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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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05.2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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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세평

 

퍼스 산책

 

보들레르와 벤야민의 파리, 버지니아 울프의 런던, 박태원의 경성인 양, 캠퍼스를 거닐어 본다. 한국전쟁이 끝난 폐허 위에서 현대식 교육을 통해 지역과 국가를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세워진 서양식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발걸음을 조금 옮겨 두 학생회관 사이에서 전에는 눈에 잘 띄지 않던 비석을 발견하게 된다. 덕진공원 기념비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고 앞에는 1933에 전주읍장이었던 일본인이 덕진공원 완공을 기념해서 세운 비가 있고 여산군수와 중추원참의를 역임한 박기순의 노고를 치하하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고 적힌 안내판이 서 있다. 박기순의 친일행적 때문인지 비에는 시멘트와 붉은 페인트로 글씨를 지우려 한 분노의 흔적이 남겨져 있다. “부끄러운 과거를 후예들에게 역사적 교훈으로 남기고자” 반민족 행위자의 흔적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기로 결정한 대학의 대응이 역사를 대하는 성숙한 자세로 보인다. 치욕스런 과거의 흔적을 지우거나 미화시키려고 하는 작금의 많은 시도를 부끄럽게 만들기 충분하다.

한 걸을 뒤로 물러선 바닥에서 1980년 5월 18일 새벽 이세종 선배가 계엄군에 쫓기다 학생회관 옥상에서 떨어진 위치를 표시한 안내문을 발견한다. 무거운 발걸음을 이세종 광장으로 옮겨 “다시 살아 하늘을 보고 싶다”고 적힌 이세종 열사를 기리는 비석 앞에 선다. 그 때 오월 하늘도 이렇게 높고 파랗겠지. 이토록 시리게 아름다운 하늘 아래서 그렇게도 잔인한 학살을 자행할 수 있었는지 믿기지가 않을 정도다. 그의 몫으로 하늘을 한 번 더 바라본 뒤 시야는 과학관 벽화로 향한다. 넓게 편 전봉준의 팔과 등 위로 죽창 든 농민과 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젊은이 남과 북이 함께 하는 통일의 날이 표현돼 있다. 그 그림에는 “척양척왜”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올해부터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 동학농민봉기의 이념을 축약한 구호리라. 정부의 폭력성과, 무능함, 무책임이 어우러져 백성이 정부를 향해 무기를 들도록 내몰던 사건의 뿌리는 이토록 깊다.

“척양척왜”란 구호 속에 담겨진 당시 지식인들의 협소한 시야와 무책임도 잊어선 안 된다. 이 이념은 “반전반핵, 양키 고 홈”으로 변주되어 이 캠퍼스를 휩쓸었다. 역사적 모순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담은 구호가 백년을 사이에 두고도 크게 변하지 않았단 사실에 놀란다. 어느 순간 “반핵”이란 구호는 우리 귀에서 슬그머니 사라졌지. 이 광장에서 모의 전통혼례를 거행하고 사물놀이와 탈춤공연을 올리던 그 때의 이념과 정서가 저 앞에 보이는 한옥건물을 건축하는 데 바탕이 되었으리라. 구도청청사 자리에 과학박물관 같은 현재와 미래의 전망을 보여주는 시설보다 전라감영을 복원하도록 자극한 이념과 정서가 전북대학교를 표시하는 표지석만 있어도 될 정문에 기형적인 한옥건물을 짓도록 만들었겠지. 전주와 우리 대학은 언제나 저 편협한 이념의 수렁에서 벗어날까 생각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대운동장으로 옮겨본다.

운동장에는 책에서만 보았던 크리켓 경기를 하고 있는 유학생들이 보인다. 오래지 않아 유학생들과 한국학생들이 함께 크리켓 경기로 겨루는 일이 있겠지. 내가 흐릿하게 꿈꿨던 미래가 지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이런 현재가 기반이 돼 더 개방되고 자유로운 미래가 우리 캠퍼스와 전주시에 열리기를 바라본다.

이복기 교수(영어영문영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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