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4. 독자시. ( 당신을 믿고 추락하던 밤* / 기도 )
1504. 독자시. ( 당신을 믿고 추락하던 밤* / 기도 )
  • 전북대신문
  • 승인 2019.12.0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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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시-정은영(철학 16)

 

당신을 믿고 추락하던 밤*

아직 아무도 죽지 않았다 죽을 것 같은 것과 이미 죽은 것 사이엔 배신감이 들 정도로 분명한 간격이 있다

12시는 죽기 좋은 시간이라고 말했다 온갖 검은 것들로 난무하며 모두가 취해있는 시각에 서로의 움직임을 움켜쥐고 가까워질 준비를 했었지 우리가 한 몸으로 태어났다면

나는 네가 누운 뒤 남은 물기를 닦을 수 있을까 대답은 한숨처럼 바닥으로 떨어진다

왜 운명은 그토록 푹신했을까 머리는 땅에 닿지 못했고 그대로 부서지지도 못하게 실은 당신과 나는 이미 시체였던 게 아닐까 더 이상 죽을 수 없어서 죽고 싶은 척을 했던 건 아닐까

도망치고 싶어 아니 뺏고 싶어 남겨진 모든 것들을 우린 가질 수 없는 것 마디가 갈라진 손가락과 그 애 눈가에 있던 나비 모양 흉터 아니 눈동자는 빼고

너는 잃어버린 것을 찾고 싶을 뿐이라 했다 목숨, 목과 숨이 없어서 우린 죽고 싶었던 거라고 목이 없으니 당연히 숨을 쉴 수 없지 그럼 우린 죽어버린 게 맞아

유언처럼 낙하하는 몸을 붙잡는다 흥건해진 손바닥으로 눈을 감는다 어깨가 흔들린다 비명을 견디며 난간을 붙잡는다 천국은 발밑에 있어

서로의 발끝을 잡고 남겨진 밤을 향해 추락했다

*시리 허스트베트의 소설

 

 

기도

엄마는 아침을 맞으며 무릎을 꿇었다

발끝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기도를 눈물처럼 흘렸다

허공을 바라보다 달처럼 희미해진 얼굴을 늘어뜨렸다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 턱을 치켜들었다 속삭임은 절규처럼 들렸다

해가 질 때까지 두 손을 맞대고 있었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엄마의 허리는 흔들리고 있었다

축축한 볼을 투명하게 붙잡았다

제발 일어나, 귀에 대고 울먹여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신에게 빌고 있는 게 아니라 신을 빚고 있었다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잡아먹히고 있는 것처럼

무너진 허리 위로 목소리만 흘렀다

금세 지워지는 발자국처럼

머리카락이 희게 바랜 채 흩어졌다

그림자는 흐려지지 않았다

청혼을 기다리는 여인처럼 울고 있었다

무릎이 뿌리처럼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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