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 아이는 울지 않는다
4. 잘 가다
연재소설 | 아이는 울지 않는다
4. 잘 가다
  • 전북대신문
  • 승인 2017.12.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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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분명 좋은 사람일 거야. 그리고…….”
“그리고?”
“아저씨는 쓰레기가 아니야.”
아이의 말에 남자는 잠시 답을 하지 못했다.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그런가?”
“당연하지. 아저씨는 누구보다도 훌륭한 사람인걸.”
남자는 아이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이가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를 연기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지?”
아이는 남자를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알 수 없었다. 추측만 했다. 상상하진 않았다. 상상하긴 싫었다.
“고맙긴 한데 내가 힘든 걸 알면 돌아가는 게 맞지 않을까?”
아저씨가 말했다.
“나는 돌아가지 않을 거야. 난 아저씨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돌아가지 않는 게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데.”
“나는 지금 기차를 기다리고 있어.”
“기차는 오지 않아. 막차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나갔어.”
“내가 타고 갈 기차를 기다리는 거야.”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승강장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남자도 그 뒤를 따랐다. 아이는 승강장의 의자에 몸을 앉혔다.
“기차가 오는 게 보이지 않아?”
아이가 저 멀리 어둠 속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기차가 보이지 않는데.”
아이는 빙긋 웃었다.
“지금 기차가 왔어.”
“타지 않으면 안 될까?”
아저씨는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아이는 끝까지 바라보지 않았다.
기차는 증기를 내뿜으며 힘차게 달려왔다. 매연 냄새가 아주 강렬했다. 요즘엔 디젤 엔진을 단 기차들도 많던데, 하필이면 낡아빠진 증기기관차가 왔다. 기차가 멈추자 아이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은 없었고 기차를 타는 사람도 아이 혼자였다.
기차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솜옷을 단단히 누벼서 입었다. 기차 객실 안에는 담배 연기가 몽실몽실 피어올랐고, 술 냄새와 머릿기름 냄새 사이에서 아가의 젖비린내가 희미하게 났다. 보자기에서 김치 쉰 냄새가 풍겨왔다.
창밖으로 민둥산 몇 개가 지나갔다. 다리는 아픈데 좌석은커녕 통로에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때 옆자리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아이를 불렀다. 얘, 너 혼자 탄 거니? 아주머니는 자리가 없다면 자기 무릎에 앉아도 좋다고 말했다. 아이는 아주머니의 무릎에 올라갔다. 아주머니에게는 엄마와 비슷한 냄새가 났다. 옆에는 바깥사람으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는 다리를 꼬고, 턱을 괴고 신문을 읽으며 담배를 피웠다. 아이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자신의 아버지도 신문을 읽을 땐 항상 턱을 괸 자세로 읽었다.
먹은 게 있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주머니는 달걀 몇 개를 꺼내주었다. 맛이 기가 막혔다. 목이 막힐 것 같으니까 물도 주었다. 아주머니의 무릎에 앉아있으니 아주머니의 품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아이는 더욱 깊숙하게 품에 파고들었다. 아주머니는 아이를 말리지 않았다. 마치 어머니의 품 같아서 잠이 올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잠이 들려고 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주머니가 끼고 있던 금반지가 반짝거렸다. 금반지는 새것처럼 깔끔했다.
아이는 잠을 자기 전에, 무언가 해야 하는 게 있었음을 기억해냈다. 내가 무엇을 하지 않았을까. 그 순간 차창 밖에 누군가의 모습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아이는 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무척이나 고마운 사람이었고 미안한 사람이었다. 아이는 눈물이 터질 것 같았지만 참았다. 대신 빙긋 웃으며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아이는 눈을 감았다. 마침 기차가 터널 안을 지나갈 때였고, 사위가 어두워졌다. 아이는 누군가를 찾아야 하는 것까지는 기억해냈지만 귀찮아져서 관두기로 했다. 기차는 어둠으로 계속 달렸다. 그런데도 품 안은 따뜻했고, 아이는 그 따뜻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란 것을 직감했다. 아이는 이제 울지 않기로 했다. 울음은 다 커버린 누군가의 몫이고, 앞으로 자신은 울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울 날이 많은 어른에게 행운을 빌어주자. 그들이 언젠가 다시 따뜻함을 그리워하기를. 그리고 그들이 다시 따뜻함을 되찾을 수 있기를. 아이는 아주머니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터널의 어둠이 포근하게 아이를 감쌌다. 따뜻한 어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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