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NU 교양 백선 읽기 프로젝트④백석 시 전집 ]
시 한 줄이 ‘천억 원’, “외롭고 높고 쓸쓸한” ‘백석 시 전집’
[CBNU 교양 백선 읽기 프로젝트④백석 시 전집 ]
시 한 줄이 ‘천억 원’, “외롭고 높고 쓸쓸한” ‘백석 시 전집’
  • 전북대신문
  • 승인 2017.10.18 14: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 한 편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일까. 만약 시 한 줄이 ‘천억 원’이라면 수긍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상품과 화폐의 교환관계가 작동하는 현실에서 시 한 줄이 천억 원이라면 그 시는 대단한 상품임에는 틀림없다. 천억 원 시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백석 시인이다. 백석 시인이 사랑한 김자야(본명 김영한) 여사가 세상을 떠나기 전, 당시 시가 1,000억 원 상당의 대원각을 조건 없이 법정 스님에게 시주를 했다. 짓궂은(?) 기자로부터 “아깝지 않냐?”라는 질문에 자야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1000억 재산이 그 사람 시 한 줄만도 못해.”


창작물의 가치를 단순하게 계량화하여 돈으로 환산하자는 것도, 흥미로운 가십거리로 삼자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 이야기는 지금도 세간에 종종 회자되곤 한다.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백석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백석은 해방 후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로 돌아와 북한에 그대로 남아 있을 뿐인데 남북 분단의 현실로 인해 ‘월북 문인’ 취급을 받는 바람에 한동안 금서로 묶여 그의 문학 세계는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월북문인들에 대해 해금조치가 서서히 이루어지면서 『백석 시 전집』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그때 그의 문학이 한국 현대문학사에 던진 강한 펀치는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그만큼 백석의 시는 한국 시문학사를 새로 써야 할 만큼 신선했고, 수많은 시인이 당당하게 백석의 독자임을 드러낼 만큼 매혹적이었다.


그리고 백석 탄생 100주년이 지난 오늘날. 그의 시는 여전히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그 이유는 백석 시에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읽어도 놀랄 만큼 참신하고 아름다운 언어와 빛나는 문장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현대문학 이론을 관점으로 연구해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시적 해석력을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백석 관련 학위논문은 약 300여 편이 훌쩍 넘는다. 백석 시 작품 편수가 137편(동화시 포함)임을 감안하면 해가 갈수록 백석 관련 논문이 계속해서 생산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으로, 그만큼 ‘문제적’이라는 의미이다. 백석 시 가운데 일반 대중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시는 단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일 것이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즈녁히 와서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서/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전문


사람들은 가끔씩 읽다가 빠져죽고 싶은 문장이 있다는 말들을 한다. 그때 가장 많이 떠올리는 시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아닐까 싶다. 눈 내리는 밤중에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서 살고자 하는 낭만적인 상상은 생각만으로도 환상적이다. 백석이 그 세계를 감미로운 언어로 그려 내고 있다. ‘밖엔 흰 눈은 푹푹 내린다. 그 눈은 내가 나타샤를 사랑해서 내리는 눈이다. 나는 사랑하는 나타샤를 그리워하여 술을 마신다. 그러면서 나타샤와 함께 흰 당나귀를 타고 혼탁한 세상을 떠나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고 싶다’는 연시적 성격을 띠고 있으면서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세련되고 낭만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여기에서 평북 방언인 ‘마가리’와 ‘출출이’는 이 시의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에 신비적인 정서를 촉발시키는 시어이다. ‘마가리’나 ‘출출이’는 설령 그 의미를 정확히 모른다 해도 이 시를 감상하는 데 아무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낭만적이고 아름답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욱 강화하는 의미가 담긴 이미지로 수용하게 된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 지식인으로서의 백석은 시대적 말하고 싶은 바를 직접 드러내지 않고 자신이 살아가던 세계를 둘러싼 우리의 일상용품이나, 근대의 문물이 유입되지 않은 산천, 소외되고 배제된 인간 군상들에 주목하여 당시 우리 민족이 주체화되는 역사적 맥락을 재구성하고자 했다.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닢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허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력사가 있다
-「모닥불」 전문


모닥불은 이질적인 것들을 융합시키는 불이다. '헌신짝', '소똥', '갓신창', '개 이빨', '널빤지 쪽'. '짚검불' 등은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소한 것, 소외된 것들이다. 여기에는 단순히 사물을 무질서하게 나열한 것이 아니라 사물들을 한 데로 끌어들여 공동체적인 공간을 창조하려는 백석의 의도가 담겨 있다. ‘재당’, ‘초시’, ‘문장 늙은이’와 ‘더부살이 아이’와 새로 인연을 맺은 낯선 ‘새사위’, ‘갓사둔’과 함께 모닥불을 쬐는 모습을 통해 소외와 차별의 벽을 넘어 계층을 초월한 모습을 보여준다.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질적인 존재들이 하나로 융합되어 모닥불을 쬐는 모습은 지역 공동체를 환기시키고, 소외와 차별, 계층의 벽을 넘어 합일정신의 공동체를 염원하는 화합된 공동체가 내포돼 있다.


백석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시구가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다. 안도현 시인의 시집 이름이기도 한 이 구절은 <흰 바람벽이 있어>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 <힌 바람벽이 있어> 부분


1930년대 대부분의 문인들이 창씨개명을 하고 글을 쓰고 있을 때 백석은 만주로 갔다가 죽을 것 같은 외로움에 쌓인다. 이 시를 통해 백석이 얼마나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삶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백석은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들었다는 표현을 통해 슬픔으로부터 힘과 용기를. 절망으로부터 희망을 간직함으로써 스스로의 운명을 사랑하고 극복하려는 운명애의 의지가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백석이 바로 그 시인이다. 내용에서뿐만 아니라 언어, 문체, 감각, 문장, 형식 등 모든 방면에서 당시의 아비투스에 함몰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을 추구했던 시인. 가난하고 외로운 것. 힘없고 착한 것들이 비참하고 고통스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해야 할 것, 소중하고 아름답게 여겨져야 할 것이라는 데 대한 깊고 아름다운 깨달음을 주는 시인.


이 가을, 백석의 “외롭고 높고 쓸쓸한”을 통해 가슴 저변에 있는 포근하고 따듯한 세상을 만날 수 있다면, 그 안에 담긴 ‘세상이 변해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의 가치 역시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시의 다양한 레이어(층위) 속에서 다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 있을 것이다.


유인실 | 시인 · 문학평론가

 

『백석 시 전집』과 함께 읽어요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로 카잔차키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이야기는 젊은 지식인 ‘나’가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다가, 60대 노인이지만 거침이 없는 자유인 조르바를 만나는 것에서 시작된다. 친구에게 ‘책벌레’라는 조롱을 받은 후 새로운 생활을 해보기로 결심하여 크레타 섬의 폐광을 빌린 ‘나’와 조르바의 크레타 섬에서 함께한 생활이 펼쳐진다. 주인공인 조르바는 카잔차키스가 자기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꼽는 실존 인물로이다. 카잔차키스의 인생과 작품의 핵심에 있는 개념이자 그가 지향하던 궁극적인 가치인 ‘메토이소노’, 즉 ‘거룩하게 되기’를 이해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섬 ∥장 그르니에 지음 | 김화영 옮김 | 민음사

장 그르니에의 섬세한 철학적 에세이이다. 개 한 마리의 죽음에서 떠올린 일상적 추억, 튀니지의 작은 해변도시에서 발견한 꽃 핀 테라스, 그리고 지중해 해안가의 무덤 등을 소재로 철학적 사유를 담아, 삶의 곳곳에 숨어 있는 비밀을 아름답고 섬세하게 들려준다. 실존주의 철학자 알베르 까뮈의 스승이기도 한 장 그르니에는 알제리에서 카뮈를 만나 스승으로서 영향을 주었으며, 나폴리와 알렉산드리아, 카이로 등지에서 철학 교사로 일하면서 지중해의 삶과 인도 사상에 매료되었다. 삶에 대한 행복과 절망을 묘사하는 다양하고 독창성 있는 그의 글들은 풍부한 감수성과 호기심을 드러내면서 독자들을 깊은 사색의 세계로 이끈다. 시적 명상과 풍부한 서정으로 가득 찬 에세이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맨부커상 수상작가 한강의 첫 번째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인간만이 지닌 ‘언어-영혼’의 소생 가능성을 사유하게 하는 시집이다. 말과 더불어 시인이 경험하는 환희와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들은 영혼에 닿는 투명한 빛의 궤적들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침묵과 암흑의 세계로부터 빛나는 진실을 건져 올렸던 최초의 언어에 가닿고자 한다. 이 시집은 그간 한강 문학을 이야기할 때 언급돼온 강렬한 이미지와 감각적인 문장들 너머에 자리한 어떤 내밀한 기원-성소에 한 발 가까이 다가가, 삶의 본질, 고통과 절망 너머의 회복의 풍경들을 단단하고 시정어린 문체로 빛이 스미듯 독자에게 파고든다.

유인실 | 시인 · 문학평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