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소설문학상 대학부문 당선작-몽타주
최명희소설문학상 대학부문 당선작-몽타주
  • 전북대신문
  • 승인 2012.10.18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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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최명희청년소설문학상 대학부문 당선작

(그 외 당선작 아래 관련기사 참조)

 

                                           몽타주

                                                                              양이석 동국대 문창 4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얼굴이 있다. 그 얼굴은 죄악이다. 눈과 코, 입, 턱의 생김새, 눈썹, 미간, 모든 것이 그를 죄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관식은 형사다. 몽타주를 그리는 형사다. 관식은 언제나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보고 다닌다. 사람의 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눈, 코, 그리고 입이다. 그것들의 생김새에 따라 사람은 구별된다. 세상에 똑같이 생긴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모든 이목구비는 조금씩 다르게 생겼다. 크거나 작거나 높거나 낮거나 처지거나 치켜 올라가거나 튀어나오거나 들어가 있다. 관식은 얼굴을 그린다. 범죄자의 얼굴을 그린다. 진술을 듣고 나서 그린다. 상상하고 나서 그린다. 관식의 머릿속에는 놀라울 만큼 다양한 유형의 눈, 코, 입이 각인되어 있다. 진술을 바탕으로 머릿속에서 적당한 눈코입을 골라낸다. 그린다. 비율을 조정해 간다. 머리털 한 올 한 올 까지 같은 박자로 그려내는 관식의 모습은 자칫 기계적으로 보인다. 관식의 머릿속에는 이미 용의자의 얼굴이 떠올라 있다. 그것을 손으로 그려내는데 열중할 뿐이다. 용의자의 얼굴이 완성된다. 관식은 좀 더 정확히 그리겠다는 듯 얼굴의 명암을 계속해서 매만진다. 음흉한 눈매, 꿍꿍이속이 있는 입. 관식은 이 얼굴의 주인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알고 있다. 끊임없이 되새기며 명암을 넣는다. 이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지으며 절도, 강간, 살인을 저질렀을지 상상한다. 무심코 험악한 표정을 짓게 만드는 실수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관식은 프로다. 20년간 몽타주만을 그려온 형사다.
관식은 그것들 사이에서 어떤 법칙을 찾아낸다. 범죄에는 생김새가 있다. 강간범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눈매가 있다. 살인을 저지를 인간의 입매는 어떨까. 있다.
"오셨슴까."
몽타주실로 들어가는 길목에 후배가 인사해 왔다. 목에 수건을 두른 채로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관식이 눈썹을 슬쩍 들어보였다.
"잠복했슴다."
"어디?"
"약수동요. 노인 변사사건 있었잖습니까."
후배가 한손으로 연신 눈을 비벼가며 말했다. 충혈되어 있었다.
"뭐가 좀 있어?"
"혈연이나 금전관계로 알아보는 중인데 아직 이렇다 할 건 없슴다."
관식이 고개를 끄덕이곤 몽타주실로 들어갔다. 스위치를 올리자 형광등이 더디게 켜진다. 가방을 내려놓고 책상 밑의 전기난로에 불을 붙인다. 관식은 요즘들어 발이 시렵다고 느낀다. 데스크탑의 전원을 켜고 의자에 앉아 난로 앞에 손을 가져간다. 양손을 비비고, 깍지를 껴보고, 공들여 손을 푼다. 이 사무실에 들어앉은 날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다. 그사이 부팅이 완료된다. 연결된 대형 모니터를 켜고 노트북의 전원까지 켠다. 몽타주실 안의 관식은 세 개의 모니터 사이에 둘러싸인 모양이다. 관식은 태블릿 마우스를 쥐고 프로그램을 켠다.
몽타주 전문 프로그램은 매년 갱신되고 있다. 기능이 업그레이드되고, 새로운 데이터가 추가된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껏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눈이나 코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요즘은 국내 체류 외국인이나 불법체류자들의 범죄가 늘어나고 있어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수집중이다. 관식은 기동대가 구역을 순찰하듯이 얼굴의 일부를, 그것을 표현한 그림들을 하나하나씩 둘러본다. 이것이 그의 일과 중 맨 첫 번 째다. 관식의 머릿속에도 데이터베이스가 존재한다. 매일같이 다시금 각인시킨다. 필요할 때 가장 적합한 데이터를 끄집어내는 훈련이 꾸준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에 등재된 천 삼백 개의 눈 데이터 중 관식이 그릴 수 없는 모양은 없다.
아침을 거르고 출근한지도 몇 개월째다. 가능하면 식사를 하고 출근하는 습관을 들였지만 요즘들어 여의치 않았다. 어머니가 직접 싸오신 밑반찬과 얼려놓은 국이 냉장고에 그대로 있다. 왜인지 손이 가질 않았다. 주로 아침과 점심 사이 어정쩡한 시간에 컵라면 등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저녁까지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집에서는 거의 밥을 먹지 않는다. 관식은 책상 한 켠에 쌓아둔 컵라면 중 하나를 집어든다. 정수기를 찾아가 강력반으로 가는 중에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길어진다. 그러다 연결된다. 어, 왜.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관식은 걸음을 멈추고 복도에 설치된 의자에 잠시 앉기로 한다.
"주말에 전화를 못했네. 바빠서."
정확히는 나흘간이다. 관식은 나무젓가락 끝으로 머리를 긁었다.
"엄마는?"
"잘 지내."
수영은 부쩍 말수가 줄었다. 원래도 가까운 부녀간은 아니었지만 부부가 갈라선 이후에 더욱 그렇게 됐다. 어쩌면 아빠를 원망하는 지도 모른다. 일이 이 지경까지 온 것은 모두 관식의 탓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모녀는 친했으니까. 중학교 3학년인 수영은 관식과 아내의 이혼절차가 진행되는 내내 그들과 대화를 하려 하지 않았다. 아내와 어떻게든 설득하려고 했으나 딸은 좀처럼 맘을 열지 않았다. 부모가 법적으로 남남이 되고 나서야 수영은 마지못해 수긍하는 듯했다. 아이는 부인과 함께 살게 되었다. 관식은 이따금씩 전화를 하고 있지만 수영이 전화를 받는 횟수는 점점 줄어간다. 학원이다 뭐다 바빠서 그렇다고 말한다. 그러나 부재중 통화기록을 보고도 다시 걸어오지는 않는다. 사춘기잖아. 너무 귀찮게 하지 말고 내버려 둬. 아내는 그렇게 말했다. 귀찮다니.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이혼 이후 오히려 수영과 대화를 자주 시도한 건 사실이다. 딴 속셈을 품고 친한 척하는 친구처럼 느낄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필요한 것 있으면 얘기하고."
"응."
"무슨 일 있으면…… 아빠 일하는 데로 와."
어. 짧게 대답하는 수영의 목소리가 무감했다. 이내 전화가 끊겼다. 이혼 후 관식은 오피스텔을 얻었다. 경찰청에서 멀지 않은 작은 곳이다. 원래 살던 집에서는 아내와 딸이 살기로 했다. 관식의 짐 일부는 아직도 그 집에 있다. 아내는 천천히 가져가라고 선심 쓰듯 말했지만 관식은 앞으로도 그 짐들을 가져 올 생각이 없었다. 앞으로 아내와의 관계가 바뀌지 않더라도 짐들은 거기 있어야 한다. 거기서 낡아가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의 주인 대신 말이다.

티브이 채널을 돌리던 관식의 손이 멈췄다. 케이블 방송사의 심야 프로그램에서는 미해결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시골 마을의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일어난 부녀자 강간 살인이었다. 금방 지나친 화면에는 누군가의 얼굴이 크게 클로즈업 되어 있었다. 관식은 거의 화면 속의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고 느꼈고, 그 눈매는 분명히 어디에선가 본 기억이 있었다. 남들의 생김새를 관찰하고 자신만의 데이터를 수집해놓는 습관이 있는 관식이다. 어쩌면 어디선가 만난 사람일지도 모른다. 혹은 자신이 그린 적이 있는 눈일지도 모른다. 관식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지역은 근 10년 동안에는 관식이 지나치지도 않은 곳이었다. 먼 지방의 생소한 마을.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나 유명인을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스쳐지나간 그 얼굴에서 관식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무엇인지 깨닫기 전에 놓쳤다. 가슴이 울렁거림을 느꼈고, 목이 조금 말랐으나 언제 다시 화면에 그 얼굴이 비칠지 몰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다음날 프로그램을 다시 보기 위해 관식은 방송국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자료는 올라와있었다. 근무중 틈틈이 재생시켜보다가 관식은 문제의 장면에서 화면을 일시정지 시켰다.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얼굴이다. 천천히 뜯어보니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름도 생소했다. 마을주민이라고 소개된 중년의 남자는 피해여성이 평소 조용한 성격이었으며, 마을의 대소사에도 잘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증언했다. 관식은 그의 불그레한 볼과 이마, 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간 눈의 모양, 한쪽 끝이 처진 입매와 광대뼈를 자세히 보았다. 찝찝한 기분이었지만 어디가 시선을 끌었는지 찾아낼 수 없었다. 노트를 꺼내 그의 얼굴을 자기 손으로 재현하기 전까지는.
광식은 지금까지 어림잡아 수백명의 강간범, 강간살인범들을 그려왔다. 법최면으로 피해당시의 기억을 복원하고 관식의 앞에서 진술을 하는 동안 여자들은 괴로워했다. 비명을 지르거나 흐느끼는 여자들이 있었다. 부모와 함께 입회하는 경우 공포와 분노는 가족들에게도 옮겨갔다. 딸을 껴안거나 맥없이 때리는 어머니, 주먹을 무릎 위에 놓고 부들부들 떠는 아버지의 모습을 한두 번 보아온 것이 아니다. 관식은 그럴 때마다 쥐고 있던 연필을 놓고 그녀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인이 박힌 일이라 새삼 가슴이 아프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흐느낌을 수습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진정될 때까지 손을 풀며 기다렸다가 다시 대화를 시작한다. 오기억이나 타인에 의한 기억의 왜곡 없이 얼굴을 그리기 위해서는 피해자와의 대화가 중요하다. 편견없이 그리려고 노력하지만 관식은 안다. 알아버린 것이다. 여자들이 떠올리며 몸서리치는 눈과 코, 입과 턱이 어떻게 생겼는지. 가끔은 몽타주뿐이지만 누범으로 확신할 때도 있었다. 붙잡히지 않고 똑같은 짓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인간들도 있는 것이다.
관식은 그 남자의 얼굴에서 발견했다. 집요하고도 반복적인 범죄의 징후를.

인상이 안 좋아. 박씨에 대한 관식의 감상은 그랬다. 박씨가 보험설계사로 그들의 집을 드나들 때의 일이다.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 박씨가 관식에게 특별히 잘못한 일은 없었다. 남의 이목구비를 뜯어보고 그의 성정을 짐작하는 것이 관식의 버릇일 뿐이었다. 아내는 그런 식으로 속단하지 말라며 충고했다. 좋지 않은 느낌은 들어맞았다. 부인과 사별해 혼자 살고 있던 박씨와 아내는 곧 살림을 합치기로 했으니까. 관식에게 두 사람의 소식을 전하는 수영의 목소리는 무덤덤했다. 자기와 상관없는, 또한 관식과도 상관없는 일이란 것처럼. 그들의 관계가 시작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간통이었을까. 아내는 아니라고 했지만 관식에게 확신은 없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몽타주실에 틀어박혀 데이터를 뒤지고, 조합하고, 흐느끼는 피해자를 달래가며 용의자의 얼굴을 그리는 동안 박씨는 얼마나 자주 집에 드나들었을까. 관식은 그렇게 생각했다. 얼마든지 나쁜 쪽으로 상상할 수 있다.
아내는 미루나무를 좋아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미루나무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수영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둘이서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숲이 울창한 곳을 주로 찾아다녔다. 그즈음 인적 드문 어디쯤의 여관에서 아내는 수영을 가졌을지 모른다. 교대근무에 지쳐 여행 따위는 꿈도 꾸지않게 되었을 무렵, 아내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곤 했다. 딸아이를 데리고 갈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혼자였다. 못마땅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데려가진 못할망정 훼방을 놓지는 말라는 아내에게 대꾸할 말은 없었다. 관식은 차라리 관심을 끊기로 했다. 어디를 다녀왔는지 묻는 것도 잊어버리는 밤이 있었다. 이따금 아내와 함께 찾았던 숲이 그리워질 때도 있었지만 표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수사관에게 이르든 늦든 언젠가는 찾아오는 것이 있다. 무력감이다. 수사하던 사건이 미해결로 남고 말 때, 피해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을 때 온다. 수사를 진행함에 있어 점점 몽타주의 입지는 줄어들고 있다. 한 해에 의뢰건수는 이제 10건 내외로 줄어들었다. 그나마도 전단으로 제작되어 관할서에 뿌려지는 경우는 한 두건에 불과하다. 관식도 과학수사팀에 들어가 있지만 몽타주실 밖의 무리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그렇게 느끼고 있다. 연초에 상부에 몽타주 스케치 수업을 창설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응답이 없다.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고참수사관들이 후배에게 종종 하는 말을 들어왔다. 몽타주를 너무 믿지 말라는 것이다. 자칫 수사망이 엉뚱한 쪽으로 좁혀질 수 있다는 요지였다. 그럼 무엇을 믿을까. 형사의 감? 관식은 코웃음을 쳤다. 많은 범죄들이 CCTV가 촬영할 수 없는 사각지대에서 벌어진다. 용의자의 신변파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부표처럼 방랑하는 수사의 방향을 어떻게 붙잡는단 말인가? 관식이 생각하는 답은 몽타주였다. 그렇게 믿고 20년의 세월을 바쳤다.
부녀자 살인사건의 수사가 급물살을 탔다. 유력한 용의자가 나타났다.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케이블 프로그램의 인터뷰를 자처한 이웃 남자였다. 목격자인 체했던 그를 목격한 진짜 목격자가 나타난 것이다. 경미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이웃 여자의 집을 자주 드나들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남자 소유의 밭을 파헤친 결과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은 부검을 거치게 되었고 도중에 남자는 범행을 자백했다.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말했지만 정황상 계획범죄의 냄새가 짙었다.
말하자면 관식은 누구보다도 먼저 범인을 알아챈 것이다. 그것도 현장 한 번 가보지 않은 상태에서, 화면으로 보이는 누군가의 얼굴로만 말이다. 떠들어봤자 누가 믿어주기나 할까. 기분 탓이라고 웃어넘길 일이다. 관식은 수사결과 발표를 시청중인 과학수사팀을 빠져나왔다. 뒷목이 당기고 어깨가 뭉친 느낌이다. 한 손으로 어깨를 주무르며 흡연실 문을 열었다. 담배를 입에 물며 관식은 허탈하게 웃었다. 이런 일도 있네. 연달아 두 대의 담배를 피우고 나서 관식은 생각을 환기시켰다.
이 발견은 수사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얼굴이다. 범죄는 얼굴이 있다. 그 얼굴을 그려낼 수 있다면 나는 범죄를 뒤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손 놓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찾아낼 수도 있다. 관식은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멈춰있었다. 누구에게나 얼굴은 있다. 관식은 그 안에 진짜 무엇이 있는지 알아내는 사람이 된 것이다.

스케치북을 꺼낸다. 뾰족한 연필 한 자루와 뭉툭한 연필 한 자루를 준비한다. 한 팔로 스케치북을 끌어안듯 쥐고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눈이다. 곡선이긴 하나 많이 둥글지 않은 눈꺼풀이다. 눈꼬리는 조금 아래로 처졌다. 눈동자. 둥그런 눈동자를 몇 번이나 고쳐 그린다. 눈썹. 반절을 조금 지난 지점까지 위를 향하다 아래로 급히 꺾여 내려온다. 아내와는 중매로 만났다. 어머니의 고향 친구분이 다리를 놓아주었었다. 아내의 첫인상은 희미했다.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어머니에게 손주를 안겨드리고 싶은 마음만은 있었다. 코. 두드러진 눈썹뼈의 정 중앙에서 굵직하게 내려온다. 콧망울이 조금 도드라진다. 아내의 똑부러지는 면이 마음에 들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잘 키울 것 같았다. 어머니를 잘 모시기로 약속했다. 수월하게 결혼까지 갔다. 딸아이가 태어났다. 수영이라고 이름짓기로 했다. 탈 없이 잘 자라주어서 오히려 신경쓰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콧망울 끝에서 퍼져나가는 모양으로 인중이 길고 또렷하다. 윗입술은 아랫입술의 2/3정도로 얇다. 아랫입술의 중앙부에 희미하게 한 줄짜리 주름이 가있다. 입꼬리는 보일 듯 말 듯 올라가있다. 형사 초년생이었을 때다. 보도방 수사를 하던 무렵이었다. 갓 스무살이 된 도우미가 눈에 띄었다. 어쩌다보니 배가 맞았다. 여자애는 직업여성답지 않게 나에게 순정을 바치려고 했다. 서 안에 소문이 돌았다. 아내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수영이가 돌 때였다. 다 때려치우자는 아내를 어머니가 말리고 빌었다. 그런 난관도 헤쳐나온 적이 있었다. 아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긴 했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얼굴형은 전체적으로 팔각형의 모양이 된다. 광대뼈는 콧등의 중앙부 높이에서 가장 튀어나와있다. 턱의 가운데는 엄지손가락으로 짓눌러놓은 것처럼 살짝 들어가있다. 아랫입술과 튀어나온 턱뼈 사이에 음영을 채워 넣는다. 손가락으로 번지게 한다. 아내의 마음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완전히 떠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하고픈 마음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이어갔다. 상관없이 아내는 살아가고, 어머니는 늙어가고, 수영은 자라났다. 그렇게 인생의 끝을 맞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했어야 파국을 막을 수 있었을까. 이마의 선, 머리털, 귀 끝까지 그리고서 관식은 연필을 내려놓았다.
관식은 고개를 들어 벽시계를 보았다. 두 시간이 지나갔다. 눈높이로 스케치북을 들어올려 그림을 보았다. 몽타주가 완성됐다. 추하다고 할 만한 얼굴은 아니다. 그러나 이 얼굴은 죄악이다. 신도 구제할 수 없는 죄의 얼굴이다.
"이게 뭡니까?"
"일단 가지고 있어보라고."
"예?"
후배는 몽타주를 들여다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다 깨서 몽롱한 눈빛이었다.
"누군데요?"
"나도 몰라."
관식의 말에 후배가 헛웃음을 지었다. 누군데 그리신 겁니까?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후배에게 관식은 앞으로 어디선가 보게 될 얼굴이라고 말했다. 원본인 그림 위에 안경을 씌우거나 모자를 씌우거나 수염을 붙이거나 흉터를 새긴 각기 다른 몽타주를 얹어주었다. A4용지의 각을 맞추는 소리를 들으며 관식은 다시 몽타주실로 들어간다.
새해에 들어 폭설이 이어지고 있다. 근무를 마친 관식이 가방을 챙겨 서를 빠져나온다. 차는 그대로 두고 걸음을 옮긴다. 눈발이 제법 굵어 머리가 젖기 시작한다. 한동안 그치지 않을 것 같은 눈이다. 얼마 뒤에 수영의 졸업식이 있다. 핸드폰은 얼마 전에 최신형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유행에 민감한 요즘 아이다. 관식은 아이가 어렸을 때를 떠올린다. 서에서 쓰는 무전기를 실수로 집까지 가져온 날이었다. 관식의 핸드폰과 무전기를 양손에 들고 아빠는 왜 두 개나 있어? 하나만 줘, 떼를 쓰는 아이 덕에 웃었던 것을 기억한다. 아빠를 하늘처럼 생각했던 시절이다. 이런 기억이 있다면 좀 더 늙을 때까진 괜찮을 것이다. 곧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수영을 위해 겨울용 코트를 사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관식은 근처 시장과 이어진 로데오거리로 들어선다.
아빠는 왜 색칠을 안해? 내가 색연필 빌려줄게.
관식이 그린 몽타주를 보며 수영이 했던 말이다. 기억에 혼란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흑백으로 그려야만 하는 몽타주를 보며 어린 딸아이는 의아했던 것이다. 아이의 볼을 살갑게 만지며 관식이 말했다.
아빠는 정확하게 그리기 위해서 그런 거야. 진짜 모습을 정확하게.
그 뒤로 수영이 그리는 아빠의 모습은 언제나 흑백이었다. 진짜 그림을 그리려면 색칠을 하면 안 된대. 우리 아빠가 그랬어. 친구들에게 훈수를 두기도 했다. 아이의 그림은 관식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머리를 짧게 깎았을 땐 머리털이 한 올도 없는 꼴이 되고, 살이 쪘을 땐 그림속의 관식도 거대하게 불어났다. 젊은 시절 사진을 갖다주며 멋지게 그려달라고 해도 아이는 그리지 않았다. 나는 진짜 모습을 그릴거야. 이건 옛날 거잖아. 사람들은 나이가 들며 자연스레 자신의 모습에 흥미를 잃어간다. 그러나 딸아이가 보는 자신이 궁금하지 않은 아버지는 없다. 수영이 아버지 그리기를 멈추었을 때, 관식은 하나뿐인 거울을 잃은 것이다.

오피스텔에 처음 들른 날부터 어머니는 늘 같은 걱정을 했다.
"우예 묵고 사노."
"서에서 먹지요 뭐."
혼자서 우예 묵고 살라카노. 내 이따 갈꾸마. 분명 또 먹을거리를 해다 나를 뜻이다. 다 늙은 양반이 아들자식의 이혼 때문에 고생이다. 관식은 조만간 오피스텔을 정리하고 어머니를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어머니의 반찬을 떠올리곤 민망스러워진다. 관식은 퇴근길에 대형마트에 들러 법주 한 병과 안주거리를 사고, 모둠회를 한 접시 산다. 빵집을 지나치다가 어머니가 좋아하는 밤만주를 눈으로 찾고 있었다. 관식이 한 손으로 잡고 있던 카트를 누군가 치고 지나간다.
"죄송합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관식은 얼음을 통째 삼킨 것처럼 속이 시렸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었다. 그것이다. 그 얼굴이다. 시선을 떼지 않는 관식을 힐끗 돌아본 뒤 남자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주머니에 한 손을 꽂아넣은 채였다. 마트 천장에 매달린 상품 분류표를 보며 매대 사이로 들어갔다. 말이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관식은 홀린 듯이 따라갔다. 착각이 아니다. 핸드폰으로 다운받아놓은 몽타주의 이미지를 불러냈다. 사실 확인하지 않아도 안다. 자기 손으로 그려낸 얼굴이 틀림없다는 것을. 관식은 카트를 마트 어딘가에 내버려둔 채로 남자를 찾아다녔다. 퇴근 무렵의 대형마트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디서 길이 어긋났는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관식은 계산대가 일렬로 늘어선 곳으로 뛰어갔다. 계산대의 끝부터 끝까지를 빠르게 걸어다니며 남자를 찾았다. 남자는 캔맥주와 마른 안주 몇 개를 계산대 위에 올려놓는다. 다시 확인해도 그 얼굴이 맞다. 관식은 머리를 거칠게 쓸었다. 계산을 마친 남자가 비닐봉지를 들고 걸어나간다.
남자는 마트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근처에 사는 주민이라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어 보인다. 관식은 멀찍이 떨어져서 남자의 행동거지를 주시한다. 몇 대의 버스가 지나간다. 파란색 간선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한다. 남자는 정류장 팻말에 기대고 있던 몸을 움직인다. 관식도 따라 움직인다. 남자는 빈 좌석에 앉는다. 관식은 시선을 주지 않고 뒷좌석으로 간다. 버스는 계속해서 달린다. 도심으로 들어선다. 캄캄한 밤이 되었고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다. 남자는 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남자가 산 것은 가는 길이 아니라면 딱히 대형마트에서 사지 않아도 될법한 물건들이다. 맥주캔을 따는 소리가 들린다. 관식의 옆에 앉은 여자가 그 소리에 앞좌석을 쳐다본다. 남자는 맥주를 마시며 차창 밖을 바라본다. 어딜 가고 있는 걸까. 왜 그곳에서 출발한 걸까. 모든 것이 수상하게 느껴진다. 버스는 도심을 빠져나와 주택가로 들어선다. 남자가 내린 곳은 한 아파트단지 앞이었다. 관식은 거리를 두고 뒤를 밟았다. 이곳이 그의 집일 거라는 관식의 예상은 또 빗나갔다. 남자가 향한 곳은 작은 족발집이었다. 남자는 그곳에서 족발을 샀다. 봉지를 달랑거리며 걸어간다. 아파트 단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빌라단지가 보였다. 골목길로 들어간 남자는 오래된 빌라들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걸어다녔다. 불이 꺼진 빌라 한군데 앞에서는 꽤 오래 멈춰 서있기도 했다. 관식은 건물 이름을 기억해둔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골목에는 함박눈이 쌓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방황하던 남자는 아까 내린 정류장의 건너편으로 간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는 금방 도착한다. 남자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며 관식도 버스에 올라탄다. 버스 안에 설치된 내부 거울로 관식은 남자를 살핀다. 시간은 이제 한밤중으로 접어들고 있다. 추위에 손이 곱은 느낌이다. 관식은 힘주어 손가락을 풀며 생각을 정리한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동선이다. 이번에는 버스가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관식은 따라내린다. 남자는 정류장서 내려 오르막길을 가기 시작한다. 쌓인 눈 때문에 길이 미끄럽다. 골목골목으로 빠지는 남자를 관식은 요령있게 따라붙었다. 고시텔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 관식은 핸드폰을 꺼냈다.
"예. 강력반 오상식입니다."
후배는 금방 전화를 받는다.
"야, 너. 지금 어디냐."
"저요? 서인데요."
"부탁 하나만 하자. 요즘 서대문, 약수, 금호에서 일어난 미해결 강도, 강간, 살인 추려서 나한테 좀 갖다줘. 아니, 좀 예전 것까지 해도 돼. 최대한 빨리."
관식은 잠바의 어깻죽지에서 눈을 털어낸다. 이미 흠뻑 젖어있다. 주위의 건물들을 살펴보던 관식은 이내 언덕을 뛰듯이 내려간다. 큰길에서 택시를 잡아탄다.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실 터였다. 관식은 집에 가기 전 오피스텔 앞 상가에 들렀으나 빵집은 이미 문을 닫은 시간이다. 통닭을 한 마리 포장해가기로 한다.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까만 울코트는 종이가방에 포장되어 관식의 책상 밑에 놓여있다. 같이 산 머플러는 다홍빛이 도는 붉은 색이다. 옷가게의 여직원에게 묻고 또 물어 겨우 결정한 것이다. 애가 유행에 민감해서, 관식이 말하자 여직원은 유행을 타지 않는 기본적인 아이템이라며 이 코트를 골라주었다. 이만큼 비싼 옷을 아내에게도 딸에게도 선물해본 적 없다. 관식은 괜스레 발등으로 툭툭 쳐 종이가방을 확인해본다. 수영에게 전화를 건다. 아이는 졸린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통화하는 동안에도 연신 하품이다.
"졸업식 몇시랬지?"
"안와도 돼. 엄마 있으니까."
"……"
"아저씨랑 오기로 했대."
아, 그래. 관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영은 껄끄럽다는 듯 한숨을 쉬곤 말을 이었다. 어차피 바쁘잖아. 응. 그렇지. 관식이 어깨를 움츠리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핸드폰을 쥐지 않은 손으로 짧은 머리를 연신 쓸어넘기며 말했다. 졸업 선물은? 왜. 필요없어? 에이. 그래도. 관식이 생각나는 대로 물으면 수영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마른 웃음을 섞어 대화하는 동안 관식의 눈은 담뱃갑을 찾았다. 책상 위에 놓인 담뱃갑과 라이터를 챙겨 몸을 일으키는데 몽타주실의 문이 열렸다.
"선배님. 부탁하신 거요."
"어. 거기다 놔."
"시효 지난 건 뺐습니다."
"그래."
아빠. 나 끊을게. 관식이 대답도 하기 전에 전화가 끊겼다. 핸드폰 액정을 들여다보다 황망히 고개를 드는 관식에게 후배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손에 든 담뱃갑과 책상 끝에 놓인 파일철을 번갈아보다가 관식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파일은 꽤 두꺼워서 끝이 벌어져있다.
"나이는 30대 초중반으로 보이고."
"누구 말씀이십니까?"
"저번에 너한테 준 그림 있잖아. 그 놈 찾아냈다. 확실해."
누구의 증언도 없이 관식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몽타주다. 아니 그게 순서가 맞는 겁니까? 후배는 영 미심쩍다는 반응이었다. 관식이 사건일지를 뒤진다. 자료는 중구난방으로 섞여있어 관식이 분류해야 했다. 그러고보니.
"너 저번에 약수동 갔다고 안 그랬어?"
"아. 노인 변사사건이요. 잠복은 채무관계 있는 사무실 앞에서 했는데요. 왕십리쪽에."
"파일 좀 가져와봐."
"예? 그거는, 자살로 거의 다 갔는데요."
"자살이라고?"
"거의 확실하다고 봅니다. 현장에 강도흔적인지 뭔지 분간이 안 간 게 있었는데 일단 지문 검출 안됐고. 침입 흔적 없어요. 부검결과 나와 봐야 알겠지만 지금은 일단."
"이상한 데 없어?"
"주위 진술은 뭐 그럴 양반 아니라고 하죠. 곧 있을 팔순 잔치 얘기 하던 사람이 그럴 리가 없다고요. 근데 남이야 모르는 문제 아닙니까."
"일단 파일부터 가져와 봐."
노인이 숨진 장소는 자기집이다. 미래빌라. 201호. 관식은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관식의 깊은 한숨을 들은 후배가 왜 그러냐고 묻는다. 그곳이다. 그날 밤 남자가 가던 길을 멈춰 잠시 올려다보던 낡은 빌라.
"이거 잡아야 된다."
후배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관식의 얘기만 들어서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었다.
"영장 안 나와요 선배."
"다른 걸로라도 일단 잡아보자. 카메라 좀 빌려오고."
관식은 다른 업무를 뒤로 제쳐두고 후배와 함께 잠복을 시작했다. 사흘째 되던 날 남자는 미래빌라 앞에 나타났다. 관식은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빌라의 불 꺼진 창을 올려다본다. 관식과 후배가 시선을 교환했다.

아내는 수영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아이를 필리핀으로 보내자고 했었다. 필리핀은 왜. 연고는커녕 사돈의 팔촌까지 뒤져도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낯선 땅이었다. 아내는 결심이 확고해보였고, 수영도 내심 원하는 눈치였다. 두 사람에게 이미 필리핀은 미래였다. 최종적인 목표가 뭔지는 잘 몰라도 아무튼 반드시 거쳐야하는 관문처럼 보였다. 관식이 일에 몰두하며 가족과 서서히 멀어지는 동안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게 분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를 이 땅에 남겨두고, 어쩌면 꾸준히 돈을 보내줄 방편으로서 남겨두고 먼 땅으로 날라버리겠다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관식은 침묵하며 두 사람을 거의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아내는 뭘 봐, 라고 말했다. 관식의 싸늘한 시선에 자존심이 상한 눈치였다. 그럼 내가 지금 어딜 볼까? 비꼬는 기색이 역력한 관식의 말투에 아내는 코웃음을 쳤다. 수영은 앉아있던 소파를 박차고 일어나 제 방으로 들어갔다. 큰소리를 내며 방문이 닫혔고, 그것을 신호로 부부싸움이 시작되었다.
여러 차례의 싸움이 있었고, 관식과 시어머니의 만류로 아내는 필리핀행을 포기했다. 애초에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여편네가 어디서 헛바람이 들어와서 그러지. 상관 마세요. 관식은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엄마! 큰소리로 부르는 수영의 모습이 보였다. 수영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아내와 박씨가 서있었다.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손을 흔들고 있다. 박씨는 사진을 찍는다. 꽃을 든 아내와 수영을 번갈아 찍는다. 졸업식 노래가 장내에 울려 퍼진다. 여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핸드폰을 높이 들고 자기들끼리 사진을 찍고 있다. 수영의 주위엔 모두 처음 보는 아이들이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수영이를 보는 것은 초등학교 입학식 이후로 처음이다. 아이를 부르느라 소란스러운 학부모들, 들떠서 재잘거리는 아이들, 마이크의 잡음, 뭔가가 진행되고 있는 단상 위. 관식은 서서히 그것들 속에서 자신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홀로 무빙워크에 올라타고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담임선생으로 보이는 사람이 일렬로 선 반 아이들에게 졸업장을 하나씩 나눠주고 있었다. 수영이 받아들고 선생님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보내줄걸.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보내줄 걸 그랬다.
"선배. 얼른 오셔야겠습니다."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관식은 손에 든 종이가방을 내려다보았다. 오늘의 아버지 역할은 끝났다. 지켜보는 이 아무도 없이 관식은 그 역할을 해냈다.

"살지도 않는 동네를 왜 빙빙 돌아?"
"나는 그냥 구경하던 거라고요. 몇 번을 말해요. 왜냐니요. 이사 갈 집이니까 그렇죠. 그 집 알아봤다고요. 복덕방에 전화해보시든가. 아 씨팔. 사람 말 이렇게 무시해도 됩니까? 증거도 없이 잡아놓고? 고시원 산다고 무시하는 거 아니냐고요?"
관식은 취조실 바깥에서 남자가 언성을 높이는 것을 잠자코 듣고 있다. 손을 쥐었다 폈다 한다. 후배가 취조실 밖으로 나와 관식을 잡고 끈다. 씨근대며 말한다.
"사람 죽고 집이 그렇게 나왔으니까 싸겠죠. 이사가려고 둘러봤다는데. 아, 지가 그런 걸 즐긴다는데 어쩌겠어요."
"그날 뭐했대? 죽은 날."
"방에서 공부했답니다."
더 이상 왜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후배는 답답하다는 듯이 발을 굴렀다.
"이거 이대로 끌고 가다간 우리만 뭐 되는 거 아시잖습니까."
"아냐. 끝내면 안돼. 뭔가가 있다고 분명히."
후배는 거의 탄식하고 있었다. 뚜둑 뚜둑, 뼈마디를 눌러 소리를 낸다.
"일단 보내겠습니다. 더 잡아둘 증거도 없고."
잔뜩 성질이 난 남자가 취조실 문을 발로 차며 나왔다. 관식은 남자에게 시선을 똑바로 맞췄다.
씨발 진짜. 좆도 모르는 새끼들이. 관식을 힐긋 보며 남자가 욕을 지껄였다. 무엇 때문인지 눈이 충혈되어 있다. 뭔가 잘못됐다. 내가 발견한 것은 이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 얼굴이 맞다. 관식은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남자의 뒤를 쫓아간다. 서의 현관을 열자 찬바람이 끼쳐온다. 다시 눈이 내리고 있다. 신경질적으로 계단을 밟아 내려가던 남자가 미끄러질뻔 한다. 분통이 터진다는 듯 땅을 걷어차며 욕을 한다. 저기요. 이보십시오. 관식이 남자를 불러세운다.
"뭐에요, 또?"
"그날. 당신이 방으로 들어가는 거 본 사람 없습니까?"
"뭐라고?"
"오후 일곱시에서 아홉시 사이에 고시원에서 당신을 목격한 사람이 있냐고요."
"뭐라고 하는거야 이 자식이?"
관식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문득 도주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남자의 잠바 자락을 움켜쥐었다. 남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관식을 뿌리쳤다.
"내가 댁들 고소합니다. 이따위로 수사하다가 밥줄 끊겨봐야지."
관식은 남자의 옷자락을 놓지 않았다. 놓을 수가 없었다. 이거 놔. 안 놔? 밀쳐내고 붙잡다 둘 사이에 몸싸움이 시작되었다. 남자가 관식의 어깨를 밀어내다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주먹이 관식의 턱에 꽂혔다. 관식은 비틀거렸지만 손을 놓지는 않았다. 주먹질이 오갔다. 관식이 바닥에 쓰러졌다. 경찰서 현관에서 시작된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경비와 형사들이 몰려와 두 사람을 뜯어말렸다. 남자가 발길질을 하며 관식에게서 떨어져나왔다. 잡아야되는데. 관식은 허공에 손을 뻗어 허우적댔다.
"정신차려요. 왜이러십니까 정말."
후배는 뒤에서 관식을 끌어안듯 붙잡고 경찰서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질질 끌려가다시피 하던 관식이 정신을 차리고 걸을 때 쯤 후배가 화장실 안으로 관식을 밀어넣는다.
"여기서 머리 좀 식히고 계세요. 제가 알아서 할테니까. 예?"
철제 문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닫혔다. 화장실 안에 다른 사람은 없다. 관식은 끝이 빨갛게 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쥐었다 폈다 하며 피를 통하게 한다. 내게 남은 하나뿐인 자산이다. 지킬 것이 있다면 이것뿐이다.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벽에 붙은 방향제가 분사되는 소리가 고요를 깬다. 관식은 힘이 풀린 다리로 몇 걸음 옮긴다. 화장실 창으로 밖이 내다보인다. 잠시간의 소란스러움을 잠재우듯 눈이 내린다. 계속해서 내린다.
관식은 얼굴을 돌려 정면의 대형거울을 본다. 그리고 낯섦을 느낀다. 내가 이렇게 생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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