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부터 체험까지…임실 치즈愛 반하다
역사부터 체험까지…임실 치즈愛 반하다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11.27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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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이들을 위한 전북기행 ⑥임실 치즈마을 여행]

역사부터 체험까지…임실 치즈愛 반하다

 

한 번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우리. 하지만 자가용이 없는 ‘뚜벅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고민을 위해 전북대신문사가 직접 걸어 전북의 곳곳을 다녀왔다. 그 현장을 전한다. <엮은이 밝힘>

▲카멜레온 같은 매력, 치즈

 

지금 가장 먹고 싶은 음식 딱 한 가지만 떠올려 보자. 피자? 떡볶이? 라면? 독자가 방금 생각한 음식 위에 ‘치즈’가 놓여있다고 가정해 본다면? 우리의 밥상 위에서 주재료로도 토핑으로도 모든 음식의 화룡점정이 되는 치즈는 다양한 방식으로 음식의 마지막을 장식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널리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치즈의 역사와 제조과정 등 자세한 내막은 대부분 알지 못한다. 세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만큼 치즈의 역할과 중요성을 알아보기 위해 치즈를 주제로 한 국내 유일 체험형 관광지, ‘임실 치즈테마파크’로 떠났다.

오전 9시, 제법 쌀쌀해진 바람과 쾌청한 하늘로 기자의 여행이 시작됐다. 전주에서 임실까지 시외버스로 약 40분 정도 소요되며 버스 배차간격은 30분 정도다. 임실터미널 앞에 있는 ‘임실터미널 정류장’에서 왕방, 오수, 신흥청 방면 버스를 타고 다섯 정거장 이동하면 된다. ‘갈마 정거장’에서 하차해 갈마 육교 방면으로 약 20분을 걷다 보면 광활한 치즈테마파크가 보일 것이다.

 

반드시 입구에서 하차하길 권한다. 말 그대로 테마파크다. 모든 건물의 외관과 내부 모두 치즈를 연상케 하는 구조이기에 입구에서부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추운 날씨에 기자의 발걸음은 치즈 판매장으로 향했다. 두 손에 쥐어진 구운 치즈와 따뜻한 우유가 본격적인 출발을 알렸다.

올라가는 언덕길, 기자의 눈길을 한 번에 끈 건물이 있었다. 귀족들이 살던 유럽의 성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임실 치즈테마파크의 랜드마크, ‘치즈캐슬’이다. 캐슬 앞에는 국화화단이 펼쳐져 있었는데 계절이 지나 그 절경을 볼 수 없었다. 10월 초 이곳을 방문하면 흐드러지게 핀 국화와 만날 수 있다. 언덕길 곳곳 익살스러운 만화와 동화 속 주인공으로 꾸며진 포토존 또한 기자에게 동심을 선사했다.

언덕의 끝에는 치즈 모양을 형상화한 17m 높이의 홍보 탑이 있다. 3층 전망대서 전경을 바라보니 드넓은 초원과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정적을 깬 건 ‘음메 소리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유가축장 안 산양 떼가 무리를 지어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산양의 울음소리와 함께 기자의 배꼽시계도 울렸다. 치즈캐슬 1층에 있는 프로마쥬레스토랑을 찾았다. 프랑스 치즈를 의미하는 ‘프로마쥬’의 단어를 본떠 치즈 본연의 맛을 살려 조리하는 식당이다.기자는 치즈커틀릿을 택했다. 연신 칼질을 할 때마다 치즈는 한없이 늘어나는 게 맛은 물론 보는 재미까지 제공한다. 이밖에도 치즈 스파게티, 치즈피자 등이 있다.

▲지정환, 불모지에 기적을 피우다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던 치즈, 우리나라 음식이 아니란 것은 대개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언제 들어오게 됐을까. 치즈캐슬 2층에는 대한민국 치즈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홍보관이 있다. 홍보관 앞 로비에는 외국 남자의 사진이 곳곳에 붙어있다.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통해 그가 바로 우리나라 치즈 역사의 시초인 ‘지정환’ 신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난 1958년 전북 임실군에 벨기에의 지정환 신부가 선교사로 오게 됐다. 당시 임실군수는 지 신부에게 신자들뿐만 아니라 임실군 전체를 위한 일을 부탁했고 지 신부는 고심 끝에 산양 두 마리로 농민들과 함께 치즈 제조를 시작했다. 산이 많고 농사지을 땅이 부족한 임실 지역 주민들을 돕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하지만 처음 만든 치즈는 맛과 냄새가 생소하고 품질이 좋지 않아 생산이 지지부진했다. 후에는 젖소로 치즈를 만들었지만, 냉장시설이 없어 우유가 쉽게 변했다.

신부는 치즈 제조 기술을 배우기 위해 유럽으로 갔다. 석 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자 신부를 의심한 농민들은 소를 팔고 고향을 떠나기 시작했다. 1969년 신부가 돌아왔을 때는 단 한 사람만이 소를 팔지 않은 상태였다. 신부는 낙심하지 않고 농민들과 다시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저장 기간이 짧고 보관이 힘든 카망베르 대신 3개월 이상 보관이 가능한 체다 치즈를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양식당, 특급호텔과의 계약으로 치즈 판매망은 넓어졌으며 임실의 치즈 산업은 물량이 부족할 정도로 발전했다. 치즈 불모지에서 기적을 만들어낸 지정환 신부는 생전의 인터뷰에서 “전 단지 그들과 함께 한 것뿐입니다. 함께 배우고 사랑하면서 뭔가가 이뤄지는 것이지요”라고 말했다.

앞만 보고 너무 열심히 뛰었던 탓일까. 지 신부는 1970년대 초반부터 오른쪽 다리에 다발성신경경화증을 앓기 시작했다. 신체 기능이 조금씩 마비되는 병이었다. 그때부터 지 신부는 목발과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됐다. 3년간 치료를 위해 벨기에로 돌아갔다가 1984년 귀국 후 중증 장애인의 뒷바라지에 헌신하기로 했다. 지 신부는 전북 완주군에 중증 장애인을 위한 재활센터 ‘무지개 가족’을 설립했다. 그는 이곳에서 누워 지내야만 하는 중증 환자들의 치료와 운동 재활에 힘썼다. 60년간 가난한 한국을 위해, 소외당하는 이웃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준 지 신부는 불모의 땅에 기적을 행하고는 지난 4월 13일 홀연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지정환 신부는 임실 치즈 역사의 시발점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한편 홍보관 문화관광해설은 오전 11시와 오후 1시, 3시에 30분간만 운영된다.

▲치즈 하나로 각양각색의 요리를 연주하다

 

임실 치즈테마파크의 꽃, 오감 만족 할 수 있는 치즈와 피자 만들기 체험에 나섰다. 임실 치즈의 생성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A코스, 임실치즈와 쌀피즈를 만들 수 있는 B코스가 대표적이다. 순서대로 1인당 21.000원, 18.000원이며 시간 이밖에도 C코스, P코스, S코스, 선택코스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임실 치즈테마파크 홈페이지(cheesepark.kr)를 참고하면 된다.

 

기자는 B코스를 택했다. 우유를 자연적으로 젖산 발효시켜 만든 네덜란드의 코티지 치즈를 만들었다. 해설가의 설명에 따라 탁자에 놓여있는 따뜻한 우유에 소량의 유산균을 추가했다. 우유가 따뜻한 이유는 사람 체온보다 높은 38~40도일 때 유산균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온도가 높아야 유산균이 활발해져 치즈 만들기에 적합한 것이다. 다음으로 렌넷을 추가했다. 여기서 렌넷은 송아지의 위액으로 응고의 성질을 지닌다. 유산균과 렌넷이 추가된 따뜻한 우유를 칼로 5번 저음으로써 유산균을 배양시킨다. 10분정도 두면 우리가 흔히 먹는 치즈가 완성될 것이다.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치즈보다는 싱거웠지만, 본연의 치즈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윽고 피자 만들기에 나섰다. 준비된 도우를 손으로 늘리고 크러스트 부분에 기름을 바른다. 이는 보다 바삭하고 고소하게 구워지기 위한 하나의 비법이다. 이후 토마토 소스를 골고루 붓고 치즈가루와 청피망, 양파, 버섯, 고기를 가로세로 1cm 정도로 얇게 잘라 뿌려준다. 250도 오븐에 5분 정도 구우면 피자가 완성된다.

견학을 끝내고 전주로 돌아오는 길, 양손은 치즈와 피자로 무거웠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는 치즈의 모든 것을 알고 느끼고 싶다면 올겨울, 임실 치즈 마을을 추천한다.

장지은 기자 remannt990727@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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