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열풍 혹은 위기
인문학의 열풍 혹은 위기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06.05 09: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요세평

인문학의 열풍 혹은 위기

 

대학에서는 위기론이 대세인데 사회에서는 인문학이 ‘열풍’에 가까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자체나 다양한 문화단체들이 마련한 인문학 강좌가 넘쳐나서 수강생 모집이 어려울 정도다. 이런 ‘위기론’과 ‘인기몰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현상이다. 위기를 강조하는 것은 그 중요성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염려에서다. 대학에서 인문학의 위상이 딱 그렇다. 인문교양강좌의 수강신청률은 바닥을 치고 있다. 이를 핑계로 경쟁을 앞세우는 대학당국의 인문학에 대한 대처는 푸대접 바로 그 자체였다. 이런 위기에 대한 처방으로 지난 3년간 추진된 정부의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 덕에 인문학은 잠시 호황을 누렸다.

이처럼 위기에 대한 염려는 당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그에 대한 호응과 반응으로 이어진다. 위기를 ‘위험과 기회’의 줄임말로 풀이하는 말장난의 묘미가 확인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 대응처방이 일시적이거나 체계적이지 못하면 위기가 오히려 심화될 수 있다.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의 후속사업 불발과 기다렸다는 듯한 홀대는 인문학의 황폐화를 가속시킬 뿐이다.

인문학이란 한 마디로 우리들 삶의 근원적 문제에 대한 포괄적이며 체계적인 성찰이다. 따라서 그 위기는 우리들 자신의 삶을 단편적으로 편협하게 중구난방으로 방기하는 경향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개인의 취업에 함몰돼 그 가능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생태적 제반 조건에 무관심하거나 그 조건을 개선시키기 위한 사회적 노력에는 정작 등을 돌리고 있는 젊은이들의 편향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돈벌이에 혈안이 돼 프롬의 표현을 빌자면 ‘소유’에만 급급해 또 다른 좀 더 본질적인 삶의 전제인 ‘존재’를 돌보지 않는 경제, ‘실용’에 취해 인간으로서의 존엄도 이를 위한 민주주의도 그 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의 역사와 헌신짝 취급을 하는 뒤틀린 인생관을 인문학 위기의 또 다른 징후라 할 수 있다. (이 지역의 자랑스러운 역사인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지역거점대학의 홀대를 보라!)

따지고 보면 인문학의 위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석가모니의 설법이나 공자님의 말씀, 예수님의 복음이나 소크라테스의 ‘변명’ 모두, 삶의 근원적 문제를 도외시하는 천박한 반인문학적 세태에 대한 질타에 다름 아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바람직한 삶을 오히려 방해하고 왜곡시킬 뿐이라는, 그 분들의 숱한 경계에도 불구하고 황금만능주의는 여전히 복음이요 금과옥조다.

지식이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염려에서 군자불기(君子不器)가 강조되지만 효용성을 앞세운 분업의 분과학문은 지금도 ‘지성의 전당’에서 ‘마이다스 손’처럼 장려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인문학자들마저 이런 분과학문의 전공을 앞세워 자기 공적 쌓기에만 열중일 뿐, 단순 지식을 넘어 삶의 지혜로 승화시키는 지성인으로서의 책무에는 여전히 무관심·무능력하다는 점이다. 인문학자 스스로 인문학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회에서의 인문학 인기몰이도 혹할 일만이 아니다. 인생무상을 느끼기 시작하는 정년세대들의 교양지식 대한 열망에 힘입은 현상일 뿐, 젊은 세대들에게는 여전히 좋지만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공자님 말씀’일 따름이다. 몇몇 교언영색(巧言令色)의 스타강사들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도 매우 염려스러운 반인문학적 현상이다. 우리 세대의 일만이 아니라는 게 한 가닥 위안이라면 위안이겠지만 말이다.

이종민 교수(인문대·영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