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소설문학상 고등부문 당선작-똥개들의 왕
최명희소설문학상 고등부문 당선작-똥개들의 왕
  • 전북대신문
  • 승인 2012.10.1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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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개들의 왕

 

                                                                                   정유진 고양예고 3

아빠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아빠의 뒤로 똥개들의 행렬이 펼쳐졌다. 아빠는 골목대장이라도 된 것처럼 당당히 앞으로 걸어갔다. 뒷발이 땅에 질질 끌리고 있는 절름발이 개, 하얬을 털이 흙먼지와 뭉쳐 몸의 곳곳이 얼룩덜룩해진 개, 커다란 덩치와는 달리 슬금슬금 주위를 살피는 개. 수많은 개들이 아빠를 뒤따르며 발걸음에 맞춰 짖어댔다. 개들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아빠의 표정도 밝아졌다. 그럼에도 이따금씩 걸음을 멈춰 헥헥 거리는 개들에게 물을 마시게 하거나 행렬에서 이탈된 개들을 살폈다. 절름발이 개는 매번 행렬에서 뒤로 처졌다. 하지만 절름발이 개는 힘겹게 걸음을 옮기면서도 아빠를 뒤쫓았다. 다른 개들보다 더디고 느린 발걸음이었다. 그랬기에 대열의 가장 뒤에서 아빠를 힘겹게 쫓아갔다. 다리를 절며 힘겹게 몸을 움직이는 그 개의 모습이 나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나도 그 개처럼 아빠를 힘겹게 뒤따르고 있는지도 몰랐다. 햇볕에 쬐인 땅은 발을 대기 싫을 정도로 뜨거웠지만 아빠는 그 행렬을 멈추지 않았다. 그저 바람이 약하게 불어올 때에 가만히 서서 개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개들을 이끄는 아빠의 얼굴은 조금 상기 되어 있었다. 바람이 멈추면 다시 아빠는 바쁘게 동네를 휘적휘적 걸어 다녔다. 그리고 똥개들의 흔적을 치워 나갔다. 왼손엔 쓰레기봉투, 오른손엔 집게가 들린 채였다. 가는 곳마다 개들의 흔적이 있었다. 아빠는 개들이 싸놓은 똥을 집게로 집어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쓰레기봉투가 묵직해지는 동안 아빠를 따르는 개들도 점점 늘어났다. 기차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기다란 대열이 이어졌다. 구부정하던 아빠의 어깨가 꼿꼿해졌다. 내 방 조그만 창문 사이로 본 아빠는 똥개들의 왕이었다.

아빠는 충견 같았다. 회사가 부르면 낮이든 밤이든 언제든지 달려갔다. 주인이 자신에게 아무리 무심하게 굴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주인이 다른 개들에게 더 관심을 줄 때도 아빠는 오로지 한 주인만을 섬겼다. 아빠는 자신이 있는 자리를 지키며 주인을 위해서 움직였다. 내가 본 아빠는 회사에 모든 충성을 다하는 충견이었다.
친구들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학교에 나오지 않을 때도 나는 학교에 있었다. 학교가 집보다 편했다.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만이 내게 주어진 전부였지만 나는 내 자리에서 비로소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적어도 학교엔 누군가가 있었다. 언제나 회사를 지키는 아빠 때문에 홀로 집을 지키기 일쑤이던 내겐 그게 가장 중요한 사실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아무도 없는 집을 견딜 수 없었고, 그 시간을 견디는 것보다 학교에서 누군가의 말소리라도 듣는 게 좋았다. 0교시가 시작되는 8시부터 자습이 끝나는 10시까지, 개들이 제 집을 지키듯이 나 또한 내 자리를 지켰다.
근근이 버텨오던 회사에선 더 이상 아빠와 일할 수 없다고 통보해왔다. 아빠는 이십 년이 다 되도록 일한 회사의 배신에 한참동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늙고 병든 개가 10년 가까이 자신을 키워줬던 주인에게 버림받는 것처럼 아빠도 그랬다. 아빠의 자리는 더 젊고 유능한 사람으로 채워졌을 것이다. 오랫동안 일한 회사였음에도 아빠의 짐은 상자 하나에 충분히 담겼다. 상자를 들고 집까지 오던 날은 눈이 펑펑 내리던, 그 해의 가장 추운 날이었다. 어쩌면 아빠는 꽁꽁 언 바닥에 쿵 하고 미끄러졌을 지도 모른다.
그 겨울, 나는 수능을 끝낸 고3이었다. 나는 새롭게 정착할 곳을 찾아 떠도는 중이었다. 하지만 내 길도 꽤나 미끄러웠던 모양이다. 어떤 대학에서도 나를 불러주지 않았다. 합격통보 전화가 울리길 기다렸지만 전화벨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동안 하나 둘 친구들의 합격소식이 들려왔다.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학교에 나오지 않았던 아이들도 있었고, 좋아하는 아이돌의 스케줄에 정신을 쏟던 아이들도 있었다. 이상하게 그 아이들은 뚜벅뚜벅 빙판길을 잘만 걸어갔다. 그때 나는 아빠가 술을 마시고 자주 말했던 것처럼 '왜 하필 나야!' 라고 소리 질렀던 것 같다.
아빠는 한 번도 내 입학식과 졸업식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나 또한 굳이 졸업식에 갈 이유가 없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졸업식에 홀로 멀뚱멀뚱 서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의 입에서 졸업식이 언제냐는 물음이 튀어나왔을 때, 그것만으로도 졸업식에 갈 이유는 충분해졌다.
겨울의 끝 무렵 아빠는 처음으로 졸업식을 찾았다. 그때 나는 빙판길을 뚜벅뚜벅 잘만 걸어간 아이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벌써 대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아이들과 달리 나는 고등학생으로 멈춰 서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계속 움츠러들었다. 졸업식이 시작되고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입꼬리만 올렸다. 아빠가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흘끔흘끔 학부모석을 훔쳐봤던 예전처럼 고개를 돌려 학부모석을 봤다.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던 아빠가 그곳에 있었다. 어깨를 빳빳이 펴고 웃고 있는 다른 학부모들과는 달리 어깨를 한껏 움츠린 채로 서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아빠가 내 뒤편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비로소 나는 조금 더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인기 있는 견종도, 비싸고 화려한 개들도. 낙오되는 순간부터 똥개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다. 아빠와 나도 그랬다. 아빠는 더 이상 회사원이 아니었고, 나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니었다. 우리는 선과 선 사이에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없는 빈 여백처럼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빠와 나는 각자의 방에서 한 달 동안 생각에 잠겼다. 방문은 오랫동안 입을 다물었다. 그 시간 속에서 집 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처럼 고요했다. 아빠와 나는 깊은 바다 속에 잠겨버린 것처럼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우리는 생각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밥을 먹다가도 생각에 잠겼고 고3을 보내는 동안 풀었던 수많은 문제집을 정리하다가도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또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어디에 속해야 할지. 생각은 많아졌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분명 집 안엔 아빠와 나 두 사람이 존재했지만 정작 우리는 그 시간들 속에 혼자였다.
이사 가자.
아빠가 정적을 깨고 말했다. 아빠가 빌빌대는 모습이 입시에 패배한 내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아빠와 나는 서울을 떠나 이곳으로 왔다. 서울의 흔적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곳이었다. 동네로 발을 내밀 때, 아빠와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동네로 처음 발을 내딛었을 때, 아빠와 나는 한참을 마을 어귀에 멈춰서 있었다. 시끄러운 소음들로 가득 차 있던 서울과 달리 동네는 고요했다. 평생을 소음 속에서 살아온 아빠와 나에게 그 고요함은 낯설기만 했다. 키 작은 집들이 동네를 채웠고 바쁘게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도 없었다. 쉽게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우리 앞으로 똥개 한 마리가 다가왔다. 그제야 우리는 동네로 들어설 수 있었다.
동네는 미지근한 물을 끼얹은 것처럼 나른했다. 아저씨들은 집 앞에서 담배를 뻑뻑 펴댔고 아줌마들은 슈퍼 앞 평상에 앉아 화투를 쳤다. 더 나이 든 이들은 의미 없이 마을을 거닐었다. 그 모습을 보며 혹시 동네 사람들도 우리처럼 낙오되어 이곳에 온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어딜 가나 개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서울로 몰려드는 것처럼 똥개들도 이 동네로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개들 사이에 끼어 사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똥개들 중엔 잡견들뿐만 아니라 잘 팔리고 값이 꽤 나가는 개들도 있었다. 뭐라도 사기 위해 집을 나서면 길거리마다 개들이 어슬렁거리고 있거나 쓰레기를 뒤지고 있었다. 왜 이렇게 이곳에 똥개들이 많은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아빠와 내가 이곳을 찾은 것처럼 똥개들도 버림받고 이곳을 찾은 걸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을 '똥개 동네'라고 불렀다.
동네 사람들은 개들에게 누구보다 냉정했다. 굶주린 개들에게 조금의 음식도 내주지 않았고 마당으로 개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욕설을 내뱉으며 개들을 걷어찼다. 개들은 사람들이 내놓은 쓰레기봉투를 찢어 밥을 먹어야 했고 복수라도 하듯이 그들의 집 앞에 똥을 쌌다. 똥개들과 동네 사람들의 대결구도는 치열하게 계속됐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개들을 쫓아내고 싶어 했지만 개들은 자신의 집을 떠나지 않겠다는 듯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똥개들은 동네 사람들로 인해 위태로운 곡예생활을 이어나가야 했다. 그래서인지 똥개들은 사람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사람이 보이면 슬금슬금 피하거나 이를 세웠다. 똥개 때문에 다친 사람도, 사람 때문에 다친 똥개도 있었다.
어쩌면 아빠는 똥개들에게서 어떠한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개들에게 밥을 주고 개들이 싼 똥과 개들이 만들어낸 쓰레기들을 손수 치우기 시작했다. 아무도 하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아빠는 개들의 흔적을 치워 나갔다. 대학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먹는 것마다 체하기 일쑤였던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나는 개들 말고 우리나 신경 쓰라고 짜증을 냈지만 아빠는 못들은 척 똥개들에게로 갔다.
봄바람이 마을에 슬쩍 불기 시작했을 때, 똥개들은 아빠에게 마음을 열었다. 아빠에게 가장 먼저 마음을 연 건 한 쪽 뒷다리를 저는 절름발이 개였다. 절름발이 개가 처음으로 아빠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그 개가 뒤따르기 시작하자 아빠를 뒤따르는 개들은 빠르게 늘어났다. 똥개들의 기차놀이는 그렇게 시작됐다. 자신들을 향한 애정을 알아주기라도 한 것처럼 똥개들이 아빠의 뒤를 지켰다. 힘없이 축 늘어져 있던 아빠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아빠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앞에 서 보았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 문을 퍽퍽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바로 앞에 달린 초인종을 두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한 명 뿐이다. 책상에서 현관까지 가는 그 짧은 사이 문이 한 번 더 두드려진다. 얼른 문을 열자 부녀회장 아줌마가 떡하니 서 있다. 남자 못지않은 커다란 키와 허리도 굽히지 못할 것 같은 뚱뚱한 몸을 가진 아줌마는 매번 사람을 움츠리게 만든다. 특히 아줌마를 따라다니는 싸구려 향수냄새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지독하다. 아줌마가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다본다.
"아빠 안 계신데…."
나는 아줌마가 묻기 전에 쫓기듯이 먼저 대답한다. 아빠가 집에 있는 시간보다 똥개들을 데리고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시간이 더 길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도 아줌마는 매번 집을 찾아온다.
아줌마는 양치기 소년을 보듯 나를 바라본다. 그리곤 나를 옆으로 밀치며 집 안으로 들어간다. 이 방, 저 방의 문을 모두 열어 아빠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야 아줌마는 큼큼하고 헛기침을 하며 다시 내 앞으로 온다. 싸구려 향수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떻게 된 양반이 집에 붙어 있질 못한대?"
아줌마는 당당하다. 그에 비해 나는 제대로 된 말 하나 붙이지 못한다. 아줌마는 추궁이라도 하려는 듯 실눈을 뜬 채로 나를 바라본다.
"너희 아빠한테 그 짓거리 그만하라고 전하긴 했니?"
"전했어요."
"눈 하나 끔뻑 안 하고 개새끼들을 감싸고도는 이유가 뭐야? 답답해서 정말."
똥개들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서도 그 뒤치다꺼리는 아무도 하지 않던 반 년 전, 아빠는 동네사람들 중 처음으로 똥개들의 뒤치다꺼리를 시작했다. 아무도 하지 않는, 귀찮고 불편한 일을 아빠가 해주자 동네사람들은 허구한 날 아빠를 칭찬했다. 서울에서 와서 그런지 사람이 참 부지런하고 싹싹하다며 지나갈 때마다 한 마디씩 건네 왔다. 하지만 끓어 넘치던 물이 시간이 지나 찬찬히 식어가는 것처럼 아빠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도 식어갔다.
사람들은 똥개들을 개장수에게 팔겠다고 했고 아빠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막아섰다. 두 의견이 극명하게 대립되었다. 아빠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던 사람들이 이젠 아빠에게 사람이 왜 그렇게 고지식하냐며 짜증을 냈다.
"죄송합니다."
나는 아빠의 잘못을 대신 사과한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동네사람들은 우리 집 현관을 자주 이용한다. 그리고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다. 아빠의 잘못을 내가 사과해야 한다고만 생각하는지 내게 사과를 요구하는 눈빛을 보내온다. 그래야 속이 풀리는 모양이다. 내가 사과를 하기 전까진 발을 떼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내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너희 아빠 집에 잠시 들렀다 나가지?"
"네."
아줌마는 아빠가 언제 나가고, 들어오는지도 알고 있다. 아줌마뿐만 아니라 동네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아빠는 아홉 시에 일찌감치 집을 나선다. 새벽 세 시까지 수능기출문제집을 풀다 잠든 내가 일어나는 시간이다. 이상하게 아빠가 집을 나서는 시간과 내가 눈을 뜨는 시간은 오차 없이 겹쳐온다. 아빠가 집을 나가고 나면 나는 홀로 집안에 남아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가끔 베란다에서 똥개들과 동네를 휘젓는 아빠를 보았다. 아빠는 큼지막한 가방을 메고 오른손엔 집게, 왼손에는 쓰레기봉투를 든 채로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똥개들을 향해 누구보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아빠를 보면 어쩐지 웃기가 힘들어졌다.
"얘?"
아줌마의 목소리가 나를 닦달한다.
"너희 아빠 오면 두 시간 정도만 잡아두라고. 딸인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네?"
"얘는 내 말을 어디로 들은 거야. 오늘 개장수 불렀다니까? 5시쯤에 개장수 올 거야. 그 정도쯤에 너희 아빠도 집에 들어오니까 잘 됐지, 뭐. 이제 진짜 못 참아. 동네 사람들이 착해서 너희 아빠 의견도 들어 주고 그런 거지."
똥개새끼들이 뭐가 좋다고 그러나 몰라. 네 아빠 집에 오면 좀 붙잡아 둬. 알았지? 다다다 말을 쏘아붙이던 아줌마가 재촉하듯이 되물어온다. 나는 얼른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대충 고개를 끄덕인다. 에어컨 하나 없는 찜통 같은 집안과 등 뒤로 따갑게 맞닿는 태양 때문인지 아줌마는 처음 집에 찾아왔을 때보다 훨씬 지쳐 있다. 연신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땀을 식힐 요량으로 두터운 손으로 부채질을 시작하지만 땀방울은 얼굴을 타고 목주름으로 스며들었다.
"너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 말고 좀 적극적으로 말리고 그래. 어떻게 된 애가 아빠 하나 못 말리니."
날은 또 왜 이렇게 더워. 아줌마는 부채질을 하며 우리 집으로부터 빠르게 멀어진다. 나는 아줌마의 등을 보고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인다. 아빠가 똥개들의 대장이 되는 사이, 나는 이 동네에서마저 낙오되면 어떻게 할지에 대해 생각했다. 오늘이 지나면 괜찮아 질지도 모른다. 더 이상 낙오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루라도 빨리 아빠가 제자리를 찾길 바랄 뿐이다.

열 살 때, 아빠가 회사에 나가 있는 동안 혼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 때, 나는 깊은 바다 속에 갇혀 버린 것처럼 어둡고 외로웠다. 다른 아이들이 엄마가 차려주는 맛있는 밥을 먹고 엄마에게 하루 일과를 늘어놓는 동안에도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내 기억 속에서 엄마는 한 번도 살아 숨 쉰 적이 없었다. 흘리듯 아빠가 해주던 말에 따르면 엄마는 내가 갓 돌이 지났을 때 떠났다고 했다. 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엄마는 늘 누군가의 뒤에서 금방이라도 낙오될 것처럼 불안했던 아빠를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혼자 보내야 했던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없었다.
엄마도 아빠도 없는 시간, 나는 오랫동안 집 근처를 서성이곤 했다. 그날도 다를 것 없는 날이었다. 아빠에게선 언제나 그렇듯 늦는다는 전화가 왔고 나는 홀로 집에 남겨지는 것이 싫어 집밖을 서성였다. 아이들이 많이 모여 있던 놀이터나 문방구에도 가봤지만 모두 집으로 들어간 후였다. 오랜 시간 힘차게 자신을 내뿜던 태양이 서서히 어둠 속에 스며들기 시작했을 때도 나는 놀이터에 있었다. 그네도 타보고 미끄럼틀도 타봤지만 어느 것 하나 재밌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그네에 앉아 있었다. 그네에 앉아 엄마를 그려보기도 하고 느림보 같이 흐르는 시간을 원망하기도 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고 나 또한 어디론가 갈 수 없었다. 그때 새끼 똥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놀이터로 들어섰다. 똥개와 나 사이의 거리는 조금씩 좁혀졌고 곧 똥개는 내 앞에 다다랐다. 나는 근본도 알 수 없는 똥개를 안아 들었다. 집으로 향하던 그 짧은 시간동안에 느꼈던 온기를 잊을 수 없었다.

EBS를 틀고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강사가 수능에 대한 팁을 설명해주면서 중요한 문법을 다시 한 번 짚어주고 있다. 강사는 수능까지 남은 세 달 동안 완벽히 문법들을 숙지할 것을 강조한다. 이미 작년에 들은 적이 있는 문법들을 공책에 빼곡히 적는다. 분명 작년에 다 배웠던 것인데도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나는 수험생이었던 작년보다 더 눈에 불을 켜고 강사의 말을 고스란히 외우고 받아 적기를 반복한다. 책상 한쪽에는 과목별 문제집이 겹겹이 쌓여 있고 책상 앞에는 수능까지 남은 일수가 붙어져 있다. D-92, 작년보다 이번 여름이 유난히 더운 듯하다. 이번엔 작년처럼 낙오되지 않아야 한다. 다시 정신을 다잡고 강사의 말에 집중한다.
"개만도 못한 놈! 살아 있는 애들을 개장수한테 팔겠다는 건 무슨 심보야?"
아빠가 아무렇게나 던진 집게가 신발장의 타일과 부딪히며 챙그랑 하고 듣기 싫은 소리를 낸다. 강사가 49쪽의 3번을 풀어보라고 지시한다. 장문의 영어독해 문제다. 차근차근 해석을 해보려고 했지만 아빠의 머릿속처럼 독해문제도 쉽게 풀리지 않는다. 결국 나는 강의가 나오는 동영상 창을 닫아버린다.
"나보다 나이도 한참 어린놈이 예의도 없이 말이야."
이번에도 앞집 남자와 한 판 한 게 분명하다. 아빠는 동네사람들에게 공공의 적처럼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빠를 달가워하지 않는 인물은 앞집에 사는 남자였다. 10년 전에 복서였다던 남자는 이젠 집에서만 지내며 똥개들에게 화풀이를 일삼았다. 아빠와 남자의 실랑이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났다.

아빠는 이 마을에 온 뒤부터 조금씩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때론 앞에 나서기도 했다. 모두 똥개들을 위해서였다.
앞집 남자와 싸움이 났을 때에도 아빠는 그와 맞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앞집 남자는 커다란 덩치에 부리부리한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동네사람들 모두가 앞집 남자에게 너그러운 이유이기도 했다. 체급 차이가 확 나는 두 선수가 붙을 때 누가 이길지 뻔히 보이는 것처럼 아빠와 남자가 싸운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그날 앞집 남자는 유난히 똥개들이 짖는 소리를 견디지 못했다. 남자는 집에서 가지고 나온 막대기를 휘둘러 똥개들을 쳐냈다. 막대기에 맞고 나가떨어진 개를 본 다른 개들은 멀리 달아나거나 남자를 향해 시끄럽게 짖어댔다. 남자는 그런 개들을 향해 막대기를 휙휙 휘둘렀다. 개들은 더 시끄럽게 짖어댔다. 아빠에게 SOS를 보내기라도 되는 것 같은 커다란 울림이었다. 동네사람들은 남자를 말리지 않았다. 그저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생겼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나는 동네 사람들의 틈에 섞여 앞집 남자를 보고 있었다.
뭐 하는 짓이야!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남자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아빠를 봤다. 개들은 아빠가 가까워질수록 더 크게 짖었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당했는지 알아달라는 듯한 외침이었다. 앞집 남자는 다시 개들을 향해 막대기를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만 하라잖아!
아빠가 남자의 몸을 쓰러뜨린 건 그 순간 일어난 일이었다. 남자의 몸이 기우뚱 기울어지더니 이내 바닥과 맞닿았다. 아빠는 넘어진 남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처음으로 아빠가 누군가에게 화내는 모습을 보았다. 늘 목소리를 낮추던 아빠의 목소리는 동네사람들에게 모두 들릴 정도로 컸다. 개들은 계속해서 짖었고 아빠는 막대기에 맞아 낑낑거리는 개를 살폈다. 앞집 남자는 아빠를 보며 자신보다 약한 사람이 자신을 넘어뜨렸다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다시 일어나 막대기를 휘둘렀다. 남자 주위에 있던 똥개들은 족족 막대기에 맞고 쓰러졌다. 똥개들이 고통에 겨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때 아빠가 개들을 향해 휘둘러지고 있는 막대기 앞으로 툭 튀어나왔다. 남자의 막대기는 아빠의 볼을 살짝 스친 뒤 빗나갔다. 앞집 남자가 당황한 듯 어버버 거리는 사이 아빠는 남자의 손에서 몽둥이를 빼앗았다. 아빠의 작고 마른 몸이 똥개들의 앞을 단단히 지켰다. 아빠를 비롯한 모두가 말이 없었다. 개들만이 소리를 내 짖고 있었다. 아빠가 살아오면서 그렇게 강했던 적이 있었을까?
막대기에 스친 아빠의 볼에서 피가 조금씩 맺히기 시작했다. 피에 놀란 나는 동네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아빠에게 다가갔다.
아빠!
아빠는 동네사람들을 보던 눈빛 그대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뭠춰섰다. 아빠는 똥개들을 이끌고 자리를 떴다. 그날 밤 아빠가 돌아왔을 때, 아빠의 얼굴엔 피가 말라붙은 자국이 선명했다. 아빠는 말 한 마디 없이 방으로 휙 들어갔다. 나는 아빠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한참이나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보아야 했다. 공부를 하려 했지만 한 문제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빠는 누군가의 뒤에만 서 있었다. 학교를 다닐 때도 그랬을 것이고 회사를 다닐 때도 그랬을 것이다. 학생이던 시절엔 반장과 선생님 말을 잘 듣는 존재감 없는 아이로, 회사를 다닐 땐 사장과 부장 말을 잘 듣는 만년과장으로. 아빠는 늘 누군가의 뒤에서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보조로 살았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아빠의 습관은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그런 아빠의 뒤로 똥개들이 왔다. 똥개들은 처음으로 한껏 뒤로 물러나 있던 아빠를 뒤따라 주었다. 한 번도 누군가가 따라온 적 없는 자리에 똥개들이 들어갔다. 아빠는 자신을 뒤따르는 똥개들을 지키며 처음으로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내 바람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당당히 앞으로 걸어 나가지 못했다. 나는 아빠가 이제와 똥개들의 앞에서 걸어 나가는 것이 싫었다. 고작 주인에게 버림받고 쓰레기나 주워 먹는 똥개들로 인해 생긴 아빠의 변화는 나를 더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아빠가 똥개들의 앞에서 당당히 앞장서서 걸어갈 때면 이제 아빠가 똥개들을 방패삼아 더 뒤로 물러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내가 아빠를 닮아가는 것이 싫었다. 누군가의 뒤에서, 한껏 겁먹은 채로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들어 아빠와 닮아가는 나를 발견한다. 대학생이 된 친구들의 연락은 모두 피했다. 혹시라도 어느 대학 갔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으면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피했다. 성인이 되는 첫 번째 관문에서 다리를 크게 삐끗한 사람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나도 아빠처럼 누군가의 뒤에만 서 있을까봐 무서웠다.

아빠가 애써 화를 억누르며 베란다로 나간다. 그리고 개들이 먹을 사료를 봉투에 푹푹 퍼 담는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어깨가 보인다. 아빠의 어깨는 예전처럼 힘이 없지도, 무언가가 잔뜩 실린 것처럼 축 늘어져 있지도 않다. 오히려 지금의 내 어깨가 예전의 아빠 어깨처럼 변하고 말았다.
"아까 부녀회장 아줌마 왔다 갔어."
또? 아무렇지 않은 듯 사료를 푼다. 나만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신경 쓰는 모양이다. 아빠가 밖에 나가서 똥개들의 맨 앞에 서 있는 동안 나는 동네 사람들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사과를 해야 한다. 아빠는 내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뒤로 물러나고 있는 게 괜찮은 것 같다. 아빠의 어깨는 흔들림 없이 일정하게 움직인다. 아무렇지 않은 그 움직임이 아무도 없는 놀이터를 지켰던 그때처럼 느껴진다.
"여기서도 쫓겨나기 싫어."
묵묵히 사료를 담고 있던 아빠의 손이 허공에서 멈춘다. 아빠가 뒤돌아 여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아빠의 얼굴 위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우린 여기서 계속 살 거야."
"아빠."
집밖으로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린다. 얼른 나오라는 듯 아빠를 재촉한다. 그 소리가 들리자 아빠의 눈이 빛난다.
"개들 밥 주러 가야겠다. 저녁은 알아서 챙겨 먹어."
아빠가 사료를 몇 번 더 푼 뒤, 개들에게 줄 2L짜리 생수 두 병을 챙긴다. 집에 들어온 지 30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다. 문득 나를 몰아세우며 쏘아붙이던 부녀회장 아줌마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아빠는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다급하게 움직인다. 집에 있으면 숨이 턱턱 막혀오기라도 하는 건지 아빠는 늘 똥개들 곁으로 가려 했다.
"밥 먹고 가."
생각보다 그 말이 익숙하게 튀어나왔다.
오랜만에 마주앉은 아빠가 어색하다. 함께 밥을 먹은 기억이 그리 많지 않았다. 아빠는 거리를 활보하느라 밥을 거르기 일쑤였고, 그동안 나는 혼자 밥을 챙겨먹었다. 그래서인지 밥알이 목구멍으로 유연하게 넘어가지 않는다. 아빠는 묵묵히 밥알을 입안으로 가져간다.
"이번에 대학 되면 다시 서울 가자."
"나는 안 간다."
아빠의 밥그릇은 벌써 바닥을 보이고 있다.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기라도 한 것처럼 이상하게 마음이 급해진다.
"여기서 계속 살겠다고? 똥개들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 아빠의 목소리엔 조금의 흔들림도 느껴지지 않는다. 누군가 내 숨통을 꽉 쥐고 있는 것 같은 갑갑함을 느낀다. 한껏 치솟은 날씨 때문일 수도 있고 뻣뻣하기만 한 아빠 때문일 수도 있다.
아빠가 밥그릇을 모두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정한 움직임으로 설거지를 시작한다. 물과 그릇이 맞닿으며 나는 소리가 신경을 건드린다. 조용한 집안에서 들려오는 축축한 소리가 아빠와 내 사이를 말해주는 것 같다.
"아빠."
야 이 개새끼들아!
내 목소리보다 더 큰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 뒤로 개들이 낑낑대는 소리도 들린다. 설거지를 위해 바삐 움직이던 아빠의 손이 멈춘다. 물줄기가 싱크대의 바닥과 맞닿으며 더 커다란 소리를 낸다. 개들은 여전히 짖어대고 낯선 남자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온다. 아무래도 개장수가 온 모양이다. 내가 잡혀가는 것도 아닌데 아빠의 얼굴이 점점 새파랗게 질려 간다.
"아빠!"
아빠가 현관 앞에 우뚝 선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급해진다.
"예전에 내가 키웠던 개. 어쨌어?"
나는 놀이터에서 데려간 개를 일 년이나 키웠다. 아빠는 누가 이 개를 돌보냐며 매번 짜증을 냈다. 하지만 나는 개를 깨끗이 씻기고 사료를 먹이며 누구보다 정성껏 돌봤다. 아빠가 날이 어두워지도록 들어오지 않는 날이면 개를 끌어안았다. 개를 끌어안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그 똥개의 온기가 내 몸 깊숙한 곳에 스며들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빠가 데리고 나갔잖아."
아빠는 똥개를 데리고 나가서 다시 데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똥개는 사라졌다. 나는 똥개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알지 못했다. 다시 데리고 오라고 떼를 썼지만 아빠는 개를 키우기엔 집이 너무 오랫동안 비워져 있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더 이상 개가 주던 온기를 느낄 수 없었다. 가끔 생각했다. 아빠는 그 개를 어떻게 했을까. 어쩌면 개장수에게 개를 팔아 버렸을지도 모른다.
"아빠도 동네 사람들이랑 다를 거 하나 없잖아!"
아빠는 그대로 집을 나간다. 개들이 짖고, 개장수가 욕설을 내뱉는다. 동네 사람들의 말소리도 들려오고 아빠가 그들을 향해 소리치는 것도 들린다. 하지만 내 머릿속엔 집을 나서는 아빠의 뒷모습만이 들어 있다.
창밖으로 벌써 해가 저물고 있다. 하늘은 태양의 뜨거운 기운을 잔뜩 머금어 붉기만 하다. 아빠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개장수가 집 근처를 벗어났는지 소란스러운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꿈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처럼 희미하게만 들릴 뿐이다. 이 동네에 나 혼자만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꿈속에 갇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베란다로 다가가 바깥을 보니 개장수를 쫓아가는 아빠의 뒷모습이 멀어지고 있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몸을 움직인다. 아빠를 꿈속에서 끌어내기 위해서다.

골목길은 스펀지가 모든 소리를 흡수한 것처럼 조용하다. 나는 그 거리를 내 발소리로 채운다. 발과 바닥이 맞닿는 찰나의 시간이 고장 난 시계처럼 불규칙하다. 똥개들이 즐비했던 거리는 낯설게 느껴질 만큼 고요하다. 나는 고요함을 벗어나고자 걸음을 재촉한다. 걸음이 빨라질수록 아득하기만 하던 소리들이 가까워진다. 노을이 짙어지고 개들의 울음소리가 커진다.
마을 어귀에 다다르자 빛바랜 트럭이 보인다. 트럭은 진흙과 오물로 인해 본래의 색깔은 잃은 지 오래다. 트럭의 뒤편엔 개를 가둘 철창이 층층이 쌓여 있다. 철창 안엔 전에 있었던 개들의 오물과 날벌레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이미 철창에는 꽤 많은 개들이 갇혀 있다. 철창 안의 똥개들은 어떤 때보다 거칠고 위태로워 보인다. 철창의 개들이 감옥 같인 것처럼 느껴진다. 똥개들도 자신을 감싸고 있는 그 거북함을 떨쳐내고 싶은지 어떤 때보다 큰 소리로 날카롭게 짖어댄다. 끊임없이 짖어대는 똥개들의 시선은 한 곳을 향하는 중이다.
그 시선의 끝에, 아빠가 있다. 아빠는 양쪽 어깨를 아저씨들에게 붙잡힌 채 소리치고 있다. 아저씨들은 아빠를 단단히 붙잡고 놓지 않는다. 아빠가 그렇게 초라해 보였던 적이 없다. 회사에서 낙오 당했을 때도, 이만큼 초라하진 않았다. 몰려 있던 사람들은 끊임없이 웅성대며 손가락질 한다. 나는 아빠의 모습에 제동이 걸린 것처럼 서서히 걸음을 멈춘다. 아빠는 고작 100미터도 안 되는 곳에 서 있다. 아빠를 꿈속에서 끌어내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정작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한다.
철창 안의 개들이 이젠 나를 향해 짖어댄다.
"빌어먹을 개새끼들, 꽁꽁도 숨었네."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뒤편에서 개장수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온다. 개장수의 손에 개 한 마리가 붙들려 있다. 늘 힘겹게 아빠를 따라다니던 절름발이 개다. 두 손에 목덜미를 억세게 붙들린 절름발이 개는 고통스럽다는 듯이 몸을 거칠게 뒤틀지만 개장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억세게 목덜미를 붙든다. 나는 내 목이 개장수에게 붙들린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혀오는 것을 느낀다. 아빠는 개장수를 보며 다시 악을 쓰고 소리친다. 그만하라고 소리치는 아빠의 목소리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며 듣기 싫은 소리를 낸다. 개들이 아빠의 목소리에 맞춰 짖어댄다. 개장수가 빠른 걸음으로 트럭으로 다가가 빈 철창의 자물쇠를 푼다. 남자가 철창을 열기 위해 한 손으로 개의 목덜미를 붙든다. 그리곤 철창의 손잡이를 잡아당긴다. 철창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붉게 녹슨 문은 똥개에게 일말의 시간이라도 줄 생각인 것처럼 뻑뻑하게 버티고 있다.
그만 두라니까! 나는 멀찍이 서서, 온 힘을 다해 소리치는 아빠를 본다. 아빠가 개장수를 향해 소리치는 순간 아빠의 눈과 내 눈이 마주친다. 나는 그 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을 읽어낸다. 개장수는 지금 내 옆에 있다. 아빠는 내게 개장수를 밀쳐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똥개와 아빠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빠에게 다가가지도 않는다. 아빠와 나 사이의 거리가 유독 멀게 느껴진다. 낮에 느꼈던 후텁지근한 기운이 해가 지면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아! 개장수의 짧은 신음소리가 들린다. 절름발이 개가 두툼한 장갑에 감싸져 있는 개장수의 손을 콱 문다. 온 힘을 다해 이를 세운 작은 몸뚱이가 바닥으로 휙 던져진다. 개장수의 장갑에는 개의 이빨 자국이 선명하다. 절름발이 개는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한다. 아저씨들에게 잡혀 있는 아빠를 향해. 그 개는 이제껏 한 번도 내보지 못한 속도로 아빠를 향해 달려간다. 절름발이 개가 그토록 빠르게 달려본 적이 있을까? 그 순간만큼은 질질 끌리고 있는 뒷다리가 다른 개들의 평범한 것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철창 안의 똥개들이 응원이라도 하듯이 목청껏 짖어댄다. 개장수는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똥개를 뒤따라간다. 절룩거리는 그 개가 금방 잡힐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아빠는 자신을 꽉 붙잡고 있던 아저씨들을 밀어내기 위해 몇 번이나 몸을 거칠게 흔들지만 아저씨들은 놓아주지 않는다. 아빠를 향해 뛰어가던 똥개는 아주 쉽게 아저씨들 중 한 명에게 다시 붙들린다. 그렇게 절름발이 개의 질주는 빠르게 끝이 났다. 성큼성큼 걸어온 개장수에게로 절름발이 개가 건네진다. 똥개의 목덜미가 아까보다 더 억세게 부여 잡힌다. 절름발이 개는 고통스럽게 켁켁 댄다. 그러는 동안에도 개장수의 입에서 욕설이 떠나지 않는다. 개는 결국 철창 안으로 던져진다. 어쩌면 절름발이 개는 아까처럼 두 번 다시 질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더 이상 소리치지 못한다. 힘없이 주저앉을 뿐이다. 아빠가 주저앉자 똥개들을 잡아들이는 일에 더 박차가 가해진다. 동네의 아저씨들이 개장수를 도와 똥개들을 잡는다. 골목에서 개들이 속속히 잡혀온다. 이젠 똥개들마저 힘을 잃었다. 모두 낑낑 앓는 소리만 낼 뿐 큰소리를 내 짓지 못한다. 개장수는 촘촘히 엮어진 포대에 개들을 무작위로 넣어와 철창 안으로 털어버리기를 반복한다.
아빠가 마지막 힘을 내 소리치기 시작한다. 아빠의 목에서 쇳소리가 난다. 개들이 아빠에게 마지막 말을 하듯이 힘껏 소리친다. 골목을 채우던 개들이 빠르게 줄어간다. 이곳저곳에 숨어 있던 개들도 개장수와 아저씨들의 손에 끌려나온다. 태양이 마지막 힘을 내뿜으며 하늘 전체를 붉게 적시는 동안, 아빠와 개들도 마지막 힘을 낸다. 아빠와 똥개들의 울음소리가 귀를 울린다. 개장수는 멈추지 않는다.

똥개들의 울음소리를 싣고 개장수의 트럭은 유유히 동네를 떠났다. 동네 사람들은 트럭이 사라지는 모습을 끝으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아빠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주저앉아 움직이지 못했다. 몸이 딱딱하게 굳기라도 한 것처럼 움직임이 없었다. 나 또한 움직이지 못했다. 아빠의 어깨가 동네에 들어오기 전보다 훨씬 아래로 늘어졌다. 아빠를 따라다니던 긴 대열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동네를 채우던 개들의 흔적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아빠는 개들이 마지막 힘을 내 울부짖던 것처럼 소리쳤다. 끅끅대며 울음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마을 안을 채웠다. 앞집 남자에게서 개들을 지켜냈던 모습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아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붉은 하늘 아래 아빠는 혼자였다. 뻣뻣하던 아빠의 몸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곤 트럭이 사라진 곳을 향해 삐걱삐걱 걸어갔다. 아빠는 더 이상 똥개들의 왕이 아니었다.

아빠는 다시,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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