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열녀(烈女)에게 정려문을 내려 주옵소서!
79. 열녀(烈女)에게 정려문을 내려 주옵소서!
  • 전북대신문
  • 승인 2017.05.17 11: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문서는 1845년(철종 5년) 6월에 전라도 남원부(南原府) 보현면(寶玄面), 지금의 보절면)의 유학 조정협(趙廷恊) 등이 암행어사에게 제출한 상서(上書)이다. 조정협 등은 같은 고을에 살았던 김찬(金鑽)의 아내인 강씨(姜氏)의 열행(烈行)을 암행어사에게 상세히 알리고 그녀가 포상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를 접수한 암행어사는 ‘열행이 감탄할 만하지만 정려(旌閭)와 포장(襃獎)은 공의(公議)를 기다릴 일이다’라고 지시했다. 조선 말기가 되면서 전국적으로 열녀와 효자에 대한 포상 요청이 쇄도했기 때문에 실제 정려문을 받는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