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 르포-故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던 그분이 보고 싶습니다
[봉하마을 르포-故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던 그분이 보고 싶습니다
  • 김혜경 기자
  • 승인 2016.06.01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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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기억하는 마음…마을입구 노란 물결 행렬
추모객들 새겨둔 애도의 글 숙연한 분위기
추도식 이후 하루 평균 천 명 이상 발길 이어져

 

햇살만큼 따뜻한 노란 물결이 가득했던 5월의 봉화마을. 이곳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故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억하고 그의 뜻을 지키겠다는 약속이 담긴 노란 현수막이 눈에 띈다. 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노 전 대통령의 생가와 사저에 도착한다.


노 전 대통령이 1949년 9월 1일 태어나 8살까지 자랐다는 생가는 퇴임 당시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대통령의 고교 친구가 생가를 구입해 김해시에 기부하면서 본격적인 생가 복원 작업이 진행됐다. 생가를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면서도 방문객들의 쉼터가 될 수 있길 희망한 노 전 대통령의 뜻에 따라 2009년 9월 복원 이후 상시 공개됐다. 김 모(익산시·42) 씨는 “2009년 당시 언론에서 이야기하던 것보다 너무 아담하고 소박하다”며 “이런 집을 아방궁이라고 했다니……”라며 안타까워했다.


기념품 가게 ‘사람 사는 세상'에서 기념품을 고르던 김 모(익산시·42) 씨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정부나 나라에 대한 불신이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며 “세월호 등의 사건을 겪으며 위급한 순간 나라가 나를 구하지 못할 수도, 심지어는 구하는 것을 포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슬프다”고 말했다.


생가와 ‘사람 사는 세상’ 사이에는 ‘대통령님, 나오세요!’라고 적힌 쉼터가 마련돼 있다. 봉하마을을 찾은 이들은 쉼터 그늘에서 “대통령님, 나오세요!”라고 외칠 수 있던 때를 회상하며 지친 다리를 쉬어갔다. “횟수로 따지면 셀 수 없다"며 “적어도 열 번 이상 봉하마을을 방문했다"는 김철균(부산시·38) 씨는 7주기를 맞이해 아이와 함께 노 전 대통령의 발자취를 찾았다. 노 전 대통령이 ‘바보’라 불리던 때부터 그의 팬이었다는 김철균 씨는 "아이가 5살이라 아직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평화와 화합을 사랑한 대통령을 어릴 때부터 알려주고 싶었다"며 가족과 함께 마을을 찾은 이유를 밝혔다.


‘사람 사는 세상' 건너편에 위치한 ‘추모의 집'은 대통령 관련 유품과 사진 등 전시관과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영상관으로 구성 돼 있다. 대통령의 생애와 생각, 어록 등이 기록된 '추모의 집'은 소박하지만 그를 기리는 엄숙함이 가득했다. 그곳에서 만난 박수진(전주시 효자동·23) 씨는 “국민을 생각하고 국민과 함께한 이런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대통령이 또 어디 있겠느냐”며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고 그와 같은 대통령이 또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곳을 찾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묘역으로 향하는 이들을  먼저 반긴 것은 수반이었다.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수반에서 사람들은 한 번 씩 자신을 비춰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묘역은 “화장한 유골은 안장하되 봉분은 만들지 않겠다”는 유족들의 뜻과 “아주 작은 비석만 남기라”는 노 전 대통령의 유언에 따라 검소하게 조성됐다.


지하에는 안장시설을 하고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여섯 글자만 새긴 남방식 고인돌 형태의 너럭바위를 봉분처럼 올렸다. 묘역의 박석은 국민 참여로 이뤄졌다. 박석마다 새겨진 애도와 존경의 글들이 모여 비문을 대신했다. 안장시설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맞게 전국 각지의 재료를 두루 이용했다.


손자와 손녀의 손을 꼭 잡은 채로 헌화대에 국화꽃을 올려놓은 최재점(광주시·64) 씨는 초등학교 때 4·19를 겪으며 여·여가 균등하게 집권해야 민주주의가 이뤄진다고 생각해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최재점 씨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들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이 더 좋아졌다”며 “그분 같은 분들이 정치를 많이 해서 손주들이 더욱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올해 7주기는 특히 많은 이들이 봉하마을을 찾았다. 이지연(전주시 호성동·33) 씨는 “여소야대의 총선 결과에 故노무현 전 대통령이 더욱 생각나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故노무현 전 대통령 7주기 추도식에 전국 각지에서 많은 추모객이 몰린 것은 물론 그 이후로도 일평균 1000여명이 봉하마을을 찾아 그를 추억하고 있다.


봉하마을 관계자는 “7주기에 특히 많은 추모객들이 다녀갔다”며 “추도식이 끝난 이후에도 일평균 1000여명이 마을을 방문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거 3주기까지는 추모 열기가 뜨거웠지만 4주기부터 6주기까지는 찾아오는 이들이 적었다”며 7주기 방문 열기에 대해 “여소야대가 된 이번 총선 결과로 여·야 지도부를 비롯한 유명한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하면서 추도식이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됐고 그에 따라 국민들의 기억이 환기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수진 씨는 “서거 7주기가 됐지만 이토록 많은 사람이 그를 기억하고 슬퍼한다는 건 인간적인 그의 모습과 더불어 정치인으로서의 그를 그리워 한다는 것”이라며 “결국 각 당이 이익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정치 발전의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지연 씨 역시 “정부에서 하는 말들을 국민들이 온전히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올바른 정치로 국민과 정부의 신뢰가 다시 회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나날이 떨어져 가는 요즘, 소통과 화합을 중심으로 국민의 편에 서고자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발걸음이 봉하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김혜경 기자
wkj1279@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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