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카타리나를 추모하며
한국의 카타리나를 추모하며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11.13 13: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의 카타리나를 추모하며

2019년의 끝자락에 왔다. 이번 한 해는 기자에게 학보사로서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수많은 가짜뉴스들로 언론의 신뢰도는 하락했으며 시기와 장소를 막론하고 플래시를 터트리는 우리나라 언론의 이면이 절실히 드러났다.

언론은 자유라는 이름하에 과연 누군가의 명예를 앗아가도 되는 가는 이미 오래지속 돼온 문제다. 독일의 동명소설이 영화화된 영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서는 70년대의 이러한 독일 언론의 이면이 생생히 녹아있다. 영화는 비윤리적인 취재를 하고 의혹과 추측만으로 얄팍한 기사들을 쏟아내며 ‘카탈리나’라는 한 개인의 명예를 송두리째 지워버린 ‘짜이퉁’의 만행을 보여준다. 결말에 현존하는 독일 유명지 ‘빌트’를 거론하면서 실제로 독일에서 만연히 행해진 일들임을 암시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짜이퉁 기자의 죽음을 추모하는 것으로 끝난다. 개인인 카탈리나는 지워지고 남는 건 언론의 자유라는 겉보기에 완벽한 가치가 승리했던 당시를 보여준다.

기자는 이 영화를 보면서 학생기자를 하며 추구했던 알 권리가 양날의 검이었음을 생각하게 됐으며 자연스레 우리나라 언론의 현주소를 떠올리게 됐다. 그러나 대한민국 언론은 현재 1970년이 아니라 2019년에 있다. 언론의 자유와 알권리라는 명목 하에 모든 걸 용서받을 수 있던 시기는 한참 전에 지났음에도 이를 답습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한편 누구에게나 정보가 열려진 시대에 이런 상황이 강화됐다는 건 아이러니한 점이다. 따라서 진위 여부의 판단을 뒤로하고 이러한 언론의 답습을 묵시하는 수용자들도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 제대로 된 상황을 보려하지 않고 자극적인 정보만 취사선택해 공유하는 일이 계속 될수록 한국의 카타리나들은 점점 늘어갈 것이다.

그렇다고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결코 민주적인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언론이 무소불위한 권력이 되고 있는 지금 법적인 방법을 세우는 것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앞서 최대의 견제세력인 수용자들이 목소리를 내야할 것이다.

이미 수많은 카타리나들이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하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죽음을 경험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언론의 자유라는 감투를 쓴 무기에 좌우되고 있지는 않은 지 한 번 더 숙고하고 뉴스를 받아들일 때다. 끝으로 죽어간 카타리나들을 추모하며 그들의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아 줄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제대로 구축되길 바란다.

주연휘 | 사회부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