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로 산다는 것
대학교수로 산다는 것
  • 전북대신문
  • 승인 2015.10.1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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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직선제를 요구하며 투신한 부산대 고현철 교수 사건은 나에게 두 가지의 커다란 충격을 줬다. 8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던 필자에게 고현철 교수의 투신은 동료학생들의 분신과 뒤따르는 ‘열사’라는 호칭, 지금도 거리에서 마주치면 뒷걸음치게 되는 경찰과 전경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했다. 열렬하게 학생운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전두환 독재정권의 억압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동료학생들의 희생에 많은 정신적 방황을 했던 것이 그 시절 대학생들의 공통적인 경험일 것이다.
상당수의 동기들이 노동 현장으로 가거나 구속됐고 심지어는 분신을 한 상황에서 제대로 졸업하고 취직하는 것이 결코 떳떳한 일이 될 수는 없었다. 독재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소시민적 이기주의로 선택한 것이 대학원 진학이라는 ‘도피처’였다. 대학에서도 별반 공부한 적이 없고 대학원에서도 대학교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대학원 동기 중에 미국유학을 간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며 당시 미국유학은 ‘미 제국주의의 앞잡이’가 되는 길이었다. 나름대로 국내파로서 한국의 민주화 문제에 고민하고 실천하는 강단사회주의의 길을 걸었다. 이후 박사학위를 받고 운이 좋게 대학교수가 됐지만 희미하게나마 민주화 실천에 대한 부담감 내지 일말의 양심을 지니고 있다.
부산대 고현철 교수의 투신소식을 접하면서 필자가 느낀 솔직한 감정은 ‘투신까지 할 만한 일인가’하는 것과 ‘남은 가족에 대한 걱정’이었다. 적은 월급이나마 자율성이 보장됐던 국립대학에 만족하였던 것이 총장직선제 폐지, 대학구조조정 등의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으로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연구와 내 가족을 돌보면서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것에 자위하고 있었다. 고현철 교수의 개인사는 잘 모르지만 50대의 국립대 국문과 교수이자 시인이면 생활이 넉넉하지는 않을 것인데 남은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오랫동안 민주화를 염원하였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내가 이렇게까지 ‘속물’이 됐나 하는 자괴감과 더불어 고현철 교수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고현철 교수가 염원하였던 ‘총장직선제’를 비롯한 대학의 자율성이 확보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학생 수의 감소를 명분으로 대학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구조조정의 칼날이 워낙 드세고 이에 저항하는 대학교수들의 응집력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기업이 대학의 자율성을 억압해 남는 것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대학평가 사업들로 인해 대학의 경쟁력이 향상되기보다는 야수와 같은 무한경쟁과 불신만이 초래됐다. 교육부의 방침에 순순히 따랐지만, 소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문턱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교수들도 논문을 양산하는 기계로 전락했다. 대학은 ‘돈을 버는 시장’이 아니라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공동체이다. 부디 부산대 고현철 교수님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학의 자율성이 회복됐으면 한다.
정용준|사회대·신문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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