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취향, 끼워 맞춰진 것은 아닌가요
당신의 취향, 끼워 맞춰진 것은 아닌가요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10.16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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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취향, 끼워 맞춰진 것은 아닌가요

“영화추천 좀 해주세요.” 영화를 좋아한다고 소문 좀 난 사람들이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일 것이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때문에 지금 선택한 영화가 투자한 만큼 보상해줄 수 있는 영화인지 따져본다. 이를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영화 전문가들로부터 영화의 가치를 보증 받는 것이다.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의 의견, 더 나아가서 한 분야의 권위자가 한 말은 언제나 사람들 사이에서 큰 신뢰를 형성한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권위자의 의견을 확인하는 건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게 본능이든 이성이든 영화 평론가가 극찬을 마지않는 영화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나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라는 막연한 기대를 심어준다. 그리고 이런 기대는 가끔 영화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스스로 속이게 만든다. 막상 볼 때는 지루해서 하품만 하다 극장을 나왔지만 영화 평론가들이 이야기하는 영화 해석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영화, 대단한 영화 였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간혹 여기서 더 나가는 부류도 있다. 그들은 평론가들의 평을 따라다니며 본인을 끼워 맞추고 끼워 맞춘 영화를 다시 사람들과 공유한다. 혹여나 그 영화를 저평가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저 안목 없는 사람으로 취급해버린다.

그들은 자신이 평론가들과 같은 취향을 공유하고 있는 ‘품위 있는' 안목을 과시하려는 욕구를 보인다. 포털 사이트의 영화 평가란을 보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위 ‘수준 높은' 영화들, 예컨대 전체적으로 철학적인 메시지가 보인다거나 고전 명작들의 오마주로 채워져 있는 영화의 평가란에서는 수많은 예시를 들어가며 이 영화가 왜 훌륭한지 증명해 보인다. 반면 블록버스터나 코미디 같은 장르의 영화 평가란에서는 ‘이런 영화들이 왜 흥행하는지 모르겠다'라며 영화 시장 수준을 개탄한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과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구분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러한 글을 보면 당연히 속을 수밖에 없다. 나는 가끔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전문적으로 영화를 분석한다고?하며 놀랄 때도 있고 이 글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과연 그 사람들의 의견은 본인의 것일까 아니면 그가 지나가며 읽은 평론가의 것일까. 본인에게 별 감흥도 없던 영화를 칭송하는 그들을 보면 조금은 불쌍하기도 하다.

물론 수준 높은 평을 올리는 모든 사람을 욕하거나 영화 평론 자체에 대한 회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평가하고 또 공유하는 것은 영화를 사랑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다만, 전문가들의 글이나 추천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기에 우리의 생각과 취향이 그들의 의견에 침식되는 것을 주의하자는 것이다. 좋은 영화는 내가 봤을 때 좋은 영화가 좋은 영화다. 내가 봤을 때 재미가 없다면 어떤 의미가 있더라도 결국 재미없는 영화일 뿐이다. 영화 수준은 애초에 쉽사리 나눌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니 괜한 것들을 의식하며 영화를 보지 말자. 영화는 아무리 실제인 것처럼 꾸며도 결국은 허구다. 허구를 보며 즐거워하는 우리들마저 허구라면 이 얼마나 슬픈 아이러니인가.

손준영 (신문방송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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