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알아야 할 나라, 일본
여전히 알아야 할 나라, 일본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05.2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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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백선 26.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여전히 알아야 할 나라, 일본

 

▲가장 많이 방문하는 나라 일본

2018년 3월 일본정부관광국에 따르면 당시 기준으로 세계에서 일본을 가장 많이 방문한 나라는 한국이었다. 증가세도 증가세지만 그간 방일 관광객 1위를 유지했던 중국을 제치고 한국이 일본을 가장 많이 방문한 나라로 등극했다는 것이 그 통계가 전해주는 놀라운 소식이었다. 재난재해의 영향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2019년 초 발표된 일본정부관광국의 ‘방일 외국인 소비동향조사’에 따르면 2018년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여행자는 전년보다 5.6% 늘어난 753만 명이었다.

한국인이 일본을 많이 찾는 이유는 엔저의 영향,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관광 유치 정책, 저가 항공의 일본 노선 운항 증가 등이 꼽혔으나 실제로 휴가 때마다 일본에 주로 가는 동료들의 말을 들어보면 사정은 조금 다르다. 짧은 직장인들의 휴가 기간에 가장 간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해외 여행지가 일본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이웃나라인 중국은 짧은 여행에도 비자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휴가로 가기 다소 불편하고, 최근에 떠오르는 휴가지인 베트남은 일본처럼 여러 번 방문하기에는 다소 멀다. 일본에 가는 것은 해외여행이라기보다는 거의 타 지방 도시를 방문하는 느낌에 가깝고, 일본에 관광 목적으로 여러 번 방문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일본에 대한 정보 역시 차고 넘쳐난다.

하지만 방일 한국인 관광객이 증가하는 만큼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헤이트 스피치나 크고 작은 범죄까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우려되는 부분이다. 물론 이는 반대인 상황도 마찬가지여서, 일본의 자연 재해 기사가 뜰 때마다 넘쳐 나는 혐일 댓글을 볼 때면 당혹감을 느낄 때가 적지 않다.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면서, 가장 많이 여행을 하고, 감정적으로 가장 민감한 나라인 일본. 일본만큼 많이 접하면 접할수록 더 이해하고 싶거나, 반대로 저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부분이 극단적으로 커지는 국가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양쪽 모두 일본에 대한 보다 깊은 관심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일본을 이해하는 첫 걸음으로서의 『국화와 칼』

이러한 상황에서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 일본을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으로써, 한 인류학자가 70여 년 전에 발표한 한 책이 여전히 그 가장 상단에 위치한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가 1946년에 발표한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Patterns of Japanese Culture)』 이 바로 그것으로, 전시에 정치적인 목적을 바탕으로 착수된 프로젝트였지만 그러한 목적에 복무하면서도 오늘날까지 일본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을 어느 정도까지는 제시하는 대중 교양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2차 대전 종전 후 미국이 일본을 점령하는 데에 있어 이론적 뒷받침이 되었으며 일본에도 1948년 초판이 번역된 이래 오늘날까지 250만 부 이상 팔릴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던 저작이다. 한국에서도 1974년 김윤식, 오인식의 번역에 의해 처음 소개된 이후로 약 20종이 넘는 판본(개정판 포함)이 나올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은 책이다. 본 글에서 소개하는 2008년에 을유문화사에서 펴낸 『국화와 칼』은 1974년 초판본의 제5판이자 출간 횟수로는 85쇄째에 해당되는 판본이다. 오역이나 논쟁의 여지가 전무한 것은 아니나 한국인에게 일본 문화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제공하고자 한 역자들의 노력으로 교양서적이라는 목적에 다분히 충실한 번역서라고 할 수 있는 판본이다.

이 책의 서술은 당시의 2차 대전 전황과의 긴밀한 연관 속에서 시작된다. 베네딕트에 따르면 미 국무부로부터 이 연구를 의뢰받았던 1944년 6월 당시, 전세는 미국으로 기울어 있었지만 미국은 뜻밖의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일본은 연이은 국지전 패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들이 승리하고 있다고 선전했고 한 사람이 남아 죽창을 가지고 싸우더라도 절대 항복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일본인의 ‘상식 밖의’ 모습은 미국에게 있어 ‘무서움’으로 다가왔고 - 미군과 연합군이 남태평양 전선에서 전세를 뒤집는 유리한 위치를 점령하게 되는 과달카날 전투를 다룬 테렌스 맬릭의 영화 <씬 레드 라인>(1999)에는 미국인이 일본인에 대해 느끼는 당혹감과 환멸감이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 미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도쿄에 있는 통치자들의 목적이나 동기, 일본의 긴 역사, 경제나 정치상의 통계”만이 아니라 “일본인의 사상이나 감정의 특성과 그런 특성에 배어 있는 문화의 틀”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베네딕트의 임무는 이런 ‘낯선 적’을 보다 ‘이해 가능하고 정복 가능한 대상’으로 번역해내는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기존에 해오던 연구 방식인 문화상대주의와 반인종주의를 기본으로 일본인의 행동 방식과 가치관을 일본문화의 맥락 속에서 분석해내고자 하였다. 그녀는 전시 상황이라는 이유로 현장 조사(field work)를 하지 못했지만, 미국에 사는 일본인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인터뷰를 진행하거나 일본소설을 읽고 일본에서 제작한 기록영화 등을 보면서 일본을 연구하였다.

이러한 한정적인 연구 방식에도 불구하고 ‘기리(義理)’라든가 ‘닌죠(人情)’, ‘온(恩)’, ‘하지(恥)’등의 일본인이 중시하는 가치를 뽑아내고 이를 중심으로 서술을 한다거나 일본인들이 자아를 수양하는 방식, 어린아이를 교육하는 방식 등을 통해 당대 일본인의 유형을 판별하고자 하는 등 일본인을 인식할 수 있는 여러 다양한 근거를 제시했다. 이는 실제로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 예를 들어 60~70년대를 풍미했던 니혼진론(日本人論) 등 - 적잖은 동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는데 지금도 일본 아마존이나 야후에서는 이 책에 대해 동조하는 일본인의 반응을 심심찮게 살펴볼 수 있으며, 한국에서 역시 일본이나 일본인에 대해 분석하는 책들에 등장하는 주장이 이 책의 변주격인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일본은 학문의 대상이 아닌 마주해야 할 대상

하지만 오늘날의 인류학 관점에서도 그렇고 오늘날의 감각에서 보면 이 책은 미국인의 입장에서 ‘차이’를 통해 일본인을 타자로써 이해하려 한 시도에 지나지 않고, ‘오리엔탈리즘적’이다라는 말을 굳이 꺼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현장 조사가 결여된, 일본에 대한 반쪽짜리 이해, 심지어 ‘편견’에 가까운 연구 결과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장 문제적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은 결국 이 연구가 일본을 비역사적이고 동질적인 집단으로 그려냄으로써 일본을 ‘특수한’ 영역에 머무르게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이후에 『국화와 칼』을 연구한 수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지적된 바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전히 필요하다. 서구의 사상가들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오독함으로써 오히려 독자적인 철학과 사상을 펼칠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한 논리이다. 일본에 대한 관찰과 오해를 모두 포함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일본에 대해 더 구체적인 이해를 할 수 있는 풍부한 기회와 자양분을 얻게 된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일본을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할 것이다. 확실한 점은 일본은 학문이나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점이다. 지정학적으로는 운명 공동체이기도 하고 정치적으로도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감정적으로 엮여 있다. 이러한 상황은 정치인들에 의해 끊임없이 이용(혹은 악용)되면서 일본에 대한 적대와 환대의 감정을 동시에 촉발한다. 일본 관련 연구를 하는 필자 역시 일본에 대해 알면 알수록 모른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고 개념 하나를 이해하는 데에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여전히 일본은 ‘알아야 할’ 나라라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한 적은 없다. 수고스럽지만 일본은 알아야 할 나라이지, 단순히 싸워 이기거나 외면해서 뭔가를 얻을 수 있는 나라는 아니라는 믿음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박진희 영화 연구가

117jhpar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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