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소설 당선작] 나비무덤
[고등부 소설 당선작] 나비무덤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10.16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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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무덤>

정찬영 원광여고 3

“닭이다, 닭! 닭이 날고 있어!”

솔이 다 벌어진 낡은 빗자루를 들고 병실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내 귀에 절규하는 듯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소리의 주인공은 301호 김 노인이었다. 병실 입구 왼쪽 침대에 누워있던 김 노인은 멍한 눈을 허공에 둔 채 두 팔을 날개처럼 파닥거리고 있었다. 처음엔 가느다랗던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더니 이내 복도까지 베어져 나왔다. 비쩍 마른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까칠한 소리가 병실을 넘어 동굴 같은 복도를 타고 사방에 울렸다. 괴성에 놀란 간호사와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병실로 달려왔다.

“저 커다란 날개 좀 봐, 닭이야, 닭!”

사람들이 몰려오자 김 노인은 상체를 반쯤 들어 올린 채,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처럼 가늘고 긴 손가락을 텅 빈 허공에 휘저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 보이던 노인이었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것인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모습을 본 간호사와 복지사 선생님들이 한숨을 내쉬더니 김 노인의 장단을 맞추기 시작했다.

 

“진짜네요. 살이 토실토실 한 것 좀 봐 암탉인가?”

복지사 선생님이 허공을 가리키자 간호사가 대답했다.

“아니죠. 붉은 닭 볏 좀 봐요. 저건 수탉이에요.”

김 노인이 가리키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닭의 성별을 논했다. 같은 병실을 쓰는 다른 환자들의 반응을 보아도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는 게 분명했다. 김 노인의 맞은편에 누워 있는 환자는 병실 중앙에 달린 티비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고, 그 옆 또 다른 환자는 접시에 놓인 사과 하나를 집어 먹으며 자신의 맞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두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이 상황을 이해하려 애쓰는 나와는 달리 눈앞에서 일어나는 황당한 일들에 아무런 의구심도 갖지 않은 담담한 그들의 표정은 이곳에서는 이런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는 걸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고요와 소란이 공존하는 이곳의 역설적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가 나뿐이라는 생각이 들 때 쯤 누군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르신 자꾸 이렇게 소란 피우시면 곤란해요. 모르핀이 그냥 약인가요? 자꾸 먹으면 중독돼서 정말 큰일 날지도 모른다니까 그러시네.”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의 주인공은 사회복지팀장이었다.

 

눈빛이 다소 날카롭고 비쩍 말랐지만 환자에게 애정이 많던 팀장도 이 문제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듯 날선 말들을 쏟아냈다. 그의 손에는 사탕같이 생긴 알약이 들려 있었는데 알약을 김 노인의 혓바닥 밑에 넣어주며 말을 이었다.

“어제는 굴속에 갇혔다더니 오늘은 닭이에요?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에요.”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의 닭을 응시하던 김 노인의 눈꺼풀이 찬찬히 내려앉았다.

 

팀장은 그제야 낡은 빗자루를 들고 멀뚱히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냐며 자신을 따라오면 다른 일거리를 주겠다는 팀장의 말에 나는 그를 따라나섰다. 301호 병실에서 나와 로비를 지나쳤다. 로비의 한쪽 벽면에는 크레파스로 색칠된 그림들과 유치원생들이 만든 것처럼 선이 삐뚠 종이나비들이 가득했다. 내 손바닥의 반만 한 크기의 나비들이 계단까지 죽 이어져 있었다. 팀장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며 색색의 나비들의 얇은 날개를 손으로 훑었다. 바싹 마른 낙엽처럼 금방이라도 으스러질 듯 한 나비의 날개가 힘없이 흔들렸다.

계단을 내려가 도착한 곳은 202호 병실이었다. 휠체어에 앉은 환자가 창가 쪽으로 몸을 향하고 있는 것이 반쯤 열린 문틈 사이로 엿보였다. 새벽에 내린 서리처럼 희끗희끗한 환자의 머리칼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팀장은 내게 한 시간 동안 저 백발 환자의 말동무가 되어 주라고 했다. 팀장은 노인을 장 사장이라고 불렀다. 그가 한 때는 알아주는 중소기업 사장이었다는 말을 했다. 나는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갔다. 저 조그만 창 너머로 뭐가 보일까 싶을 정도로 터무니없이 작은 창문이었다. 장 사장이 계속 눈길을 두고 있는 창틀에는 A4용지만 한 크기의 나비유충 통이 하나 놓여 있었다. 뚜껑이 파란 통 안에는 길고 등판이 울긋불긋한 애벌레들이 초록색 잎들을 갉아 먹었다.

 

“키우시는 거예요?”

아무리 인기척을 내어도 내 쪽을 쳐다보지 않던 장 사장이 반응했다.

“태풍을 만들 거야.”

그가 나비 유충이 든 통을 소중하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창밖에 말이야. 저 커다란 나무 때문에 다른 풍경이 아무것도 안 보여. 태풍을 불게 해서 저 나무를 부러뜨려 버릴 거야.”

서로 엇나가는 대화가 한창이던 중, 팀장은 새로 할 일이 하나 생겼다며 나를 불렀다. 팀장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탔다. 팀장은 ‘문서파쇄실’로 나를 데려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 안에는 커다란 사무용 문서파쇄기가 보였고, 그 옆에는 엄청난 양의 종이가 책상 위에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장 사장은요?”

팀장이 턱으로 종이들을 가리켰다.

“곧 누가 찾아온다고 했으니 이거부터 해 줘.”

 

한눈에 보기에도 많은 양이었지만 파쇄기에 종이를 넣고 종이가 갈리는 모습을 보고 있기만 하면 끝이었으니 어려울 건 없었다. 시곗바늘은 어느새 여섯 시 삼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삼십 분만 지나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 파쇄기에 종이를 한 장씩 넣을 때마다 윙 하는 기계음과 함께 분절된 음운들이 투명한 통에 눈처럼 내려앉았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약품의 이름, 보관 기간이 지난 환자 관찰일지 따위가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다.

팀장은 유독 내게 쉬운 일만 골라서 줬다. 그가 내 눈치를 본다는 건 병원 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모두가 알고 있는 기정사실과 같았다. 겨우 고등학생 밖에 되지 않는 내 비위를 맞춰주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빠. 학교에서 내게 이정도 처벌을 내린 것도 아빠의 영향이 컸다. 물론 아빠가 날 위해 직접 입김을 불어 넣은 적은 없지만, 아름다운 꽃에는 언제나 나비들이 꼬이듯, 국회의원이라는 아빠의 직업만으로 학교 선생님들은 내 주위를 맴돌았다.

발음도 할 줄 모르는 낯선 낱말들이 투명한 통 안에 쌓여 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의미를 잃은 자음과 모음들이 통 속을 뒹굴다, 저들끼리 설익은 단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잘게 부서진 채 하염없이 떨어지는 종이들이 푸석푸석한 나비의 날개 같기도, 흩날리는 꽃가루 같기도 했다. 책상 위에 쌓여 있던 종이 더미가 줄어들고, 통 안이 가득 찰수록 눈알이 뻐근해졌다. 눈을 두세 번 깜빡이자 눈앞이 흐려졌다 다시 선명해졌다.

“오늘은 그만 가보고 내일도 오늘처럼 오면 돼. 수고했다.”

기척도 없이 들어온 팀장은 어느새 내 뒤에 서 있었다. 휴대폰 화면을 켜보니 시간이 벌써 저녁 7시였다. 나는 병원 로비로 나와 탕비실로 갔다. 가방과 겉옷은 내가 처음 넣어두었던 모습 그대로 바구니 안에 들어있었다. 나는 입고 있던 조끼를 벗어 놓고 내 소지품들을 챙겼다. 조끼에 큼지막하게 박힌 ‘자원봉사자’라는 글자가 보였다. 겨우 조끼 하나 벗은 것뿐인데 한결 홀가분해진 기분이었다.

병원을 나오자 거리는 어둠이 잔뜩 깔려있었다.

 

병원 앞 버스정류장에는 내 또래쯤 돼 보이는 학생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 이 근처 학원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저희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깔깔거리는 아이들 사이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윤이었다. 나는 그 애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윤의 모습이 흐릿해져 갔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더 다가가면 이대로 윤이 영영 사라져 버릴까봐 겁이 나 재빨리 정류장을 지나쳤다.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윤의 모습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직 윤을 제대로 마주할 자신이 없는 나는 걸음을 멈춘 채 멍하니 윤의 모습을 더듬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윤의 웃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호스피스 병원은 학교와 우리 집 중간에 위치 해 있어 윤과 함께 하교할 때면 항상 지나치는 곳이었다. 윤은 나와 달리 걸음이 느렸기에 함께 걷다가도 병원에 도착할 때쯤이면 나보다 뒤처져 있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나는 병원 앞 버스정류장에 앉아 느릿느릿 걸어오는 윤을 향해 소리쳤다.

“빨리 와, 집에 내일 도착할래?”

삐딱한 내 말투에 윤은 네 걸음이 빠른 거라며 투덜대다가도, 내 옆에 앉아 한참동안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윤이 뜬금없이 물었다.

“너 모르핀이라고 들어봤어?”

“그건 왜?”

윤이 그걸 모르고 물어봤을 리가 없었다.

 

“고통이 심한 사람들한테 주는 약이래. 아파서 죽을 것 같다가도 그걸 맞으면 고통이 하나도 안 느껴지나 봐. 근데 부작용으로 뭐에 홀린 사람처럼 헛것이 보인다지…….”

윤이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대화가 어색해졌고 우린 잠자코 걷기만 했다. 오 분이면 지나던 골목길이 끝도 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결국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각자의 집 비밀번호를 누를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텅 빈 허공을 바라보는 윤의 새까만 눈동자 속에는 어렴풋이 슬픔이 서려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유를 물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윤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분간은 따로 등하교하고 웬만하면 학교에서도 서로 아는 척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이유를 묻기도 전에 윤은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음날 윤의 집 앞에서 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도 윤이 나오지 않아 초인종을 눌렀다. 돌아오는 건 윤은 이미 학교에 가고 없다는 어머니의 말뿐이었다. 허겁지겁 뛰어서 학교로 가 보았다. 교실로 들어서자 윤은 애써 내 눈길을 피했다. 풉, 그 순간 교실 뒤편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미세하지만 뚜렷한 비웃음 소리, 그는 뜻밖에도 반장이었다. 아니 반장을 비롯한 모든 친구들이 나와 윤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윤과 아이들 에게 무슨 일이 벌어져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한참 예민한 아이들 사이에서 그런 일은 소리소문 없이 시작되어 곰팡이처럼 부패한 냄새를 풍기곤 했으니까. 그런데 하필 윤이 왜? 점심시간에도, 종이 치고 학교가 끝날 때까지도, 어느 누구도 나에게 며칠 사이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았다. 당사자인 윤 조차도 말이다.

 

몇 달 사이 해가 많이 짧아졌는지 이미 하늘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제법 싸늘해진 밤공기가 옷 사이로 파고들었다. 나는 텅 빈 옆자리를 허전해하며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잠시 복도에서 윤의 집 앞을 서성여 보았지만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서는 마음이 무거웠다. 거실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소파에 앉아 나를 기다리던 엄마가 물었다.

“봉사 말이야.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가야 하니?”

엄마의 목소리는 날이 서 있었다. 앞으로 세 번만 더 가면 된다는 내 대답에 엄마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재수가 없으려니……. 그것만 하고 오면 학교에서도 눈감아 준다니 힘들어도 참아 우리 딸. 그리고 주말마다 봉사 나간다고 공부 소홀히 하면 안 된다. 내가 담임선생님한테 생활기록부에 문제없게 해 달라고 얼마나 부탁을 한 줄 아니?”

엄마는 입에 모터를 단 듯 쏘아붙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사회봉사를 하게 되기 전까지 나와 함께 윤의 죽음을 슬퍼하던 엄마는 더 이상 없었다.

오늘도 시간 맞춰 병원에 도착했다.

바구니에 내가 입고 온 겉옷을 벗어 놓고, 노란 조끼를 입었다. 어김없이 빗자루를 들려는데 복지사 선생님이 청소를 끝냈다며 다른 일을 시켰다. 오늘은 302호 환자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일이었다. 파주댁이라 불리는 302호 환자는 40대로 이 병원에서 가장 젊은 환자였다. 그러나 내가 병원에 오는 날마다 병실 문이 굳게 닫혀있어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들어가기 전 선생님은 내게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알려주었다. 네 번의 뇌수술 이후 후유증으로 뇌 일부분이 손상돼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단어도 잘 떠올리지 못하니 조금 답답하더라도 잘 이해해 줘야 한다는 말이었다.

긴장한 탓에 축축해진 손바닥을 옷에 대충 문지르고 손잡이를 잡았다. 병실 문을 열자 침대 옆 조그만 간이 의자에 앉아 등을 동그랗게 만 채 꾸벅꾸벅 졸고 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나를 본 남자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을 파주댁의 남편이라 소개했다. 판다같이 축 늘어진 다크서클이 그의 피로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302호는 1인실이었다. 김 노인이 묵고 있는 4인실보다는 좁았지만 혼자 머물기에는 나쁘지 않은 크기였다. 파주댁의 남편은 내가 딸아이와 비슷한 나이라 아내가 좋아할 거라며, 자신이 자리를 피해줄 테니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라고 했다. 파주댁의 남편이 나가고 한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오늘 날씨가 참 좋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던 내가 처음으로 뱉은 말이었다.

“더워.”

파주댁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말을 했다. 나는 덥다는 파주댁의 말에 창문을 열었다. 또다시 정적이 시작되었다. 한참을 바람 소리만 가득하던 병실에 나비 한 마리가 사뿐사뿐 날아들었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나비가 파주댁 앞에 내려앉았다. 검은색과 노란색이 정교하게 조합된 호랑나비였다.

“장 사장네 나비가 여기까지 날아왔나 봐요.”

 

나비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파주댁이 갑자기 나비를 낚아 쥐었다. 통통한 손에 갇혀 날개가 일그러진 나비는 자신을 옥죄는 손아귀에서 헤어 나오려 발버둥 쳤지만 빈약한 날갯짓만으로 그곳을 빠져나오기는 역부족이었다. 내가 말릴수록 파주댁은 물건을 뺏기기 싫은 어린아이처럼 나비를 세게 움켜쥐었다. 어르고 달래 손을 펴게 했지만 날개가 너덜너덜해진 나비는 파주댁의 발밑에 떨어져 더듬이만 움찔거렸다. 나비를 아끼는 장 사장이 알면 소란이 일어날 게 뻔했다.

“가지 마!”

내가 자리를 뜨려 하자 파주댁이 내 손을 움켜쥐며 말했다. 이제 시간이 다 됐다는 내 말에도 파주댁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파주댁은 하얗게 질린 내 손으로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서야 나를 놓아줬다. 핏기가 사라진 손이 저렸다. 파주댁이 잠깐 한눈을 판 사이 나는 죽은 나비를 주워 들고 병실을 나왔다. 내가 사라진 걸 눈치 챘는지 병실 안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좋아하는 장난감을 뺏긴 아이처럼 서럽게 우는 파주댁의 울음소리를 들은 간호사들이 302호 병실로 달려왔다. 파주댁의 울음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나는 나비를 들고 현관으로 나와 화단에 놓아 주었다. 날개가 꺾인 나비를 보고 있자니 정류장을 서성이는 윤이 떠올랐다. 윤이 죽은 건 세 달 전이었다. 윤은 학교에서 다섯 정거장 떨어진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몸을 던졌다. 내가 윤의 소식을 들은 건 윤이 투신한 그날 밤이었다. 문제집을 다 푼 나는 귀에 꽂아 두었던 귀마개를 빼고 휴대폰 전원을 켰다. 평소에는 알림 한 번 울리지 않던 휴대폰이 진동을 토해냈다. 가끔가다 윤에게 문자가 오는 일은 있었으나 이렇게 진동이 끊이지 않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진동의 원인은 학급 단체 카톡이었다. 한 학기 동안 반장의 간단한 공지 외에는 대화가 이어지지 않던 그 방에 벌써 백 개가 넘는 대화 내용이 쌓여 있었다. 그 중 반장의 글이 가장 눈에 띄었다.

- 그래서, 윤 수인 걔 죽었대?

나는 화면을 맨 위로 올려 처음부터 차근차근 글을 읽었다. 가장 먼저 윤의 이야기를 시작한 사람은 부반장이었다. 학원에 가는 길에 아파트 공사장 앞에 앰뷸런스가 서 있고,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가봤더니 누가 투신을 했고 그게 바로 윤이라는 것이었다. 부반장의 채팅 밑으로는 수십 개의 물음표가 달렸다. 화면을 내릴수록 눈앞이 흐릿해져 갔다. 나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던 엄마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무작정 대문을 열고 옆집으로 향했다. 아무리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윤의 엄마마저도 나오지 않았다. 휴대폰이 계속 울렸다. 몇몇이 저들끼리 농담을 하며 윤의 죽음을 조롱하고 있었다. 휴대폰을 꺼 버렸다. 검은 액정에 비친 내 모습이 조금씩 찌그러졌다.

엄마의 눈살에 억지로 등교한 다음 날 윤의 이야기는 커다란 화두였다. 조회 시간에 담임이 담담한 어투로 윤의 죽음을 전했다. 당연히 윤의 자리는 비어있었고 교실에는 무거운 공기가 맴돌았다. 담임은 조회를 마치며 몇몇 아이들을 교무실로 불렀다. 반장과 부반장을 포함해 윤의 죽음을 조롱하던 아이들이었다. 나는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자꾸만 지난밤 일이 떠올라 숨이 막혔다.

윤이 나를 피하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혼자 등하교를 했다. 윤이 죽기 전날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 남아 심야 자율학습까지 마친 나는 11시가 다 되어서야 가방을 챙겼다. 야간자율 학습까지만 하고 집에 가는 학생들이 태반이어서 그 시간에 하교하는 학생은 몇 없었다. 그마저도 늦은 시간이라 부모님의 차를 타고 가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라 교문 밖을 걸어서 나서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걸으니 괜히 긴장되었다. 간간히 보이는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분명 윤의 목소리였다. 윤이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애를 둘러싼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그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말하는 것 같았다. 너도 예처럼 되기 싫으면 그냥 꺼지라고. 윤을 쳐다보았다. 그랬구나. 나에게 피해가 갈까봐, 자신을 모른 척 하라고 했구나. 하지만 지금, 벗어날 수 없는 절망 앞에서 다시 나를 부르고 있구나. 나를 부르는 윤의 모습은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도와줘야 했다.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러나 내 몸은 생각과 다르게 움직였다. 나는 윤을 외면한 채 걷고, 또 걷다가 결국은 뛰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멈추지 않았다.

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환영처럼 내 이름을 부르던 윤의 목소리가 자꾸만 떠올랐다. 절벽 끝에 위태롭게 서 있던 윤의 등을 떠민 사람이 꼭 나인 것 같았다. 윤을 괴롭히던 무리가 밖으로 불려나가자 내 입에서 나는 저 무리에 섞이지 않았다는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고, 곧이어 죄책감이 내 목을 조여 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지금 당장 침대에 누워 좀 쉬어야 할 것 같았다.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니 이제는 정말로 어지러운 것 같기도 했다. 누군가 내 어깨를 건드렸다. 짝이었다. 짝은 내게 담임이 부른다며 교무실로 가보라고 했다.

“수연이 너 쟤들처럼 되고 싶어?”

내가 교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담임은 턱 끝으로 반장 무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쟤네 최소 사회봉사에 심하면 퇴학까지 당할 것 같던데……. 쟤네 입에서 네 이름이 나왔어. 지난밤 그 일에 너도 같이 있었다며?”

지난밤 그 일. 그 커다랗고 시커먼 무리가 쟤네들이었구나. 나는 관련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 목을 막고 있는 무언가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쟤네는 윤의 유서에 이름이 적혀있어서 빼도 박도 못 하지만, 너는 네가 아니라고 하면 빠질 수 있어. 증거라곤 쟤네 말 뿐인걸? 가해자 말을 누가 믿겠어. 그것도 엄청나게 괴롭혔던데. 수연이는 공부도 잘하는데 생활기록부 망쳐서 대학 못 가면 안 되잖아. 안 그래?”

담임은 내게 어서 자신의 말에 수긍하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후로도 담임은 매시간 마다 나를 불러 이 일과 나는 관련이 없다는 확신을 받아내려 애를 썼지만 굳게 닫힌 내 입은 열리지 않았고, 결국은 학교폭력위원회에 방관자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수연 학생 정말로 그날 밤 저들과 같이 피해자를 괴롭혔나요?”

학교폭력 전담 경찰관의 질문이었다. 자리에 앉아 있는 교감 선생님과 담임, 학년 부장 선생님까지 모두 내 입술에서 ‘아니요’라는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괴롭혔다’ 아마 경찰관이 내게 윤을 때렸냐고 물었으면 아니라고 답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도움을 청하던 목소리를 무시하고 돌아서는 내 뒷모습을 바라보던 윤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나는 끝내 입을 다물었다. 결국 윤의 괴롭힘을 주도했던 반장과 부반장은 퇴학, 나머지 두 명은 2주 정학, 나는 30시간 사회봉사 처분을 받게 되었다. 담임은 그런 나에게 자신이 잘 아는 사회복지사가 이 근처 호스피스 병원에서 팀장으로 일한다며, 자신이 잘 말해줄 테니 가서 대충 시간만 때우고 절대 공부를 소홀히 하지 말라는 당부를 늘어놓았다. 그렇게만 하고 나면 한 사람의 흔적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질 수 있다는 듯이.

평소보다 병원에 삼십 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조끼를 입고, 벽면에 걸린 손 소독제를 바르는데 누군가 날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김 노인이었다. 항상 헛소리하거나 잠에 취해있던 김 노인이 오늘따라 정신이 멀쩡해 보였다. 김 노인은 평소같이 흐릿한 눈이 아닌 총기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 노인에게서 풍겨오는 분위기도 평소와 달랐다. 마치 정신이 온전한 사람처럼.

“몇 살이여?”

처음 들어보는 김 노인의 차분한 목소리였다.

“열아홉이요.”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누가 내게 나이를 묻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열아홉이면 아직 학생인 겨? 좋을 때구먼. 나도 갓 태어난 손녀가 하나 있어. 우리 손녀가 학생만큼 크는 것만 보고 죽었으면 쓰겠는데……. 아무래도 내 욕심이겄지…….”

확신이 없다는 듯 말꼬리를 흐리는 김 노인의 입가에는 쓴웃음이 번졌다.

오늘 맡은 일은 환자들이 병원 프로그램에 수월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외부에서 온 미술치료 선생님을 돕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 미리 재료를 준비하고, 환자들에게 예시로 보여줄 나비 몇 마리를 만들었다. 선을 따라 오리고 마음에 드는 색으로 칠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미술치료 선생님은 내 나이 또래 자원봉사자들을 많이 만나봤는지 내게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자원봉사를 왔냐는 말에 굳이 내가 사회봉사를 왔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았고, 사회봉사도 ‘봉사’라는 맥락에서 뜻이 상통한단 생각에 대충 “네”라고 얼버무렸다. 나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이 나비들은 만들어 어디다 쓰냐고 물었다.

“병원 복도에 걸린 나비들 본 적 있죠? 그게 다 이렇게 호스피스에서 투병 중이신 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환자들을 위해 만들어준 거예요. 자세히 보면 나비마다 밑에 날짜랑 이름이 적혀 있어요. 멀리서 보면 참 예쁜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뭉클해진다니까요.”

나도 몇 번 본적이 있었다. 병원을 드나들며 여러 차례 지나쳤던 풍경이었지만 미술치료 전시 작품 정도로만 생각하던 것들이었다. 프로그램이 시작되자 환자들이 보호자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하나둘 요법 실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여기저기서 도란대는 소리에 조금 소란스러웠지만, 어느새 환자들은 나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투박한 가위질로 선을 자르고, 삐뚤게 색을 채워 넣은 나비들이 쌓여갔다.

“학생 이거 가져가세요.”

프로그램 시작 전 예시로 만들어 놓은 흰 나비 한 마리였다.

나는 건네받은 나비의 날개를 곱게 접어 주머니 속에 넣었다. 복도로 나와 나비들이 모여 있는 벽으로 갔다. 형형색색의 나비들이 한데 어울려 창을 넘어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2019.02.01. 김 복님’, ‘2019.03.05. 배 상록’ 나비 밑에는 정말 조그마한 크기의 이름표들이 달려있었다. 모두 나비 날개의 빛깔처럼 찬란한 삶을 보냈을 텐데 이제는 이름만 남아있었다. 내일이면 봉사가 끝나는 탓인지, 나비가 더없이 아름다운 탓인지 무언가 잊어버린 사람처럼 마음 한구석이 공허했다.

봉사를 하는 중에도 야간자율 학습을 빠질 수는 없었다. 이번 모의고사 성적이 떨어지면 아마 담임에게 밉보일 게 분명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모의고사 때문에 나는 윤의 죽음을 충분히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야자가 끝나자 반 친구들이 하나둘 가방을 챙겼다. 친구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가장 마지막으로 교문을 나서는데 익숙한 얼굴이 교문 앞에 서 있었다. 아빠였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처음 제대로 마주하는 아빠의 얼굴이었다. 아빠는 내게 사회봉사가 얼마나 남았냐고 물었다. 나는 이제 딱 하루만 더 나가면 된다고 답했다. 내 말을 듣는 아빠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가자.”

아빠가 내 어깨를 토닥였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걸었다. 조금만 잘못하면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아빠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교복을 갈아입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에 잠겼다. 나도 모르게 잠깐 눈이 감겼는데 무언가에 쫓기는 꿈을 꿨다. 아니, 무언가를 찾고 있었던가. 나는 계속해서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렸다. 마치 윤의 목소리를 외면하던 그 날처럼.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멈출 수 없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베개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나는 축축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숨을 참았다. 내 입과 코를 솜뭉치에 뭉갠 채 있는 힘을 다해 숨을 참고 또 참았다. 그러나 결국은 얼굴이 벌게진 채 고통에 가득 찬 거친 숨을 헐떡일 뿐이었다. 나는 죽을 용기도 없었다. 아마 윤은 이것보다 더 고통스러웠겠지. 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도 없었다.

오늘은 내가 봉사를 하는 마지막 날이자, 김 노인을 위한 생일파티가 있는 날이다. 복도에서 종종 마주쳤을 때 내게 늘어놓던 김 노인의 손녀 사랑은 이미 병원에서도 유명한 일이었다. 손녀의 생일파티를 위해 이 모든 것을 준비한다는 게 남들 눈에는 유난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죽음을 앞둔 이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일이라기에는 이보다 소박한 것은 없었다. 김 노인을 위해 김 노인의 손녀 생일파티를 준비하느라 모두 분주했다. 조금씩 꾸며지는 병원을 보며 비어있는 마음 한구석도 채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서울에서 내려온 김 노인의 가족들은 로비의 벽마다 풍선을 달고 복지사 선생님은 작은 플랜카드를 걸었다. 나도 바닥을 더 열심히 쓸었다. 우리가 깜짝 파티 준비하는 것을 아는지 김 노인은 오늘따라 얌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여러 사람이 매달려 로비를 예쁘게 꾸몄다. 김 노인의 손녀도 오늘이 중요한 날이라는 것을 아는지 예쁜 꼬까옷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생일파티가 열릴 시간은 오후 3시, 모든 걸 준비하고도 두 시간이나 여유가 있었다. 곧 있으면 손녀보다 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기뻐할 김 노인의 모습을 생각하며 즐거운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301호 환자분 상태가 위독해요!”

간호사의 말 한마디에 조금씩 채워 가던 공허함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나른하던 병원의 공기가 날카로워졌고, 의사와 간호사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김 노인의 죽음을 코앞에 맞닥뜨린 가족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애꿎은 풍선 끝을 매만지고, 눈물을 몇 방울 훔치기는 했지만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들 치고는 누구 하나 마음 놓고 우는 이가 없었다. 김 노인의 오랜 투병 기간 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를 자주 오간 탓에 자신도 모르게 찬찬히 김 노인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매일 밤 너무 많은 눈물을 쏟아내 더 이상 흘릴 눈물이 남지 않았던 걸까.

병원 환자들 중 누군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병원에 오래 있으면 슬픔에 무뎌진다고, 무뎌진 줄 알았던 슬픔이 다시금 사무치게 밀려왔다. 병원 안 그 누구보다 서럽게 우는 내 모습을 본 팀장이 이만하면 됐으니 그만 가보라며 내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나는 김 노인에게도, 파주 댁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작별인사를 남기지 못하고 병원 밖으로 나와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와중에도 흘러나오는 눈물에, 창밖의 풍경들이 번져갔다. 내가 내린 곳은 윤이 뛰어내렸다는 아파트였다. 아파트는 이제 완공이 되었고 분양도 거의 다 끝나 아파트 가구의 절반 이상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 맨 꼭대기 층을 눌렀다. 8,9,10. 카운트다운처럼 전광판의 숫자가 하나씩 높아졌다. 11층에 도착했을 때는 옥상 문이 잠겨있으면 어쩌나 걱정하다가 12층에 올랐을 때는 차라리 잠겨있었으면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20,21,22. 드디어 맨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계단을 반 칸 더 올라가자 문이 하나 더 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모르핀을 찾는 걸까. 쇠로 된 손잡이를 잡자 냉기가 느껴졌다.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고 손잡이를 돌렸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내 머릿속 옥상과는 전혀 다른, 공원처럼 예쁘게 꾸며진 풍경이 펼쳐졌다. 나는 혹시나 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있을까 봐 옥상 구석구석을 살폈지만, 어디에서도 윤을 찾을 수 없었다.

그만 발길을 돌리려던 참에 바지 주머니 속 무언가가 손에 잡혔다. 병원에서 만든 흰 나비였다. 전에 받은 걸 주머니에 넣어 놓고 여태 깜박한 모양이었다. 나는 접혀있는 나비의 날개를 펼쳤다. 왼쪽 끝이 조금 일그러지긴 했지만 꽤 그럴싸했다. 옥상 난간에 나비를 살포시 얹었다. 가을바람이 불자 나비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날갯짓을 했다.

작은 두 날개가 바람을 타고 울음처럼 흔들렸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것들>

 

정찬영 원광여고 3

나비무덤이란 작품을 통해 나는 많은 것들을 말하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와 비슷한 내 또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었다.

이 작품을 쓰면서 나는 잘 쓰려는 노력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글 속에 녹여내기 위해 노력했다. 세상에 흑백논리로는 설명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에 대해 고민했으며 그러한 고민들을 토대로 인물들 한 명 한 명이 더 입체적이고, 현실과 가까워지도록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누군가는 이 소설을 읽으며 화자가 답답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소설 속 ‘나’처럼 선과 악 그 어느 편에도 서지 못한 채 둘의 중간 쯤 되는 그 어딘가를 찾고 있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직은 글 솜씨가 많이 부족하기에 전하고자 했던 바가 작품 안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많이 부족한 글을 좋게 봐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앞에서 굉장히 거창한 단어들을 빌려 내 소설의 부족한 부분들을 변호하려고 했지만 그것 또한 내가 아직은 많이 미숙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소설을 쓰는 동안 즐거웠고 또 꽤나 고통스러웠다. 그럴듯한 허구의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사실 아직도 내 글에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모순된 것들이 많이 보인다. ‘글’이라는 것은 말과 달리 휘발되지 않기에 쓰는 내내 신중에 신중을 기울이려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실수들이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나는 글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며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내가 ‘나비무덤’이라는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신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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