 대판 싸웠다. 그저 오빠처럼 자세를 잡아보고 싶었을 뿐인데 오빠는 내가 목검을 쥐는 것도 허용해주지 않았다. 목검을 빼앗으려 하자 오빠는 내 허리를 목검으로 가격했고 나도 질세라 오빠에게 달려들면서 한바탕 뒹굴었다. 얼마나 격렬한 싸움이었는지 거실에 놓여있던 화분이 넘어져 깨져있는 것도 보지 못했었다. 그러던 중 느닷없는 호통에 뒤를 돌아보니 부모님이 현관에 서서 우리를 째려보고 계셨다. 아빠가 화를 낼 때 특유의 음색과 고막을 울릴 만큼의 고함이 연달아 귀에 꽂혔고 그 섬뜩함은 가슴을 답답하게 채워나갔다.

- 벽 보고 서!

풀 먹은 듯 빳빳하게 굳어 있던 오빠가 벽을 보고 섰고 아빠는 그 목검으로 오빠의 둔부를 수차례 내리쳤다.

- 동생을 보호해주지는 못할망정, 다치면 어쩌려고!

-오빠한테 대드는 건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냐?

매질을 끝낸 아빠는 나를 향해 소리를 질렀고 오빠를 대하는 내 태도나 여자아이답지 않은 행실에 대해서 지적했다. 그때 난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아마 오빠도 나와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그날 이후 목검은 서재 한 편에 자리를 잡았고 우리 남매가 어떤 문제를 일으킬 때면 아빠는 그 검정색 목검을 들곤 하였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아빠는 나에게만큼은 매를 대지 않았다. 설령 우리 남매가 모두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오빠에게만 매를 대었고, 난 그 뒤에서 방을 울리는 둔탁한 소리들을 들어야만 했다. 매질은 오빠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도 계속되었는데, 그때쯤은 우리 남매도 매를 맞지 않아도, 데시벨을 높여 고막을 울리지 않아도 충분히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나이였다. 어째서 폭력적인 수단으로만 우리의 잘못을 대하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아빠의 유별난 교육법이 나에게 남긴 것은 어린 시절의 상처뿐이었다.

벌써 자정이 넘었다. 저녁밥 먹을 생각도 못 하고 내일 집회에서 낭독할 연설문을 수정하는 데 온 정신을 쏟고 있었다. 오빠가 여전히 그 미성숙한 얼굴을 보이며 몰두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거실로 나와 냉장고에서 요기 거리를 꺼내고 오빠의 방을 들여다봤다. 오빠는 전등도 끄지 않은 채 침대에 대자로 드러누워 자고 있다. 전등이 불룩 솟아 있는 오빠의 배를 비추었다. 몸 관리 하나는 철저했던 사람이 뭐가 그리 바쁘다고 저 모양이 됐을까. 아마 술배가 아닐까. 오빠라면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권하는 족족 다 받아마셨을 것이었다. 아빠의 매질을 가해지는 대로 받아냈던 것처럼. 한심했다. 우직하고도 미련한 면들은 모든 남성의 공통된 천성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남자는 이성이 발달한다는데, 이러한 면들 또한 기득권을 지켜내기 위한 고단수의 계략일 수도 있겠다. 이런 태생적인 차이가 남성으로 하여금 여성에 대한 공감을 막는 것은 아닐까. 또 머리가 심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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