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아이는 울지 않는다
연재소설 | 아이는 울지 않는다
  • 전북대신문
  • 승인 2017.10.18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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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났다

어머니는 마지막 기차가 떠나기 전에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아이의 주머니에 금반지를 넣어주고 손에는 군고구마를 쥐어 주었다. 아이는 어머니가 쥐어 준 군고구마를 보고 기뻐했다. 잘 다녀오세요. 엄마. 군고구마는 양이 많고 달았다. 그것을 다 먹고 나서야 아이는 어머니가 떠났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어머니를 기다린다. 날이 점점 흐려진다. 그사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어머니를 향한 믿음이 얼마나 흔들렸는지도 알 수가 없다. 대신 어떻게 하면 훌륭히 기다렸는지 어머니에게 자랑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어른스럽게 보일 수 있을까? 대충 이런 식의 고민이었다.


아이는 어머니 품에 말없이 꼬옥 안기는 것으로 자신의 어른스러움을 보여주기로 했다. 어머니 품에 안기려면 어머니가 와야 하는데. 아이는 막차가 올 때까지 기다려보자고 생각했다. 막차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도착했다. 오가는 수많은 사람 틈에서 꼭 내렸어야 할 사람 하나가 내리지 않았다. 있어야 하는데. 아이가 중얼거렸다. 기차는 한참을 서 있다가 떠나갔다. 내려야 하는데! 아이가 소리쳤다. 기차는 대답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아이는 어머니가 넣어주었던 금반지도 잃어버렸다. 주머니에 꼭꼭 숨겨놓았는데 요술쟁이가 요술을 부린 것처럼 사라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고, 아이도 곡할 노릇이었다. 아이는 귀신이 나오는 밤을 싫어했다. 어머니 품에서의 밤을 좋아했다.

 
아이는 울었다. 아주 크게 울었다. 울면 밤이 물러갈 줄 알았다. 주위 사람들이라도 나서서 떼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아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이는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안 보이는 게 아닐까? 저 사람들처럼 내가 보이지 않으니까 어머니가 나를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는 승강장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어머니가 자신을 찾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꼼꼼히 돌아다녔다. 어머니를 찾고 있을 때엔 깊은 밤도 자신을 어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더욱 많은 사람이 승강장을 빠져나갔다. 아이의 마음이 다급해져서 다시 한 번 눈물이 터졌다. 아이의 울음이 어른들의 관심을 끓지 못하고 있는 그때 아이에게 시선 하나가 머물렀다. 아니, 그 시선은 오래 전부터 아이를 주시하며 따라다니고 있었다. 아이의 마음이 두근거렸다. 혹시 엄마일까. 아이는 그 사람의 눈을 보았다. 축 처져서 모난 데 없는 어머니의 눈과 똑같았다. 아이는 기뻐서 소리를 지르려 하다가 그 사람의 손을 보고는 멈췄다. 울퉁불퉁한 손은 어머니의 손이 아니었다. 코는 어머니와 비슷해 보였지만 입이 어머니와 달랐다. 턱엔 수염이 듬성듬성 나 있었다. 아이는 한숨을 깊게 쉬었다. 그는 남자였다.

 
남자는 행색이 추레한 사람이었다. 안색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눈에 띄는 것은 표정이었다. 남자는 표정이 없어서 밀랍인형 같아 보였다. 아이는 겁이 난 나머지 남자를 피해 도망치려 했다. 아이가 보폭을 아무리 넓게 잡아도 정확히 그 보폭만큼 맞춰서 따라왔기에 도망칠 수 없었다. 인파 속으로 숨어들 수도 없었다. 아이는 포기하고 주저앉았다. 남자는 쓰러진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었다.

“여기에 있었구나.”
“날 알아?”
아이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아이는 그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잘 아는 사이지.”
“어떻게 나를 아는데?”
“그 질문에는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네.”
“왜 날 따라오는 거야?”
“데려가려고 따라가는 거지.”
“엄마가 데려오래?” 아이의 말에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잘 알잖아. 엄마는 이제 없어.”
“아저씨가 우리 엄마를 어떻게 아는데?”
“우리 엄마?”
남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잘 모르겠는데. 이제 더는 볼 수 없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야. 맘대로 생각해.”
남자는 아이를 끌고 어딘가로 걸어갔다. 저항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 아이가 다급해하며 물었다.
“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이곳을 나가야지. 기차역은 문을 닫을 거야.”

아이는 필사적으로 남자를 막았다. 남자는 대기실까지 가서야 아이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멈추었다. 역무원이 잠시 기다려주기로 했다. 남자는 그에게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남자의 미소는 무척이나 어색해서 짓지 않는 게 더 나아 보였다.

“왜 나를 데려가려는 거야.”

아이가 물었다. 남자가 습관적으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려 하다가 깜짝 놀라며 다시 집어넣었다. 여기는 공공장소였다.

김영한(국어국문•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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