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곳에서 다양한 경험, 후배들 미래에 도움이 되길
넓은 곳에서 다양한 경험, 후배들 미래에 도움이 되길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06.0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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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 매년 미국 초청하는 미시간대학교 오원석(치의학․ 82) 교수

넓은 곳에서 다양한 경험, 후배들 미래에 도움이 되길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치과 접고 떠난 미국 유학

통계학으로 자신감 회복, 전공 치과보철학 선택

성실한 삶의 끝은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

우리학교 후배들을 미국 미시간대학교로 초청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미국에서 한국까지의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방문해 후배들을 격려하고 동문 대상 강의와 실습을 지원한다. 바로 미시간대학교 오원석(치의학‧82) 치과대학 교수 이야기이다.

오 교수의 어린 시절 꿈은 사회과학분야를 공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골에서 나고 자란 그는 집안 형편상 현실적인 전공을 마음에 품고 서울 소재 국립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간염을 앓게 돼 지역의 대학을 가야할 상황에 놓였다.

당시는 대기업 입사가 보장되는 공대의 인기가 높았으나 그는 치의학과 입학을 선택했다. 70년대 후반에 방영된 동의보감 저자, 허준 일대기를 그린 ‘집념’이라는 드라마를 보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돌보는 의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다양한 경험을 하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기에 전북대학교에 입학한 것은 큰 행운”이라며 “처음부터 계획했던 길은 아니었지만 그 덕분에 가족과 함께 하며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오원석 교수는 1988년 우리학교 졸업 후 3년간 공중보건 치과의사로 일하며 지역 주민의 구강건강 향상에 기여했다.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그는 대전에 치과를 개업해 안정적으로 운영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친구가 찾아와 “이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으니 학창 시절 품었던 유학에 도전해 보자”고 권유했다.

친구의 말은 꾹꾹 눌러 둔 오 교수의 배움에 대한 욕망을 일깨웠다. 대학 재학 기간 줄곧 원했던 바였지만 치의학 전공은 다른 교육과정에 비해 유독 많은 교육비가 들어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안정된 수입을 보장하는 직장과 안락한 생활 터전을 정리하겠다는 결정이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가족이 그를 적극 지지해줬다.

모든 것을 정리한 뒤 아내와 두 자녀를 데리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교육비가 저렴하고 비록 적지만 월급도 받을 수 있었던 미네소타대학교에 입학했다. 오 교수는 “면접 당일 입학허가를 받아 아주 기쁘고 흥분됐어요. 제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여는 기회였습니다”라고 당시의 감회를 전했다.

유학을 떠나기 전 낮에는 병원 일을 하고 밤에는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대학에서 요구한 TOEFL 등 각종 시험에서도 원하는 점수가 나왔고 회화공부도 꾸준히 했으나 막상 미국에 도착해보니 문화 차이와 언어장벽으로 적응이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이 서툴렀고 어린아이처럼 많은 것을 다시 배워야 했다.

생물학, 문헌을 고찰하는 세미나 등의 강의를 수강했다. 영어 실력이 부족해 강의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최선을 다해 준비했지만 서툰 발표와 내성적인 성격으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성적은 당연히 기대 이하였다.

반전은 통계학에서 시작됐다. 함께 수강하던 대부분의 친구들은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오 교수는 최고 점수를 받았다. 통계학에서 영어 실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를 바라보던 모두의 시선이 달라졌고 오 교수는 자신감을 되찾게 됐다.

그가 선택한 전공은 치과보철학이었다. 미국에 오기 전 경영했던 치과에 틀니가 필요한 노령 환자가 많이 찾아왔다. 틀니는 주로 잇몸에 의지하기 때문에 정교하게 제작하지 않으면 잇몸이 아프거나 피가 나고 식사할 때 불쾌한 소리가 난다. 나름대로 치과의사로서 경험을 쌓았지만 좀 더 나은 양질의 진료를 하고 싶었다.

단순히 상실됐거나 변형된 조직을 수복해주기 위해 브릿지, 임플란트치아, 틀니 등을 만들어주는 것이 치과보철학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러한 치료를 위한 종합적인 진단을 통해 환자를 이해하고 교육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다른 진료 과목과 협진을 위한 치료 계획을 세우고 모든 진료가 설정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종 진료자로서 기획하고 조정하게 된다. 유학을 통해 오 교수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더욱 정교하고 세밀하게 공부했다.

유학을 떠날 때 그의 계획은 3년의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우리나라에 돌아와 새롭게 치과의원을 개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생각이 달라졌다. 유학기간 전문의 자격을 얻었지만 여전히 여러 면에서 부족함을 느꼈다.

주로 남이 연구해서 발표한 내용을 배우는 것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다보니 스스로 연구하고 결과를 도출해 내고 싶었다. 학교에서 일하며 더 깊이 생각하고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기로 결정했다. 마침 플로리다대학교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곳에서 훌륭한 선배 교수 여럿을 만나 새로운 차원의 생각을 하게 됐다.

플로리다대학교에서 지난 2000년 조교수로 교직생활을 시작한 오 교수, 그 전까지는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에 종사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연구를 통해 새롭게 터득한 지식을 전달하고 공유하면서 스스로를 더 다듬어 갈 수 있는 교직이 무척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현재 오 교수는 치대 3학년생과 대학원생, 일반개업의를 대상으로 주로 틀니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치의학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며 “배우고 연구하고 가르치며 학교라는 공동체를 위해 많은 동료들과 같이 일한다는 것이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질문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위해 일주일에 한 시간씩 office hour를 제공한다. 치료술식에 대한 설명은 잘 받아들이지만 종종 이론 이해를 어려워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강의 내용이 어려웠는지 한 학생이 찾아와 그림을 그리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듣고 보니 그 학생의 그림이 제법 이해하기 쉬웠다. 제안 역시 설득력 있어 그 학생의

그림을 강의 자료에 첨부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져 수업 자료로 사용되는 것을 본 학생은 수업에 더욱 열심히 참여했다. 그를 보며 오 교수는 배움은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으로 이뤄질 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오 교수는 후배들에게 성실한 삶에는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스스로의 성장 동력을 개발할 것을 당부했다. 치의학을 더 깊이 탐구하고자 하는 꿈을 향해 달려왔기에 현재 중견 교수의 자리에 서게 된 그는 “출발이 늦었다고 생각될 때 불평 대신 노력을 선택한다면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다연 객원기자 imdayeon@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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