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계, 나의 바다] 1장. 소년, 태어나다
[나의 세계, 나의 바다] 1장. 소년, 태어나다
  • 전북대신문
  • 승인 2018.03.0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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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에게 바다라는 공간은 하나의 ‘세계’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곳이었다. 오로지 수면욕과 식욕, 배설욕 만을 추구하느라 웃음과 울음만을 반복하던 때부터 나는 자연스레 짠 내를 맡았다. 기억도 나지 않는 때부터 어머니는 두툼한 천 한 장에 감싼 나를 안고 바닷가를 걸었다. 주로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황혼의 시간이었다. 그녀는 아직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끊임없이 내게 속삭였지만, 우렁찬 울음을 터뜨리기 전까지는 나에게 큰 관심도 없었다. 열 번 중 서너 번 정도는 내가 그리 까탈을 부리지 않았기에 그녀의 자장가 같은 노곤한 목소리에 쌔근쌔근 잠에 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한참 후에 너른 품 안으로 옮겨진 뒤 볼 언저리에 와 닿는 까슬까슬한 감촉을 느껴 우렁찬 울음을 터뜨렸다.


이름도 알고 싶지 않은, 홀딱 벗겨져 일렬종대로 대롱거리는 생선을 손질하거나 거두는 등의 일을 하게 마련인 어촌의 여자였던 나의 어머니는 몸이 작았다. 또 그만큼 팔 힘이 센 편도 아니었다. 혹은 내가 지나치게 영양분을 잘 섭취하는 우월한 유전자라도 지녔던 것일까. 어머니는 자기 자식을 품 안에 두고 캥거루마냥 걷거나 어르는 일이 생각보다 빠르게 버거워 졌다고 했다. 아직 부모의 품이 고팠던 나에게 어머니가 포옹을 거부하는 경험이란 낯설고도 두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앞으로도 몇 년은 나를 거뜬히 감당할 아버지의 두꺼운 팔뚝에 매달려 아양을 떠는 일이 잦았다. 어머니는 드디어 아버지와 나의 사이에 따스한 감정이 스며드는 것을 반가워했다. 동시에 자신에게서 차츰 멀어지려는 아들에 대한 서운함도 내보였다. 어머니를 통해 본 인간이라는 것은 그토록 역설적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힘에 부치더라도 몇 분 정도는 한껏 힘을 내어 나를 집 앞 바닷가로 안고 나가 내려놓는 일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다. 나는 점점 푸념이나 다름없는 어머니의 혼잣말에 적응하게 되었고, 집에 들어가자며 칭얼대는 것 대신 조그만 손아귀에도 잡혀주지 않는 모래에 관심을 집중했다. 아직 말문도 트이지 않은 아기답게 입 안으로 무작정 집어넣거나 엷은 주름 사이에 낀 몇 알의 고운 모래입자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곤 했다. 어머니는 늘 한 점 풍경화처럼 완벽하게 바닷가에 녹아든 모습으로 지평선을 멍하니 응시했다. 이따금 나의 입에 들어간 모래를 털어주는 일 외에는, 내내 지평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아버지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부지런히 옹알이를 하였다. 새롭게 발견한 생명체를 어머니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다 옆에 있던 바위를 붙잡고 일어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또래보다 아주 한참 늦기는 했다. 옹알이로 어설프게 ‘엄마’를 발음하거나 비틀거리는 다리로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모래를 밟는 나의 모습을 볼 때면 어머니는 엷게 미소 지었지만 그다지 성에 차는 반응은 아니었다. 아마 나는 더뎠던 만큼 더 극적인 반응을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지평선 저 멀리 조그마한 물체가 보이는 순간이 와서야 한껏 밝아진 표정으로 난데없이 나를 올려 안았다. 그리고는 작은 얼굴 가득 입맞춤을 선사하며 “아빠 오시면 오늘 돌 잡고 일어났다고 얘기하자, 우리 아들”과 같은 다정한 대사를 늘어놓았다. 당시의 나는 아버지가 왜 이른 아침부터 보이지 않다가 하늘에 붉은 기운이 돌 무렵에야 까슬까슬한 턱을 비비러 돌아오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니 반나절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되는 어머니의 불안 또한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나는 늘 어머니의 따스한 품이 고팠고, 작은 성장에 응당 따라야 할 미소와 칭찬이 아버지가 돌아올 때에야 함께 온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바위를 잡고 일어날 필요 없이 혼자 힘으로 바닷가를 걷기 시작할 무렵, 나는 자연스레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알리려 애쓰지 않게 되었다. 뒤늦게 열 걸음 이상을 거뜬히 걷는 나를 애써 안아 올리려 노력하는 그녀에게 그럴 필요 없다는 듯 제법 단호하게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마 그때 내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그녀의 표정은 아주 씁쓰름한 무언가를 한입에 삼켜버린 사람과 같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것까지 고려했을 리 없는 그 시절의 나는 어머니의 품을 거부하고 오롯이 아버지를 기다렸다. 호탕하게 웃으며 여린 살에 거친 수염을 비비러 돌아오는 아버지를.



정주리∥국어국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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