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명인을 만나다. 21. 최종순 악기장]
[전북의 명인을 만나다. 21. 최종순 악기장]
  • 전북대신문
  • 승인 2017.05.3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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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도 사람도 속을 비워야 아름다운 소리가 나오는 것이야

가슴 울리는 구슬픈 소리에 빠져
제각각인 대나무를 같은 음으로
시간 지날수록 빛을 발하는 대금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가. 꿈을 향해 발을 딛는 것이 두려운가.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전북대신문이 다양한 분야의 멘토들을 만나봤다. 자신이 정한 길에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고 담담히 역량을 키워나가 결국은 ‘명인’의 칭호를 얻은 사람들이 바로 그 주인공. 전북대신문에서 그들의 삶과 열정을 전하려 한다. <엮은이 밝힘>

대금은 어느 악기보다 자연스러운 소리를 낸다. 맑고 청아한 소리가 대나무를 타고 흘러 깊으면서도 은은한 음색이 귀에 맴돈다. 그 소리는 취구에 불어오는 입김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대나무를 다듬는 명인의 손길에서 나온다. 40년 넘게 대금을 만들고 있는 최종순(전주시 ·71) 명인을 만나 대금에 대한 애정과 철학을 들었다.

외로움을 달래준 피리소리
열다섯 살에 집 가까운 고아원에서 피리소리가 들렸어. 그 소리에 마음을 뺏겼지. 대금 소리가 원체 좋았거든. 대금의 한 종류인 옆피리였는데, 구슬프고 은은한 소리가 그렇게 마음에 와 닿더라고. 10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형편이 곤란해 초등학교만 겨우 나왔어. 중학교 갈 돈이 없어서 그저 농사일이나 하는 내 처지가 항상 슬프고 외로웠어. 그런데 그 피리소리가 그렇게 위로가 되는 거야. 고아원을 기웃거리다가 옆피리 불던 분을 만났어. 고아셨지. 아홉 살 많은 분이었는데. 소리가 좋아서 배우고 싶다고 내가 매달렸어. 아리랑부터 배웠어. 나무악기점에서 20원인가 200원인가 주고 피리도 하나 샀지. 일하다가 피리 부는 게 낙이었어. 취미로 계속 피리를 불었지. 그러다가 이생강 선생님을 만났어.


군 제대 후 스물다섯 살 때였지. 대금으로 전국에서 최고이신 이생강 선생님을 전주에서 만난 거야. 지금은 국가 무형문화재신데, 그때도 유명하셨어. 내가 무작정 배우고 싶다고 찾아갔지. 대금에 완전히 폭 빠진 사람이니까 가르쳐달라고. 그랬더니 제자로 삼을 테니까 서울로 올라오라고 하더라고. 그해 8월에 올라가서 먹고 자고 심부름하면서 대금 만드는 법과 연주를 배웠지. 꾸준히 실력이 늘어 방송에 나가기도 했어. 그런데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했더니 손이 굳어서 한계가 오더라고. 그래서 연주보다 대금 만드는 쪽으로 일을 많이 했지.


같은 대금은 없다
대금은 주로 쌍골죽으로 만드는데, 보통 대나무랑은 다르게 양쪽에 골이 패여 있어. 기형 대나무인거지. 봐, 여기도 파지고 여기도 파지고. 모양이 곧지도 않고 다 틀어져있어. 대신 속이 꽉 차 있어서 소리가 야무져. 그렇다 보니 재료 구하기가 쉽지 않아. 속이 꽉 찬 쌍골죽을 반듯하게 모양을 잡아야 돼. 이게 제일 어려워. 불에 달궈서 쌍골죽을 펴다가 찬 소금물에 담그는데 3개월 뒤에 보면 또 틀어져 있기도 해. 제대로 모양이 잡힐 때까지 계속 반복하다보면 1년 넘게 걸리기도 해. 대금 만드는 과정에서 제일 힘든 게 이거지. 음이 딱 맞게 대나무 모양을 잡아야하니까. 예전엔 이 과정에서 많이 버렸는데 40년 넘게 이것만 했더니 이젠 거의 버리지 않지. 지금은 이게 내 특기가 됐지.


다른 악기랑 다르게 대금은 백 개면 백 개, 천 개면 천 개 다 달라. 지금까지 만든 것 중에 같은 게 하나도 없어. 재료에 따라서 두꺼운 놈이 있고 가는 놈 있어. 똑같은 소리가 날 수는 없어. 그러면서도 음을 거의 똑같이 만들어야 하니 대금같이 어려운 게 없지. 나는 대나무를 자르면서부터 감으로 음을 맞춰. 오랫동안 집념을 가지고 하다보니까 이제 길게 자를지, 짧게 자를지, 지공을 넓게 팔지, 좁게 팔지 딱 보면 알아. 대나무가 살아있을 때도 이건 좋다, 이건 구실을 못 한다가 보여.


서울서 하는 사람들 보면 기계로 해서 대량으로 만들던데, 그러면 제대로 된 소리가 안 나와. 나는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전부 집에서 손으로 하지. 내가 왼손잡인데, 40년 넘게 이것만 만들었더니 왼손이 굳은 살도 많고 더 크지. 국내에서 대금 제작으로 내가 한 손에 꼽혀. 서울에서도 주문 요청이 많고 유명한 연주자들도 내 대금을 많이 찾아. 보통 1년에 7, 80개 정도 만들어. 대부분 주문이 들어오면 만들고 재료가 잘 나오지 않아서 가격이 싸진 않지.



비워야 좋은 소리가 난다
내가 18년 전까지만 해도 대금으로는 거의 돈을 못 벌었어. 대금 한 가지만 갖고는 먹고 살 수가 없었어. 농사도 짓고 산일도 하고 풍수지리를 보고 묫 자리 잡아주는 일도 했지. 다른 회사도 다니고 운전을 하기도 했지만 대금만은 꾸준히 했어. 다른데서 번 돈 가져다가 대금 만들었지. 그래도 계속 하니까 조금씩 알려지더라고. 전라북도 도립 국악원에서 대금 배우는 연습생들이 다들 내 대금을 사가는 거야. 전라북도에서 대금 만드는 사람은 나 하나 밖에 없었거든. 그때부터 대금 만드는 일로 생활이 좀 됐어. 점점 알려지니까 주변에서 무형문화재 시험을 보라고 하더라고. 한 번에 땄지.


무형문화재 된지는 5년 정도 됐는데, 돈을 떠나서 내가 좋아서 만드는 대금 때문에 이런 날이 왔다는 게 기뻐.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 혼자하기 힘들어서 아들과 일을 같이해. 아들에게 기술을 전수하며 늘 강조하는 게 있어. 바로 하는 일을 돈으로 계산하지 말라는 거. 내가 좋은 악기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해야지. 이걸로 돈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면 일도 안 되고 좋은 악기도 안 나와. 마음을 비워야 돼 항상. 대금이 좋은 소리가 나는 이유는 속이 비어있기 때문이야. 사람도 똑같아.



오래 기억되는 대금 만들고파
전에는 대금 연주를 자주 했는데 6여년 전 뇌경색이 온 이후로는 대금을 못불어. 말도 어눌하고 손가락도 빨리빨리 안 움직여. 제일 좋아했던 걸 못 하니까 마음이 아파. 그나마 대금 만드는 작업은 할 수 있어 다행인데. 내가 대금을 못 부니까 내가 만든 대금을 다른 사람들이 많이 연주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평생 불려고 만든 대금도 아는 사람 줬어. 진짜 좋은 대금이었는데, 어차피 난 못 부니까. 만든 작품 중에 기억나는 게 한두 개가 아니야. 전라북도에서 전공자들이 부는 좋은 대금은 다 내가 만든 거야.


연주자들이 내가 만든 대금을 연주하면서 “전주에 최종순이 만든 대금이 최고 좋은 대금이다"라고 얘기했으면 좋겠어. 내가 죽고 나서 몇 백년이 지난 후에도 고 최종순의 대금이 높게 평가받는 꿈을 꿔. 대금은 관리만 잘하면 아주 오랫동안 변함없이 쓸 수 있거든. 썩지도 않아. 대금을 오래 두면 색깔이 빨갛게 변해. 훨씬 고급스러워져. 소리도 깊어지고.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대금을 만들고 싶어.


정상석 기자 topstone88@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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