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시] 고양이와 나 / 이제는 걸어야 한다.
[독자시] 고양이와 나 / 이제는 걸어야 한다.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11.1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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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시 / 원녹견 국어교육 16

고양이와 나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서 고양이를 만난다.

고양이는 오늘 노란색이었다가 내일 검정색이었다가 모레는 흰색이었다가 어제는 회색이었다.

태어날 때는 삼색이었고 죽을 때는 흰 양말을 신고 있었다.

나는 오늘 노란색이었다가 내일 검정색이었다가 모레는 흰색이었다가 어제는 회색이었다.

태어날 때는 삼색이었고 죽을 때는 흰 양말을 신고 있었다.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서 나를 만난다.

 

이제는 걸어야 한다.

나는 늪에 빠진지 오래라

늪에서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늪의 깊이는 내 키가 커가는 만큼씩 꼭 깊어졌다.

어느 누구도

나의 늪을 침범할 수 없고

오직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늪이다.

늪은 내가 수영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가 내가 모르게 더 깊어졌다

늪이 나에게 준 세상은 목 위로의 호흡뿐이다.

하지만 내 세상은 늪이 아니었다.

일어날 차례이다.

이제 내 발은 걸으려 한다.

내 팔은 걸어야 한다.

걸으려 하지 않으면 걸을 수 없다.

이제는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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