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17.11.24 금 08:56
1472호. 2017. 11. 22
> 뉴스 > 학술·기획 > 기획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신문으로 보는 행운의 편지 90년사
[1400호] 2013년 10월 12일 (토) 21:20:18 전북대신문 press@jbnu.ac.kr

기획 : 전대인의 우수 리포트
평소 우리는 리포트를 쓸 때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일까? 고뇌 속에 쓰는 리포트도 있는 반면, 인터넷을 긁어 엮은 리포트들도 부지기수다. 이런 천편일률적인 리포트들 사이에서 독특하고 참신한 리포트를 찾아 전북대신문이 소개하고자 한다. 게재된 리포트는 우수리포트 공모전 수상작 및 교수 추천 리포트 가운데 선별되었다. <엮은이 밝힘>

①자전거도로 무용론 ②신문으로 보는 행운의 편지 90년사 ③전북대의 생물 다양성

<신문으로 보는 행운의 편지 90년사>
▲최초의 행운의 편지
학창시절 통과의례인양 접하는‘행운의 편지’, 제목은 ‘행운’이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내용은 ‘저주’에 가깝다. 우리에게 안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는 행운의 편지는 대체 누가, 언제, 어디서부터 만든 것일까?

 

   
▲ 1922년 2월 1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호운을 위하여' 기사


행운의 편지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922년 2월 1일자 동아일보에 기재돼 있다. “‘…이것을 아홉 장의 엽서에 기록하여 그대가 호운 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보내라. 아흐레만 지나면 그대에게 좋은 운수가 돌아올 것이오. 이 사슬을 끓으면 아니 된다. 만약 끊으면 크게 악운이 있다. …호운을 위하여.’라고 기록하고 발신인의 주소 성명은 보려 해도 볼 수가 없고 일부 인을 보면 경성우편국과 광화문이란 도장이 찍혀 있다.”라는 기사였다.
1920년대는 우편 이용도가 크게 늘어 편지 쓰기가 일상화 돼있었다. 1925년 한 해 동안 조선인이 인수한 편지의 양이 7,000만 통이 될 정도였다. 이런 환경 속에서 행운의 편지는 크게 성행하게 되고, 곧 일제 치한유지의 방해요소로 도마에 오르게 된다.


행운의 편지는 그럼 누가 돌렸을까? 사람들은 행운의 편지를 퍼트린 주범으로 체신국을 지목하였다. 하지만 행운의 편지로 인해 우편 업무 마비라는 어려움을 겪은 체신국은 자신이 주범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최초의 유포자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행운의 편지를 주로 유포하는 사람은 ‘여학생’과 ‘유한마담’이었다. 매일신보 1939년 8월 4일의 기사에는“행운의 편지에 빠져든 것은 시국인식이 철저하지 못한 탓”이라며 총후여성의 나약한 심정을 나무라는 글이 실리기도 했다.


▲행운의 편지 속 내용이 가지는 특징
행운의 편지는 기존 편지와는 다르게 보낸 이가 받는 이에게 안부나 사랑이야기 등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보내는 편지가 아니다. “행운을 얻고, 불운을 피하고 싶으면 편지를 복사하여 전달하라.”라는 단순 내용을 가지고 있는데, 스팸메일과는 다르게 받는 사람이 동시에 또 다른 유포 자가 되는 피라미드 구조를 띄운다.


우리가 흔히 행운의 편지하면 생각나는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의 내용은 1980년을 전후로 만들어져 유포되었다. 이후 행운의 편지는 단순히 “행운의 편지를 유포하라”라는 내용에서 일정한 서사적인 구조를 갖게 되었다. 1930년대에 영국에서 HGXWCH라는 사람이 편지를 받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의 비서에게 행운의 편지를 복사해서 보냈더니 20억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이 편지를 받았지만 보내지 않아 암살당했다는 이야기를 포함한다.


일요일 오전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에 나올 것 같은 이 이야기는 나름의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현대인의 제록스식 복사기는 1959년에 발명되었고, 1930년대에는 복사기가 존재하긴 하였지만 사용이 불편했을 뿐 아니라 대단히 귀한 것이었다. 하지만 비서를 둘 정도의 재력이면 그 정도의 복사기 사용이 가능했을 것이다. 또 이 편지는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거론하는데, 미스터리한 사건에 행운의 편지라는 유령 편지의 내용을 잘 매치시키고 있다. 행운의 편지는 사실진위 여부를 떠나서 사례의 나열로 설득력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행운의 편지로 “읽으면 후회할 걸”이라는 시리즈의 편지가 있는데 그 내용은 경기도 하남시의 남한고교 남학생과 여학생의 이야기를 장문의 이야기로 작성하였다. 고등학생간의 사랑에서 교통사고로 인한 여자 친구의 죽음, 귀신의 저주와 전염되는 재앙 순으로 공포물의 구성을 띤 이 이야기는 실제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편지의 내용 중에 남한고교는 실제로 존재하며, 학교에서 핸드볼을 잘하는 학교라는 일부 배경이 맞았다. 역시 행운보다는 비극적인 결말을 강조하여 이야기의 재배포를 노리는 기본구조를 벗어나지 않는다.


▲행운의 편지의 변화
행운의 편지는 받는 사람에게 재배포를 강력히 요구한다. 이러한 행운의 편지의 강제력을 이용해서 편지는 점차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 지금이야 행운의 편지가 내 입맛에 맞지 않았을 때는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1920년대만 해도 점차 변화하는 행운의 편지의 진화를 무시하기란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매일신보 1926년 8월 28일자 기사에는 “충남 부여지역에서 행운의 편지를 흉내내어 사회 제도의 불합리함을 역설하는 적화사상 편지가 포착됐다”라는 기사가 나왔다. 1935년에는 경제 현실을 비판하며 불경기 퇴치를 부르짖는 편지가 여러 곳에 발송되지 않으면 불행해진다는 협박과 함께 나돌아 경찰을 긴장 시켰다고 한다. 이런 방법은 현재에 들어서도 이어져 투표장려, 반값등록금 촉구, 학교폭력 근절을 알리는 캠페인에서도 사용되기도 한다.


1935년 10월 ‘불경기퇴산 통신무진 행운구락부’라는 편지가 유행했다. 앞서 언급했듯 경제 현실의 비판과 불경기 퇴치를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편지 안에는 ‘2일 내로 다른 5명에게 같은 내용으로 편지를 하는 동시에 제일 먼저 기입된 사람에게 10전씩을 절수로 부송하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허나 이 행운의 편지는 발신자가 목록에 남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경상북도 문경의 본정경찰서에서는 행운의 편지를 조회하여 해상물상에 다니는 김대진씨를 체포했다. 하지만 최초 유포자가 아닌 것으로 밝혀져 과료 1원에 처하고 석방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괴담 유포에 행운의 편지가 사용됐는데, 바이러스에 걸린 파일을 삭제하라는 거짓 경고 메일이 2000년대에 인터넷을 통해 크게 확산됐다.
   
▲ 모바일 메신저로 이어져 온 '행운의 편지'

2013년 초에도 “Black in the White house”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클릭하지 말라는 카카오톡 메시지가 성행했다. 역시 ‘안철수 연구소가 발표한 것…’이라고 시작되는 것인데 안철수 연구소는 이에 대해 메시지가 담고 있는 바이러스에 대한 어떤 공식 입장도 발표한 바가 없다고 했다.


▲행운의 편지 종이를 떠나다
행운의 편지의 또 다른 장수비결은 하나의 메시지 양식으로써 각 시대의 대표하는 미디어 속에 녹아든 점을 들 수 있다. 수기로 작성해야하는 기존의 행운의 편지 기법은 기입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타자기와 복사기의 보급으로 행운의 편지를 재배포하는데 불편함을 덜게 되었고, 전자메일로 넘어오며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도 수많은 사람에게 전달이 가능해졌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발전으로 따로 연락처를 알지 못하더라도 불특정 다수에게 글을 노출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로써 현재에도 유명 포털의 댓글란이나 사이트에 올려진 ‘이 글을 퍼가지 않으면...’식의 행운의 편지를 심심치않게 만날 수 있다. 악성 댓글에 비하면 신사적이지만 보는 사람의 기분을 찝찝하게 만들고 있다.

 

   
▲ '공유하기'와 '리트윗'으로 인기를 끈 '백억부자 손금' 사진

그럼에도 2013년 현재 행운의 편지는 똑똑하게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대중들에게 노출되고 있다. 특히  100억 부자 할머니 손금 이라고 불리는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부적은 삼성공원묘원 재단 이사장인 김진정 여사의 손금이 유명한데 김진정 여사의 새까만 손도장은 2000년대 중반 인터넷에서  ‘포스팅만 해도 금전 운이 따른다’라는 이름으로 먼저 유행했던 적이 있었지만 이 사진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특유의 ‘리트윗’과 ‘공유하기’를 이용해서 더욱 크고,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실제로 금전적 이득을 얻었다는 누리꾼들의 경험담은 협박이나 저주로 일관된 기존의 행운의 편지와 다르게 실제 경험자들의 후기로 인한 기대심리만으로도 공유를 하게 만든다.


행운의 편지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안에서 하나의 놀이로 정착됐다. 세대가 바뀌며 미신에 현혹되지 않는 이유도 있겠지만, 재배포를 하려 할 때 큰 어려움이나 기회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행운의 편지에 최적화 돼있다. 먼저 자신이 올린 글은 친구들이 모두 볼 수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속성을 가졌을 뿐 만 아니라, 댓글이나 태그 등으로 해당 친구에게 피드(알람)를 날려서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강제한다. 이러한 기술은 비단 행운의 편지가 아니더라도 특정 콘텐츠를 본 사람이나 제작자가 그 콘텐츠를 공유하고자 할 때 연쇄통신의 방법으로 사용된다. 

 

   
▲ 페이스북 '좋아요'로 유명세를 탄 배창희 할아버지

행운의 편지가 불행만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2013년 3월 12일 페이스북에는 사당동에서 지하철 택배 일을 하는 배창희 할아버지의 사진이 올라왔다. ‘회사에서 좋아요 수가 1만 번 넘으면 제 아내랑 제주도 여행 보내 준대요. 젊은이 여러분 도와주세요’라고 쓰인 종이를 든 노인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행운의 편지의 형식으로 사람에서 사람들로 재배포 되었고 이틀만에 62만 명이 넘는 인원이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게 되었다.


주로 액땜이나 각종 사기의 방법으로 사용되던 행운의 편지는 공익적인 차원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또한 행운의 편지 특유의 저주나 협박 등의 재배포 압력 없이도 받는 사람까지 기분 좋게 발 벗고 공유에 나서는 좋은 사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치며
행운의 편지가 한국에 들어 온지 어느덧 90년의 세월이 지났다. 단순한 누군가의 장난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오랜 세월을 버틴 행운의 편지의 생존비결을 알아보고자 했지만 이를 연구한 논문이나 서적을 찾기란 어려웠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까지도 고유의 특성은 변화시키지 않고, 소통방식을 그 시대에 맞춰 가며 퍼지고 있는 행운의 편지와 그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주목했다. 1:1의 소통으로 규정된  편지 라는 미디어에서 1:多로써 소통으로 이러한 편지가 또 다시 1:多로 확장되는 방식의 우수성에서 행운의 편지의 장수 비결이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행운의 편지의 내용 역시 협박이나 사기, 공포 등을 유발하는 것에서부터 내용이 바뀌어 기부나 격려 등의 내용으로 변화하자 좋은 사례들이 많이 나타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리트윗이나 태그를 이용한 연쇄통신의 방식이 행운의 편지의 모습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효자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통방식이 없었다면 빠른 시일에 다수의 관심을 얻기란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김신철(신문방송·08), 박소윤(자율전공·10)

 

위 리포트는 2013년 1학기 '‘한국언론사’수업의 과제 제출용으로 작성된 것으로, 지면에 기재된 내용은 70.8매(200자 원고지 기준) 분량으로 구성된 원본 리포트를 '24.5매 가량으로 요약·압축한 것입니다. 따라서 참고문헌과 일부 내용은 지면관계상 생략합니다.

전북대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전북대신문(http://www.cb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2017입시호외]Buddy Budd
학우들과 함께할 2018년. 기대해주
[2017입시호외][입문자부터 고수까
지금 당장 꿈이 없어도 괜찮아
[2017입시호외][2017학번이 돌
[2017입시호외][우리 동아리로 오
[2017입시호외][전북대 중앙
[2017입시호외][사진으로 정리한
[2017입시호외][전북대 창업 프로
[2017입시호외][전북대 창업 동아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54896 전북 전주시 덕진구 백제대로567 전북대학교 제 1학생회관 3층 편집국
발행인 이남호 / 주간 박준호/ 편집장 최유승 / 청소년보호책임자 안지현 / 연락처 063)270-3536,3538
Copyright 2010 전북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cb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