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에서 전주로, 동학농민운동을 따라서
정읍에서 전주로, 동학농민운동을 따라서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11.13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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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이들을 위한 전북기행 ➄동학농민운동의 발자취를 따라서 두 번째]
 

정읍에서 전주로, 동학농민운동을 따라서

 


한 번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우리. 그러나 자가용이 없는 ‘뚜벅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뚜벅이족의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 전북대신문사가 직접 걸어 전북의 곳곳을 다녀봤다. 그 현장으로 들어가 보자. <엮은이 밝힘>

▲예동마을의 주민들, 만석보를 무너뜨리다

 

동학농민운동, 한국사를 공부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는 단어다. 그러나 발상지인 고부가 어디이며 봉기 원인이 된 만석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대부분 과정에 대해서는 무지해 실패한 농민봉기로 기억할 것이다. 사실 기자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동학농민운동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시작점이라고 평가받으며 단순 농민봉기가 아닌 혁명으로 불리고 있다. 이러한 역사는 100년이 더 된 역사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들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곳이 어떠한 역사를 겪었는지 현장은 기억할 것이다. 이에 기자는 동학농민운동의 흔적을 찾기 위해 옛 고부인 정읍으로 여정을 떠났다.
만석보는 현재 사라지고 없는 대형저수지다. 정읍 예동마을 근처에 만석보 혁파비와 함께 터로 추정되는 곳만 남아있다. 만석보 터는 123번 정읍시내버스를 이용한 뒤 ‘화전’ 정류장에서 하차, 그리고 만석대교 쪽으로 10분간 걸어 이동하면 도착 할 수 있다. 만석보 터에는 옛 만석보 조감도와 만석보 유지비가 있다. 한쪽에는 강이 흐르고 반대편에는 드넓은 논과 밭이 보였다. 옛 부터 전라도는 곡창 지대였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과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전라도민들은 지속적인 수탈의 대상이었다. 1890년대 고부도 그러한 상황이었다. 당시 고부 군수였던 조병갑은 농민들을 강제 동원해 만석보라는 대형 저수지를 축조했다. 그는 강제 노역을 부여한 것도 모자라 사용료를 부과 했고 각종 수탈을 일삼았다. 이에 분노한 예동마을 주민들은 인근 주민들과 함께 봉기를 일으키니 이것이 동학농민운동의 첫 시작이었다.

전봉준을 필두로 모인 농민들은 만석보를 무너뜨렸고 고부 관아 창고에 있던 곡식과 재물을 사람들에게 나눠 줬다. 이를 기념하고자 현재 예동마을 입구에는 만석보 혁파비가 보존돼 있다. 만석보 터에서 예동마을 쪽으로 도보를 따라 이동했다. 그러면서 상쾌한 가을바람을 쐬며 드넓은 평야를 보면서 100년 전 이곳을 상상했다. 이토록 평화로운 땅이 잘못된 지도자를 만나 수탈의 상징이 돼 안타깝다는 생각들. 30분쯤 지났을까. 지루할 틈 없이 마을 입구에 당도했다.

도착 후 우뚝 솟아 있는 조형물에 시선이 갔다. 황금색으로 칠해져있는 농민들이 깃발을 들고 투쟁을 하고 있는 동상으로 처음에는 만석보 혁파비인줄 알았다. 그러나 알고보니 동학농민혁명 최초 봉기 상징 조형물이었다. 혁파비는 조형물에서 2분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했으며 한옥 기와로 된 비각 속에 있었다. 이를 유심히 보고 있자 마을 입구에 있었던 주민 한분이 혁파비가 세워진 이유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임종환(정읍·75) 씨는 “동학농민운동의 시작은 예동마을에서 시작됐다. 조병갑 뒤의 안길수 군수가 만석보를 혁파했다는 기념으로 혁파비를 1898년에 세웠다”고 말했다. 그 후 100여 년 동안 방치돼, 비문의 형태가 알아 볼 수 없게 되자 뜻있는 지역주민들의 권유로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비각을 세우게 됐다고 한다. 만석보 유적지를 둘러본 뒤 동학농민혁명기념관으로 향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과 황토현 전적지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은 말 그대로 동학농민운동을 기념하며 이와 관련된 유물들을 보관하는 박물관이다. 동학농민혁명에 관련된 무기, 생활용품 등을 전시·보존하고 있으며,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상설전시실’과 매년 2회의 기획전시를 하는 ‘기획전시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기념관은 동학농민군의 최초 전승지인 황토현전적지 부근 정읍 덕천면 동학로에 위치해있다. 정읍시내에서 버스 124번 승차 후 황토현전적지 하차하면 건물들이 보이는데 그곳이 기념관이다. 기념관에 당도한 뒤 기획실로 향했다. 이번 기획전은 ‘우리 곁의 동학농민군 이야기’라는 유족 증언록 특별전이었다. 삽화들과 함께 유족들의 편지, 회상록 등 수많은 글자들이 보였다. 전부 유족 증언록이다.

 

 

삶과 죽음
갑오년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굴곡진 역사 속으로 뛰어들었던
동학농민군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어야만 했습니다.

하나하나 자세하게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제목만 스쳐봐도 서러움이 느껴졌다. 기획실의 전시를 감상하고 1층 전시관을 관람했다. 전시관에는 ‘19세기 조선과 자각하는 농민들’이라는 주제로 꾸며져 있었다. 조선 말기 농민들의 시선으로 유물들을 설명한 점들이 특이했다. 이어 어린이 전시실, 체험공간을 지나고 2층 전시실로 향했다. 2층부터는 동학농민운동에 관한 각각의 사건들의 테마로 이뤄져있었다. 그 중에서도 눈이 간 곳은 사발통문이었다.

 


났네 났어 난리가 났어
에이 참 잘 되었지
그냥 이대로 지내서야
백성이 한사람이나
어디 남아 있겠나
[사발통문 서론]

이 문서는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악에 고부관아 습격을 계획하며 작성한 문서다. 주모자를 숨기기 위해 사발을 엎어서 그린 원을 중심으로 참가자의 이름을 둘러가며 적은 통문으로 동학농민군 지도부가 남긴 유일한 문서다. 그밖에도 방문했던 고부관아, 말목장터, 만석보 등도 설명 돼있으며 조병갑, 황토현 전투 등 익숙한 단어들을 마주했다.

유적지를 방문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하루라는 시간에 방문했던 장소와 그곳들의 역사. 기자에게는 하루에 불과했지만 그 시절 농민들에게는 삶과 죽음이 걸려있던 생존의 장소였으며 권리를 얻기 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기념관 관람을 마치고 황토현 전적지를 둘러봤다. 기념관에서 10분 정도 되는 거리로 도보로 이동할 수 있다.

이곳은 한옥 건물로 이뤄져 있으며 조용하고 걷기 좋은 곳이었다. 고즈넉함도 느껴지며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황토현 전적지는 황토현 전투를 기념한 곳이다.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상대로 처음으로 승리한 전투이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 전투 이후 농민군은 전주성까지 점령하게 되는데 황토현 전투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전주성과 전라감영 선화당 재건축

 

고부관아 습격으로 시작된 동학농민운동 1차봉기의 마지막은 전주성 점령이다. 이에 따라 기자도 여행을 마무리 짓기 위해 풍남문으로 향했다. 풍남문은 현재 전주 4대 성문 가운데 유일하게 남겨진 성문이며 성터의 흔적이다. 재래시장인 남부시장의 입구에 당당하게 서있지만 주변 환경은 옹색하기만 하다. 1894년 당시 농민군이 이룬 최대 전승지로서의 의미와 입성이후 벌어지는 완산전투 등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동학농민운동을 통해 전주가 갖는 중요성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흔적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는 유적지다. 또한 동학농민 군은 전주성 입성 이후 전주화약을 통해 집강소 통치를 실행했는데 오늘날 지방자치와 근접한 개념으로 당시로서는 과히 획기적인 방침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시작점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전주성에서 조금 떨어진 전주 객사 근처에는 전라감영 선화당과 전주관아 재건축이 한창이다. 선화당은 전라감사 김학진의 집무실로 전라도 행정과 권력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봉준장군은 김학진과의 타협이후 이곳 선화당에 집무하면서 김학진과 함께 전라도 일대의 행정을 장악했다고 한다. 집강소를 역사상 최초의 민중권력기관이라고 본다면 선화당의 역사적 중요성과 의미는 어떤 유적에 비해서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선화당은 동학농민군의 집강소 통치와 관련해 가장 상징적인 현장이다. 전라도의 수부이자 정치적 핵심이라는 상징적 의미에서 선화당이 복원되고 그 공간의 역사속에서 동학농민혁명이 자연스럽게 설명될 수 있는 기념방식이 필요하다.

최기웅 기자 roal12340@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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