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3장. 소년, 학교에 가다
연재소설 3장. 소년, 학교에 가다
  • 전북대신문
  • 승인 2018.03.28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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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어머니는 더욱 말라갔다. 한데 모여 별 것 아닌 소리를 늘어놓으며 큰 소리로 웃는 일은 줄어들었고 머지않아 나는 학교에 가야 할 나이가 됐다. 가기 싫었지만, 가야 했다. 어머니는 이사를 준비했다. 십 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동안 우리 가족은 이 조그마한 집에 정을 붙이고 살았지만 그놈의 학교 때문에 떠나야 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생활비를 보내주기 위하여 남기로 했다. 나는 불안을 유전자에 새겨 준 어머니와 둘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버릇처럼 꾹 다물린 입은 열리지 않았다. 단출한 가구 몇 개를 날라준 아버지는 좁다란 원룸을 한참 둘러보았다. 아마도 아버지는 당신의 몸을 축내 가며 얻은 집이 고작 그 정도라는 것에 절망했을 것이다.


작은 도시의 작은 초등학교에 다니게 됐다. 교실 가득 아이들이 바글바글한 정도는 아니어도 내가 살면서 본 가장 많은 또래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하얗고 깨끗했다. 그들에게서는 바다냄새가 나지 않았다. 투명한 비누 냄새가 났다. 그런 향은 처음이어서 또래에 대한 반가움 보다는 경외심이 먼저 들었다. 어머니는 입학식을 하는 내내 킁킁거리는 나를 내려다보며 살풋 웃었다. 나 또한 어머니를 마주 보았는데, 그 짧은 순간 생선 냄새가 났다. 그 동안은 전혀 자각해본 적이 없는 비린내.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서 신경을 쓸 생각조차 한 적이 없는 냄새였다. 향긋하고 투명한 향기들로 가득 찬 허공에 어머니의, 나의, 냄새가 진하게 퍼졌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발장난을 쳤다. 그 때에는 알지 못했지만 그 날 선명하게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학교생활은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다. 투명하고 향긋한 향을 풍기던 아이들은 겉모습과 달리 천사보다 악마에 가까웠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한 얼굴을 앞세워 내 어머니에게서 풍기던 생선 비린내에 대해 끊임없이 조잘댔다.


“너네 엄마한테서 냄새 났어!”


“너한테서도 나!”


“으~ 얘한테서 똥냄새!”


똥이 아니라 생선이라고 대꾸해주고 싶었지만 입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나의 주위에 몰려들었다. 레퍼토리는 늘 비슷했지만 나로서는 처음 겪는 사회 집단인 데다 몹시 위압적으로 느껴졌으므로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나는 늘 책상으로 시선을 내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귀에도 눈처럼 덮개가 있다면, 과 같은 의미 없는 생각을 했다. 귀를 틀어막은 채 당장의 상황을 피할 수만 있다면. 그러나 나는 평범한 인간이었고 어린 아이였다. 나는 그런 사태를 어머니에게 고할 용기도 없었고 아버지를 만나 안길 수도 없었다. 어머니는 시장에 나가 간이 가판대를 놓고 새벽같이 만들어 둔 김밥을 팔았고, 아버지는 예전의 집을 들락날락하며 고기잡이를 하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었다. 이제 어머니에게서 생선 냄새는 나지 않았지만 다른 아이들의 어머니처럼 고급스러운 향이 나지는 않았다. 그녀에게서는 이제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났다. 내가 알게 된 도시의 냄새는 그것이 전부였다. 둘이서 누우면 여분 공간이 많지 않은 방 안 구석에는 늘 김밥 재료가 여백도 없이 누워 있었다. 그것을 볼 때면 나는 화가 났다. 커서 생각해보면 화를 낼 일도, 부끄러울 일도 아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치기로 나는 화를 냈다. 나의 몸에도 저 냄새가 밸 것이라고, 그러면 아이들은 이제 또 그것을 조롱할 것이라고, 화를 낼 대상조차 없는 집에서 외로이 울분을 토해냈다.


나는 여전히 말이 어눌한 채 나이를 먹었다. 맨 뒷자리에 앉아 칠판에는 관심도 없이 책상 밑에 놓아둔 손을 뚫어지게 보면 시간은 알아서 흘렀다. 나이를 먹는다고는 해도 아직 철이 들기에는 먼 나이였기에 나는 어머니를 더욱 부끄러워했다. 감정의 농도가 옅어지기는커녕 알게 되는 것이 많아질수록 나는 더욱 더 화가 났다. 점점 아버지의 얼굴은 흐릿해졌고 어머니는 주름만 늘어갔다. 이제는 안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스스로를 껴안는 법을 터득했다. 매일 밤 누렇게 때가 잔뜩 묻은 꽃무늬 이불을 펴고 누운 상태에서 두 팔로 양 어깨를 감싸고 무릎을 배 가까이 당겼다. 온전히는 아니어도 아주 조금 위안이 됐다.


어머니는 길고양이들이 앞 다투어 울기 시작한 다음에야 참기름과 피곤을 한데 버무린 냄새를 풍기며 들어왔다. 나는 여전히 그 냄새가 싫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안은 그대로 자는 척을 했다. 어머니는 늘 나의 머리맡에 앉아 한참을 보다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고 자신의 자리에 누웠다. 변한 것은 없었다. 아버지는 나의 세계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어머니에게선 비누 향이 나지 않았고 나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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