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핵미사일 위기와 협상]
55년 전, 인류는 멸망의 문턱에 서 있었다
[쿠바 핵미사일 위기와 협상]
55년 전, 인류는 멸망의 문턱에 서 있었다
  • 전북대신문
  • 승인 2017.10.1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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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10월 27일을 미 백악관은 ‘검은 토요일’이라고 불렀다.


이 날, 미국의 U-2F 정찰기가 실수로 비행 항로를 이탈해 소련 영공을 비행했다. 미·소 양국 전투기는 수칙에 따라 핵미사일을 탑재하고 이륙해 대치했다. 카리브해의 미군 봉쇄선에서는 핵무기를 장착한 소련의 핵잠수함이 미 해군의 폭뢰(물 속으로 떨어트려 일정한 깊이에 이르면 폭발하는 대잠수함 무기) 공격을 받았다. 미 해군이 투하한 폭뢰는 훈련용이었으나 실제 공격으로 오인한 소련 함장은 핵무기를 발사하려 했다. 당시 소련 잠수함은 잠항으로 외부와 통신이 불가능했다. 핵무기는 전단장의 반대로 발사되지는 않았으나 당장 핵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었다.

▲미 해군 대잠헬기와 폭뢰투하로 강제 부상한 소련 핵잠수함

1962년, 소련은 미국과 달리 미 본토 공격이 가능한 핵미사일이 없었다. 소련 흐루시초프 서기장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기로 결정한다. 10월 14일, 쿠바 밀림 속에서 건설 중이던 소련의 미사일기지가 미국 U-2F 정찰기에 발각됐다.


22일 오후 7시 (미 동부시간 기준)케네디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소련의 미사일 기지 건설을 공개하고 전면 비판하며 쿠바 해상봉쇄를 선언했다. 성명이 발표되는 동안 전세계의 모든 미군에 데프콘3가 발령됐다. 5단계로 나뉘는 데프콘은 1단계에 이르면 전시에 돌입하게 된다. 항공모함 8척을 포함한 90여척의 대규모 함대가 쿠바를 봉쇄했다. 그러나 신형 핵미사일을 실은 14척의 소련 화물선은 계속 쿠바로 향했다.


25일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긴급회의를 요청했다. 미국 애들레이 스티븐슨 대사는 소련 발레리안 조린 대사에게 “귀하는 쿠바에 귀국의 핵미사일이 배치 중임을 인정하느냐”며 “통역 기다릴 것 없이 예, 아니오로 대답하라"고 강하게 몰아붙였다. 조린 대사는 “여기는 미국 법정이 아니다”며 “검사가 범죄자를 취조하는 듯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26일 오전 10시, 미군 전략공군사령부에 데프콘 2가 발령됐다. 145기의 핵미사일이 발사준비 절차에 돌입했다. 1,436대에 이르는 폭격기와 161대의 핵무장 전투기가 완전무장하고 비상대기했으며 폭격기 중 1/8은 이륙해 공중대기했다. 핵폭탄을 장착한 23대의 B-52 폭격기가 소련 영토를 공격 가능한 거리에서 선회하고 있었다.

▲1962년 쿠바 미사일의 사거리. 소련 신형 미사일 도착 시 가장 큰 원까지 공격 가능하다.

한편 소련은 그날 미국에 쿠바를 침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한다면 미사일을 철거하겠다는 전보를 보냈고, 27일에는 쿠바의 소련 핵미사일와 터키의 미국 핵미사일을 상호 철수시키자는 전보를 보냈다. 양국 간 핫라인이 없어 암호화된 전보를 해독하고 답장하는 데까지는 하루가 걸렸다. 그 사이 미국에서는 핵공격에 대비한 훈련프로그램을 소련의 실제 핵공격으로 오인해 핵미사일을 발사할 뻔한 사건도 일어났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28일 흐루시초프 서기장이 선단에 회항명령을 내리고 쿠바의 미사일을 철수시키겠다고 공식발표하면서 마무리된다. 이후 미국도 터키에서 미사일을 철수시켰고 미·소 양국 간 핫라인이 건설됐다. 이로써 인류는 멸망의 문턱에서 벗어나게 됐다.


김도원 기자 albert972@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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