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소년, 불안을 앓다
2장. 소년, 불안을 앓다
  • 전북대신문
  • 승인 2018.03.1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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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발음할 수 있는 단어의 개수가 늘고 구사하는 문장이 촘촘해지자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고심했다. 이웃이라고 해봐야 한참을 가야 겨우 한두 집 나오는 작은 어촌 마을에 어린 아이들이 다닐 만한 학교가 있을 리 없었다. 아직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문턱까지 당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어머니와 아버지는 누군가 쫓아오는 이라도 있는 양 초조해 보였다. 아버지는 해가 뜨기 전 한창 깜깜한 시간에 집을 나서고 해가 지고 난 뒤에서야 귀가하게 되었다.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아버지의 귀가 시간이 늦어진다는 이유로 나는 어머니에게 잦은 횟수로 짜증과 투정을 늘어놓았다. 그녀는 예전보다 더욱 짙어진 불안감과 공포를 애써 갈무리한 듯 초연한 표정으로 나의 모든 철없는 행동들을 받아주었다.


가끔 파도가 유독 큰 소리로 쩌렁쩌렁 울리거나 거센 바람이 우리의 자그마한 쉼터를 뒤흔들고 지나갔다. 그 때마다 나와 어머니는 서로 꼭 안은 채 그저 아버지가 무사히 귀가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다행히 매번 아버지는 피곤에 잔뜩 전 얼굴로라도 돌아왔다. 어머니와 나는 그에게 곧장 뛰어갔지만 대부분 무뚝뚝한 표정을 한 채 ‘쉬고 싶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그가 피곤에 시달리는 날이 잦아질수록 나는 더 이상 나를 온 몸으로 안아줄 수 있는 존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나이를 먹어버렸고, 영양분을 너무 많이 섭취해 버린 것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아담한 어머니의 허리께를 살그머니 넘어버린 나의 머리꼭지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차라리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써 볼까. 그러면 더 이상 피곤에 쫓기지 않는 아버지가 다시 나를 안아 올려 줄지도 모른다. 그의 팔은 아직 튼튼하므로.


결국 며칠 후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서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가면서까지 악을 질러댔다.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우리 가족이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지내기를 바라는 나름의 시위였다. 이상적이지는 않아도 나에게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풍경이었으니까. 그러나 결코 받아들여질리 없었다. 아버지는 처음으로 나에게 큰 소리를 냈다. 놀라 딸꾹질이 터진 나를 들어 올리는 그의 품에서 한참을 울었다. 목이 아파 소리는 터지지 않았지만 두 볼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는 쉬이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목청의 고통보다 다시 그의 품에 안겼다는 안도감이 훨씬 커 이내 웃음이 났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찌할 바를 모르다 나의 웃음을 보더니 맥이 풀린 듯 허한 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곧, ‘울다 웃으면 엉덩이에 털이 나는 법’이라는 진부한 말로 나를 놀렸다. 깜짝 놀라 엉덩이를 확인하려 제자리를 뱅글뱅글 도는 나의 모습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간만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는 엉덩이에 털쯤 나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학교를 싫어했다. 학교 때문에 아버지가 나를 안아주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어머니는 더 많은 생선을 말려야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매일 밤을 끙끙 앓았다. 그맘때는 캄캄한 새벽에 자주 깨었다. 잠투정을 부리러 안방에 가고 싶다가도 그들의 고통을 체감하는 순간 어린아이답지 않은 체념이 찾아왔다. 도로 누워 억지로 눈을 감으면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의 낮은 신음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도로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살그머니 창가로 가 까치발을 들고 밖을 보아도 주위가 온통 새카매서 아버지의 큰 등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불안이라는 것은 유전자 속에 녹아드는 것일지도 몰랐다. 매일 지평선을 바라보고 서 있던 어머니가, 그런 유전자를 나에게 주었을 지도. 나는 새벽마다, 아버지의 등이 보이지 않는 그 순간부터 불안에 시달렸다. 그 느낌은 나의 입을 틀어막았다. 신체적인 발달은 우월해도 정신적인 발달은 현저히 느렸던 나는 불안을 계기로 무뚝뚝한 아이가 되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염려했지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사실 해결 방안은 간단했다. 아버지가 위험한 시간의 어업을 그만두는 것. 그리고 나를 더 자주, 따스하게 안아주는 것. 그러나 현실은 아버지의 발목을 단단히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정주리∥국어국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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