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서로의 비난을 멈출 때
이제는 서로의 비난을 멈출 때
  • 전북대신문
  • 승인 2017.10.11 17: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해답을 제시하고자 함이 아닌 현 상황에 대한 나의 견해를 이야기해보고자 하는 것임을 밝힌다. 때때로 우리는 보이지도 않는 적과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문장을 읽었을 때 정말 많은 종류의 싸움과 갈등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나는 여성과 남성 사이의, 남성과 여성 사이의 너무나도 깊어져버린 갈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제 겨우 스물 한 살이 됐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대해 인식하게 된 것은 기껏해야 3년 정도다. 사회를 논함에 있어서 3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갈등이 걷잡을 수 없게 커지는 것을 목격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여성’을 공격하고 ‘남성’을 공격하는 일들은 분명히 있었다. 어렸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 때의 갈등은 그리 심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2017년의 가을을 보내고 있는 지금, 나는 그것을 뚜렷하게 느낀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일들은 아마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알고 있으며 목격한 일들일 것이다. 자신과는 다른 성을 가진 이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발심,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기에 충분한 언행, 익명성을 전혀 보장해주지 못하는 매체에서조차 폭력적이고 난잡하게 이뤄지는 지루한 갈등. 세세한 예를 들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제는 갈등을 빚어내고 있는 이들을 ‘그들’이라고 부르기에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내 옆에 서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들이며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운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자신의 이익인가. 가족을 위해 닳고 닳은 구두 한 켤레로 수십 년을 보내고 계시는 아버지를 한남충, 군무새라고 부르는 것이 자신의 이익인가? 새벽부터 또 새벽까지 자식들만을 생각하시며 아침이면 밥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시려는 어머니를 김치녀라고 부르는 것은 또한 자신의 이익인가? 이러한 현실에 나는 환멸을 느낀다.


우리학교도 전혀 다르지 않다. 서로에 대한 성적인 욕설과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표현들이 난무한다. 처음 이 학교에 들어올 때 가졌던 자부심을 나의 학우들이 산산이 바스러뜨렸다.


‘성’이라는 당연한 차이 앞에 우리는 왜 서로를 물어뜯는가. 지금 나의 학우들이자 선배들이자 후배들인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묻고 싶다. 등굣길 버스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이, 수업시간에 늘 본인의 앞자리에 앉는 남자 후배가 그대들이 그렇게 경멸을 느끼고 저주해야 하는 그 대상이 정말 맞는 것인가. 도대체 언제까지 인정과 이해를 버린 사고를 보여줄 것인가.


김태원(정치외교·16)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