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악 명맥, 무형문화재 돼 이어가고파
농악 명맥, 무형문화재 돼 이어가고파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05.22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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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상고소의 자반뒤집기 허영욱 명인

 

농악 명맥, 무형문화재 돼 이어가고파

 

풍물패 뒤쫓던 유년기, 농악생활 계기돼

좋은 자세 위해 수천, 수만 번 반복연습

“학생들도 농악에 많은 관심 가졌으면”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가. 꿈을 향해 발을 딛는 것이 두려운가.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전북대신문이 다양한 분야의 멘토들을 만나봤다. 자신이 정한 길에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고 담담히 역량을 키워나가 결국은 ‘명인’의 칭호를 얻은 사람들이 바로 그 주인공. 전북대신문에서 그들의 삶과 열정을 전하려 한다. <엮은이 밝힘>

 

꽹과리가 장단의 시작을 알린다. 장구가 이에 맞춰 장단을 더한다. 뒤따라 북과 징이 장단을 넉넉히 한다. 마지막으로 상모가 등장한다. 소고 장단에 형형색색의 옷자락과 함께 기나긴 천이 유려하게 휘날린다. 구경꾼들은 화려한 상모돌리기에 홀린 듯 흥겹게 몸을 흔든다. 채상이라고도 하는 상모는 농악의 꽃이라고 불린다. 꽃처럼 화려한 상모돌리기에 한평생을 바친 대한명인 제07-136호 허영욱(66) 명인, 그의 인생을 들여다봤다.

 

▲풍물패 뒤쫓던 아이에서 경연대회 수상자로

허 명인에게 농악과의 첫 인연을 묻자 눈을 감으며 기나긴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아버지가 소고춤을 잘 추셨고 그것을 보고 자랐으니 내 삶은 농악과 만날 수밖에 없었던 인연이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름이나 모를 심을 때마다 마을을 돌아다니던 풍물패를 곧잘 따라다녔다.

유년시절을 농악과 함께 보낸 허 명인은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자연스레 농악 동아리에 참여하게 됐다. 비교적 키가 작았던 허 명인은 다른 악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소고를 맡게 됐다. 그는 방학 때마다 합숙을 하며 하루 9시간 동안 연습했다. 피나는 연습 끝에 전북 대표로 출전한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서 장관상을 받았고 다음 해 같은 대회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그는 “2년 동안 상을 휩쓸었던 것이 우리 전주 농고의 농악이 유명해진 계기가 됐다”라고 전했다. 성인이이 돼서는 한국민속촌농악단 창립일원이 돼 농악생활을 이어갔다.

 

▲쓰레기차 타며 행사 돌기도

허 명인은 “50여 년 동안 농악을 하면서 고생을 말도 못하게 했다”라고 털어놨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감자나 옥수수 등으로 끼니를 때웠다”라며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고 강도 높은 연습을 했다”라고 전했다. 당시 선후배의 관계에서 폭력 같은 부조리가 만연해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것은 물론, 학업과 병행하기 벅찰 정도로 많은 행사를 소화해야 했다. 허 명인은 “전라북도 내의 모든 행사에 불려간 느낌”이라고 그때를 회상했다.

급히 행사에 참여해야 했던 어느 날, 시간에 맞는 시내 버스도 학교 버스도 없는 상황과 마주했다. 그는 여기저기 헤매며 발만 동동 구르던 끝에 전주 시청 쓰레기차를 겨우 얻어 타고 행사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허 명인은 “쓰레기를 싣는 곳을 물 세차 한 뒤 탔지만 쓰레기 냄새가 진동했다”라며 당시의 서러웠던 마음을 떠올렸다.

 

  • 전역 후 허 명인은 소규모 공연을 진행하는 전문 농악인의 길을 걸었다. 그러던 중 익산의 ‘보해 소주’ 회사의 도움으로 ‘보해 사물놀이단’을 창단하게 됐다. 그는 “보해 사물놀이단은 전라북도 최초의 사물놀이단”이라고 밝혔다. 명인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농악공연을 했다. 농악을 알리기 위해 강의를 요청하는 학교를 돌며 학생들을 만났다. 그는 현재까지도 전주 생명고등학교와 김제 마이스터고등학교에서 농학 관련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꽃처럼 화려한 상모돌리기

허영욱 명인은 상모를 돌리며 소고를 치는 채상소고를 특기로 한다. 허 명인은 “꽃처럼 화려한 상모돌리기가 없다면 재미없는 농악이 될 것”이라며 상모돌리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채상소고의 기술 중 하나인 자반뒤집기의 고수라고도 불린다. 자반뒤집기란 몸과 땅을 거의 수평이 되게 해 끊임없이 회전과 착지를 반복하는 기술이다. 또한 그는 상모에 달린 천이 열 두 발자국만큼 길다는 뜻의 열 두발 상모를 자주 착용한다. 허 명인은 기나긴 상모가 자반돌리기를 강조해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전했다. 그는 “자반뒤집기는 수천 번, 수만 번을 반복해야 좋은 자세가 나온다”라며 화려함 속에는 고된 연습이 있었음을 알렸다.

과거 허 명인은 하루에 1천 회에서 2천여 회의 자반뒤집기를 했지만 세월 때문인지 옛날 보단 못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상모돌리기는 농악인들 사이에서 여전히 최고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허영욱 명인은 “상모돌리기는 언뜻 보고 흉내 낼 수 있지만 춤사위에 한과 멋이 동시에 깃들어야한다”라고 전했다.

 

▲무형문화제 등록 통해 명맥 잇고파

허 명인은 요즘 제자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그는 “공연자들은 관객들의 박수로 먹고산다곤 하지만 공연이 끝나면 허한 기운이 몰려오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수개월 동안 연습했던 것이 공연 하나로 끝맺음 되는 것이 그 이유라고 털어놨다.

때문에 허 명인은 무언가를 남기는 일에 열중하게 됐다. 그 대표적 일이 바로 제자 육성이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농악이 대대로 이어지는 것만큼 좋은 일이 없다고 전했다.

허 명인은 사비로 설립한 전주전통음악보존회를 통해 명맥을 잇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사적인 시설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추후 무형문화제가 돼 전주에 전수관을 세우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그는 “무형문화재로 등록되기 위해 열심히 활동 중”이라며 “유네스코에도 등재된 세계적인 음악, 농악에 학생들도 많은 관심 가져 달라”라고 전했다.

 

장경식 기자 guri53942@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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