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한 전북언론, 그 역사를 알아보다
‘다사다난’한 전북언론, 그 역사를 알아보다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10.02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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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언론의 역사를 알아보다

‘다사다난’한 전북언론, 그 역사를 알아보다

전북지역 최초 신문은 ‘군산신보’

군사 정권 시절 핍박과 탄압에 ‘흔들’

자유 되찾은 후에는 경영난 시달려

대한민국 최초의 신문은 1883년 창간된 ‘한성순보’이다. 이후 각 지역을 기점으로 한 민간 지역신문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전북 지역 최초의 신문은 무엇일까? 전북대신문은 1500호를 기념해 전북 지역의 언론 역사에 대해 알아봤다.<여는 말>

▲전북 신문의 걸음마, 대한제국 말

전북 지역 최초의 신문은 1902년 창간된 것으로 알려진 ‘군산신보’다. 물론 해당 신문이 현존하지 않기에 창간 시기에 관해서는 다양한 주장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1903년에는 군산신보가 발행됐다는 것을 사료를 통해 전북 내 최초의 신문임을 확인할 수 있다. 군산신보는 일본인이 운영했는데 이 때문에 군산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많이 읽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1908년 군산신보는 제호를 군산일보로 변경해 전북 지역 최초의 일간지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에 관련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나 사료를 통해 적어도 1908년 이후 제호를 바꾼 것으로 알 수 있다. 이 무렵 군산에는 ‘한남신보’ 또한 존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글신문의 침체기, 일제강점기

전주 최초의 신문인 전주신보는 1912년 ‘전북일일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하고 경영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인을 포함한 여러 주주를 영입했다. 이후 1920년 전북일일신문은 ‘전북일보’로 제호를 바꿨다.

전북일보는 당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전북일보는 1면에 한국인을 비난하는 칼럼을 게재해 비판받기도 했다. 이 칼럼에는 한국인은 나이를 불문하고 도둑질을 하기에 동물 취급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이 담겨있었다. 이에 책임 기자가 사퇴하고 사과문을 썼지만 중앙 언론사에서 일제히 비판하며 전국적으로 논란이 됐다.

이후 일제의 1도 1시 정책에 의해 전북일보는 1941년 자매지인 동관신문과 당시 전북 내 최대 규모의 신문사인 군산신보와 함께 전북신보로 통합됐다. 이는 45년 8월 민족해방 전까지 도내에서 유일하게 발행됐다.

사실상 일제 강점기에는 한글신문의 발간이 없다시피 했으며 지역신문은 더욱이 어려운 환경이었다. 전북 지역뿐만 아니라 중앙 언론사였던 동아일보 국장 폭행사건, 경찰들의 한국인 기자 탄압, 한글 신문 기사 검열 등 당시 언론인들은 일제의 탄압으로 언론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했던 시대였다.

▲한글신문 창간의 시대, 해방부터 미군정기

8·15 해방 직후 한글신문들이 연이어 창간되기 시작해 전주에서는 ‘건국시보’가 창간됐다. 창간 후 건국시보는 외신을 통해 세계 2차 대전의 종전을 알리는 기사들과 식량 배급 사실 등을 보도했다. 이후 건국시보는 빈번한 경영권의 변화로 인해 1945년 9월에 제호를 ‘전북신보’로 바꾸고, 같은 해 10월에는 ‘전라민보’, 11월에는 ‘남선민보’로 다시 한 번 제호를 바꿨다. 1946년 1월, 미 군정청의 개입에 의해 제호를 다시 ‘전라민보’로 환원했고, 이때 퇴사한 일부 직원들이 ‘전주일보’를 창간했다. 같은 해 3월에는 또 다른 퇴사 직원들이 ‘전북신문’을 창간하기도 했다. 전라민보는 다시 제호를 ‘전라신보’로 변경해 미 군정의 전라북도 기관지로 간행됐다.

▲한마디로 ‘다사다난’, 한국전쟁부터 5공화국까지

이승만 정권부터 5공화국까지는 언론, 표현의 자유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승만 정권 당시에는 신문 창간 시 허가를 받고 보증금을 예치해야 하는 ‘광무신문지법’이 있었고 7개의 일간지 신문사를 폐간시켰다. 물론 광무신문지법은 1952년 국회에 의해 폐기됐지만 자유당 정권은 끊임없이 언론 규제를 위한 제도를 입법하려 했다. 이에 대한 언론의 반발이 심하자 군정법령을 동원해 신문사 테러, 신문배포 방해 등 현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언론 탄압을 실시했다. 언론에게는 암흑과 같은 시대였다.

전쟁이 발발하자 전북 지역의 신문 3사인 전라신보, 전북신문, 전주일보는 전북시보로 통합했는데 이는 전국적으로 살펴봐도 전주지역에서만 이뤄진 특별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전북시보는 북한군의 도내 침입으로 1950년 7월 20일에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수복 이후 전북시보는 ‘전북일보’로 제호를 바꾸고 활동했으며 이들은 타 지역의 언론인들과 함께 민-군-경 간 교량역을 담당해 활동했다. 수복 후 지리산 공비 토벌 당시에는 남원의 기자들이 보도를 통해 전시 비상사태를 극복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군사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언론의 탄압이 다시 시작됐다. 5·16 사건 때는 ‘군사 쿠데타’라고 표현했던 것을 ‘군사 혁명’이라고 명칭을 바꾸게 할 정도로 표현 하나하나에 억압받았다. 이후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언론 규제를 선언했다. 당시 언론과 정권이 유착돼 언론의 비판 기능이 사라졌고, 언론규제 특별법안이 국회에서 통과하는 등 언론 탄압이 심해지던 상황이었다. 이에 전북 언론인들은 법을 즉시 철폐하도록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처럼 언론자유 수호 운동이 양심 있는 기자들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이뤄졌다.

1973년에는 박정희의 1도 1사 정책에 따라 전북일보와 전북매일, 호남일보가 통합되며 3사의 기자 63명으로 ‘전북신문’이 창간됐다. 3사가 통합됐기에 경영권과 알력 싸움이 끊이질 않았고 통합 10년 동안은 내부의 혼란이 멈추지 않았다. 혼란기가 끝난 후 전북신문은 1983년 제호를 ‘전북일보’로 다시 바꿨다.

전두환 정권 역시 신문 통폐합을 실시해 1도 1사제를 그대로 유지했다. 이 과정에서 약 700명의 언론인들이 해직 당했다. 신문 등록은 문화공보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발행 역시 장관에 의해 정지될 수 있었다. 점점 언론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서서히 잊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언론인들은 민주화 시위를 통해 그동안의 행적을 반성하고 언론 기능을 회복을 위한 언론자유수호를 선언했다. 그리고 끝내 1987년 6월 정치 민주화와 함께 언론은 자유를 되찾았다.

▲종이신문의 쇠약기, 정치 민주화 이후

언론이 자유를 되찾자 잇달아 일간지들이 창간되기 시작했다. 일부 신문사들은 그동안 모아놓은 재원을 바탕으로 뉴미디어 진출, 인터넷 웹서비스 개설,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 ‘언론재벌’로서의 행보를 보여줬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신문 업계는 위기에 봉착했고 수천 명의 언론인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특히 2000년대 인터넷의 급성장으로 인해 종이 신문을 비롯한 ‘구 미디어’가 설 자리가 점점 사라져갔다. 종이신문 이용률이 2011년 44.6%에서 2016년 20.9%로 급락한 지표가 이를 입증한다.

지역신문 경영은 더욱이 어려워졌다. 전북 지역은 민주화 이후 15개의 일간지가 창간됐다. 이에 따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형 중앙 언론사가 지역신문의 영역까지 넘어 생존하기에 급급한 것이 지역신문의 현실이다.

한 세기 넘게 지역과 호흡을 함께 하며 우리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서 기록하고 전해온 지역 언론들, 이 과도기적 시대에 그들은 또 다른 활로를 모색하며 여전히 지역 곳곳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태한 기자 taehan00@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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