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케미칼 완주공장 노동자 백혈병 사망] 30대에 백혈병 사망…회사는“ 피해자가 입증해라”
[한솔케미칼 완주공장 노동자 백혈병 사망] 30대에 백혈병 사망…회사는“ 피해자가 입증해라”
  • 유경희 기자
  • 승인 2016.09.28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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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근로, 장시간 화학물질 노출 잦아
민주노총·반올림 협력, 산재 신청
역학 조사 후 산재 인정 여부 판가름


한솔케미칼 완주 봉동공장에서 일하던 故이창언 씨가 백혈병으로 투병 중 지난 3일 운명을 달리했다. 이에 여전히 안개 속인 이창언 씨의 산재가 조속히 인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2년 한솔케미칼에 입사한 이 씨는 2015년 10월 31일 백혈병 판정을 받게 된다. 이에 이창언 씨는 지난 4월 민주노총 및 삼성반도체 ‘반올림’과 함께 산업재해(이하 ‘산재’)를 신청했으나 산재신청제도가 재해자 입증주의를 택하고 있어 인정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 씨의 백혈병 원인에는 우선 정체 불명의 화학물질 장시간 사용이 꼽힌다. 이 씨는 지난 2012년 한솔케미칼에 입사해 회로기판 연결부위를 습기, 먼지 등 외부환경으로 보호하는 방습절연 코팅제품을 생산하는 분야에서 일했다. 이 씨가 했던 구체적인 업무는 원료명과 양이 표시된 작업 지시서를 확인하고 화학약품을 용기에 담아 무게를 계량한 후 반응기에 투입하는 일이었다. 반응기에서 혼합된 약품을 용기에 포장한 뒤 반응기 세척까지가 그의 일이었다.


이 씨가 다룬 화학물질을 안전보건공단 화학물질정보(MSDS)로 조회한 결과, 헥사메틸렌 디이소시아네이트(이하 헥사메틸렌), 이미노디아세트산 등이 독성물질로 드러났다. 헥사메틸렌은 증기, 분진 등을 흡입, 접촉하면 심각한 상해, 화상을 입을 수 있다는 경고문구가 있는 독성물질이다. 김정곤(자연대·화학) 교수는 “인체에 유해하지 않는 화학물질은 없다”며 “화학물질로 면역체계가 무너지면 질병의 발생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전했다. 이 씨는 일할 당시 공장 측은 화학물질의 위험성, 유해성과 관련한 안전교육을 실시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 씨의 작업장은 온도 및 습도가 제어되는 등 구조적으로는 잘 갖춰져 있었다. 다만 작업장에 Supply, Reverse 등 환풍기로 냄새를 배출하는 설비가 돼 있었음에도 환풍기가 동시에 돌아가면 화학물질의 냄새가 빠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근로자들은 숨쉬기 힘들 정도의 화학약품냄새가 나도 그저 참으며 근무해야 했다.

이 씨의 과도한 업무 역시 발병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한솔케미칼 제품의 대다수는 삼성으로 납품되고 있다. 화성공장, 중국 시안공장 등 삼성이 공장을 증설하기 시작한 지난 2014년부터 납품물량은 점차 늘기 시작했다.

정규직으로 입사한 이 씨는 토요일, 일요일도 반납했다. 삼성전자 신제품인 Quantum Dot TV가 상용화 되면서 제품물량을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한 달에 100시간이상 연장근로를 했으며 밤샘 작업도 잦았다. 방습절연제 생산 업무는 4조 3교대로 운영돼야했지만 이 씨가 속한 작업 조에 인원이 부족해 회사의 지시로 교대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씨의 근무내역을 확인한 결과,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이하 ‘백혈병’)을 판정받은 아침도 그 전날 밤샘노동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백혈병을 판정받은 지난 2015년 10월 31일부터 이 씨는 업무를 중단했다. 이 후 병원에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고 지난 5월 골수이식 수술을 했다. 실상 입원하기 전인 지난 2013년부터 이 씨는 상세불명의 급성기관지염, 만성감염, 폐렴 등이 발생해 병원진료를 받기도 했다. 지난 2014년부터 계속된 장시간 연장근로 이후부터는 질병의 발생 빈도 또한 높아졌다. 민주노총 강문식 교선부장은 “성분조차 알 수 없는 화학물질들을 장시간 사용했을뿐 아니라 밤샘으로 무리한 근무를 해왔다”며 “이를 통해 백혈병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이 씨는 지난 2월부터 민주노총 및 삼성반도체 ‘반올림’과 함께 산재 신청 접수를 준비했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28일 전반적인 작업환경을 설명하며 백혈병 발병에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근로복지공단 측에 전달했다. 산재 접수 당시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자산업에서 백혈병 피해자가 나왔다’며 ‘조속히 산재를 승인해 달라’ 고 요구했다.

하지만 사실상 재해자 입증주의를 택하고 있는 산재신청제도 상 산재를 인정받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피해자가 직접 근무장의 유해성, 위험성을 판단하고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생산직에 종사하는 노동자 가운데 상황을 증언해줄 노동자를 찾는 것 자체도 매우 어려운 실정이었다. 근속연수 4년차인 이 씨가 생산직 가운데 가장 오래 종사한 경우에 속한 편이었고 다른 노동자들은 일찍 일을 그만두기도 했다.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는 “노동자도 근무환경에 대해 알 권리가 있어야 한다”며 “재해자가 입증해야 하는 산재인정기준은 바뀌어야 한다”고 전했다.

산재신청을 접수한 근로복지공단은 신청한 지 2달 후인 지난 6월 15일 완주공장에 방문해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근로복지공단 소속 직원 2명이 회사 측 안내에 따라 이 씨의 작업장을 살폈다. 이 씨의 근무 시 동선과 작업환경을 약 2시간 동안 조사했다. 하지만 공장 측에서 회사 영업상 기밀이라는 이유로 산청신청대리인(민주노총 법률지원센터)의 참여를 거절해 동행하지 못했다.

근로복지공단 측은 현장조사 과정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다만 근로복지공단 전주지사 이동희 씨는 “산재인정은 현장조사 보다 역학조사 절차에 중점을 둬야한다”고 전했다. 현장조사를 마친 근로복지공단 측은 지난 6월 27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를 의뢰했다. 이 씨가 당시 사용한 화학물질의 유해성, 발병연관성을 조사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역시 조심스럽다는 입장을 전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이상길 연구위원은 “사건별로 역학조사 기간은 다르지만 통상 6개월 정도 소요된다”고 전했다. 역학조사가 마무리되면 서울 근로복지공단 내 질병판정위원회에 상정돼 이 씨의 산재인정 여부가 판가름된다.

유경희 기자

 ace@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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