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나노연구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개척자
한국의 나노연구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개척자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09.0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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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나노연구가 이영희(물리‧72) 성균관대 교수

한국의 나노연구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개척자

 

탄소나노튜브 연구자가 된 주경야독 철도원

어린시절부터 그저 원 없이 공부하고 싶었어

후배들, 도전 정신 잊지 말고 큰 그림 그리길

어린 시절 깡촌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장남이 중학교는 졸업 해야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국립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원으로 근무했다. 육사를 합격하고도 결핵으로 진학하지 못했다. 이 파란만장한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세계적인 나노연구자 이영희(물리 성균관대학교 에너지과학과 교수이다.

이영희 교수는 현재 세계적인 나노연구가로 꼽힌다. 특히 그는 주로 탄소나노튜브 연구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를 응용하면 고성능 에너지 저장장치를 만들 수 있고 전기차의 생명인 배터리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때문에 각국의 연구자들은 이 순간에도 경쟁적으로 탄소나노튜브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물리구조연구단 단장을 겸하고 있는 이영희 교수 역시 7명의 교수, 30명의 박사후연구원 및 연구교수, 80명의 석·박사 등 총 120여명에 이르는 대식구들과 함께 관련 분야 연구에 한창이다.

그는 SCI 급의 451편 논문 게재, 총 인용횟수 27,300번 이상, H-index 78, 국내 85개와 국외 14개의 특허 등록, 국내 128개와 국외 59개의 특허 출원, 그리고 176회의 국제학회의 초청강연과 국제학회 18회 국내 유치등 주목할 만한 연구 업적을 이뤘다. 뿐만 아니라 다수의 국내 언론에 출연하고 다양한 강연을 통해 기초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영희 교수 어린 시절 집안의 사정이 좋지 않았다. 일제강점기가 되자 할아버지는 “일본 놈들 아래서는 아무것도 안 한다”며 평생 돈벌이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가난은 아버지와 이 교수에게까지 대물림 됐다. 이영희 교수의 부모는 소작농이었고 그는 3남 2녀 중 장남이었다. 이 교수와 그의 동생들이 초등학교 선생님, 공무원 등을 하고 있는 것도 모두 큰 누나의 희생 덕분이었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누나는 동생들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했다.

중학교 졸업 후 오로지 학비를 지원해주고 취업이 보장된다는 이유 하나로 국립철도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철도원으로 의무 근무 기간을 채워야 했다. 철도원으로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이 교수는 공부에 대한 욕망이 수그러들지 않았다.

집안 형편 상 공부를 할 수 없어서 그랬던 것일까. 이 교수는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이 그냥 ‘원 없이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낮에는 철도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학원에 가서 대입을 위한 공부를 하며 주경야독 생활을 이어갔다.

미친 듯이 공부해 육사에 합격했으나 결핵으로 입학할 수 없었다. 그 충격으로 수일 식음을 전폐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진학을 결심했다. 그리고 전북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물리학을 공부하기로 한 것은 학원에서 분석물리 과목을 가르치던 박운상 선생 덕이었다. 입시 학원이었음에도 간단한 실험도구를 갖고 물리를 알기 쉽게 설명해 줬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공부는 하면 할수록 재미있었다. 철도고등학교 출신이라 실험에도 능했다. 2학년부터는 철도원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대리 출석이나 담당 교수의 양해에도 한계가 있었다. 철도원으로서의 의무 기간을 채우지 못해 위약금을 물어야 했지만 이 교수는 그 길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학업에 매진했다.

장학금을 꼭 받아야 해서 공부는 더욱 열심히 했다. 열심히 하다 보니 평생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미국 켄트대 지원서를 냈고 다행히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너무도 원했던 공부라 석박사 과정이 4년 만에 초고속으로 끝났고 그쯤 전북대학교에 자리가 나 교수로 근무할 수 있었다.

이 교수는 만약 20대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고 싶냐는 질문에 “나는 20대에 너무 많은 고생을 해서 절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물론 그 때 애틋한 연애도 하고 다양한 추억들을 만들었지만 항상 나 자신과 현실과 투쟁의 연속이여서 너무 정신없이 살았던 시기였어요”라며 웃어 보였다.

대중들은 그를 나노 과학의 석학,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자 등으로 부르지만 이 교수 역시 여전히 순간순간 벅찰 때가 있다. 그럴 때 마다 이 교수는 ‘운동’과 ‘일상으로부터의 탈출’로 상황을 이겨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유도를 한 이 교수는 머릿속이 복잡할 때마다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운동으로도 풀리지 않을 때는 무작정 길을 떠났다.

이영희 교수는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 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안목을 넓게, 길게 큰 그림을 보고 실패해도 계속 도전하면 그것이 바로 성공의 길”이라고 격려했다.

장승원 객원기자 shocktroo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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