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재가 되도록 태운다, “태움”
영혼이 재가 되도록 태운다, “태움”
  • 전북대신문
  • 승인 2018.03.1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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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 물품 확인에 식사까지 챙겨야
학술 컨퍼런스 참가 떠넘기기도
분위기 띄우기 위해 춤 연습 강요

“태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다. 신입간호사를 교육한단 명목으로 선배간호사가 폭언을 하거나 업무적으로 압박하는 것이다. 태움은 신속하고 정확해야한다는 논리로 계속돼 온 간호계의 악습이다.


지난 설 연휴에 세상을 떠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ㄱ씨도 태움의 희생자였다. 그의 남자친구가 올린 SNS 게시글에 따르면 ㄱ씨는 자신을 가르치는 선임 간호사 때문에 병원생활을 두려워했다. 그런 선임 간호사에게 인정받기 위해 ㄱ씨는 하루 3시간씩 자며 공부했다. 그러나 선임 간호사는 가르치기보다 혼내는 일이 더 잦았다. 결국 자신감 넘쳤던 ㄱ씨는 나날이 우울하고 불안해졌고 ‘나 큰일 났어, 무서워 어떡해?’라는 말을 남기며 세상을 떠났다.


지난 28일 ㄱ씨의 입사 동료 간호사가 ‘故 ㄱ 간호사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죽음입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게시하며 병원 측의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그러나 서울 아산병원은 ㄱ씨의 선임 간호사와 수간호사 등을 불러 조사했으나 직장 내 괴롭힘은 없었다고 일축했을 뿐 아무런 조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


태움은 단순한 폭언이 아니라 간호계에 만연한 왜곡된 위계질서다. 신입간호사는 한 시간 일찍 출근을 해서 선배간호사들의 물품을 모두 확인해야한다. 밥 먹을 시간이 없는 선배 간호사들을 위해 빵, 김밥, 커피 등 먹을거리도 개인 사비로 사가야 한다. 종류도 매일 달라야한다. 전날 사간 것과 같은 것을 다시 사오면 눈치를 준다.


귀찮고 자잘한 업무들도 모두 신입간호사의 몫이다. 이미 퇴근한 간호사에게 불필요한 업무를 지시하는가 하면 날짜와 주제도 공지하지 않고 학술 컨퍼런스 발표를 맡기기도 한다. 이들은 타 지역으로 출장 가는 수간호사를 대신해 근무 후 컨퍼런스에 다녀오기도 한다. 물론 참가자 명단에는 수간호사 이름으로 사인을 해야 한다. 현직 간호사 ㄴ씨는 “내 일도 못했는데 선임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일까지 떠맡는 것이 당연시된다”며 “뭘 해도 욕먹으니 일하는 것에 회의감이 들고 자존감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분위기 띄우기에도 신입간호사들이 동원된다. 작년에 논란이 됐던 한림대 성심병원의 체육대회도 같은 맥락이다. 임신한 간호사에게 까지 안무 연습을 강요해 짧은 치마나 핫팬츠를 입고 칼군무를 추게 했다. 무대에 오를 간호사와 입을 의상 모두 수간호사가 선정했다. 선정된 간호사들은 한 달 동안 새벽 6시 반에 출근해 오후 3~4시까지 일하고 저녁 늦게까지 춤 연습을 해야 했다.


전주의 모 병원에서도 신입간호사가 태움을 당해 정신과 약을 먹다가 관둔 사례가 있다. 가해자는 계속 병원에 근무 중이다. 후임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지속되는 태움, 오히려 신입간호사들의 업무능력을 저하시키고 업무를 자발적으로 그만두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김도원 기자 albert972@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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