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는 정략결혼, 결국은 파국일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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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06.05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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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탐방기

㉕윌리엄 호가스, <당대의 결혼 풍속: 결혼 직후>, 1743

사랑 없는 정략결혼, 결국은 파국일 것을...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1697-1764)는 18세기 중반 영국 사회의 타락한 모습을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고찰한 풍속화가로 유명하다. 당시 유럽은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인식과 자각으로 인해 근대를 향한 도덕적 반성과 의식이 형성됐고, 미술에서는 사회에 대한 새로운 소재, 풍속화가 등장했다. 호가스는 이러한 새로운 주제에 대한 선구자로서, 특히 그가 그린 결혼에 관한 풍속화 6점의 시리즈는 당대의 도덕적 해이와 타락을 유머러스하면서 섬세하고 세련되게 표현한 것으로 높이 평가된다.

호가스는 작품에서 몰락한 젊은 귀족 남성과 욕심 많은 부유한 부르주아 여인의 정략결혼을 소재로 시리즈를 구성했고, 그 중 이 작품은 <당대의 결혼 풍속: 결혼 직후>이다. 시리즈의 시작은 두 남녀의 아버지들이 당사자를 대동하고 신랑의 집에 모여 결혼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계약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귀족 집안의 화려한 계보와 내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신부의 아버지는 바닥에 돈 주머니를 내려놓고 금화를 탁자 위에 쏟으며 재력을 자랑한다. 즉 두 집안은 명예와 돈의 결혼으로 맺어진 것으로, 사랑 없이 이루어 졌다.

그리고 아침에 잠에서 깬 주인공들의 모습을 담은 이 그림은 결혼 직후의 모습이다. 이 두 남녀는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옷차림은 어젯밤 그대로이다. 나른하게 늦은 아침 식사를 하는 신부는 바닥에 카드가 널브러진 것으로 보아 밤새 노름을 한 듯 보이며, 동시에 남편인 젊은 귀족 남자의 자세와 주변의 모습은 흡사 방탕하게 지난밤을 즐긴 술집 풍경으로까지 보인다. 사실 그는 어제 밤 외출 후 이제야 집에 돌아왔고, 간밤의 술이 아직 덜 깬 듯 제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 보인다. 여기에 고주망태의 남자의 주머니에서 그의 강아지가 다른 여자의 손수건을 찾아낸다. 새신랑은 밤새 다른 여자와 파티에서 놀고 왔음을 짐작하게 한다.

화면 왼쪽의 집사는 지불되지 않은 뭉치의 청구서들을 가지고 들어와 주인 부부의 부도덕하고 어처구니없는 행실을 목격하고 분개하고 있다. 호가스는 집사의 개탄하는 몸짓과 함께 그의 주머니에 기독교적인 설교서를 그려 넣음으로서, 퇴락한 부부에게 종교적 회계와 구원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랑이 없는, 불행의 시작이었던 정략결혼은 결국 남편의 살해와 부인의 자살로 끝맺게 된다.

호가스는 마치 한 편의 희극처럼, 당시 상류사회에 만연한 ‘사랑 없는 결혼과 그 파국’을 부패한 도덕성과 윤리성으로 재치 있게 그려냈다.

김미선|예대 강의전담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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