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소년, 학교를 벗어나다
4장. 소년, 학교를 벗어나다
  • 전북대신문
  • 승인 2018.04.0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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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다니는 동안 나는 소풍가는 날을 가장 싫어했다. 어머니는 내가 “소풍가는 날이에요”하면 그날 팔아야 할 김밥 중 하나를 내밀었다. 도시락은 언제나 은박지로 싼 김밥 한 줄. 그것에는 참기름 냄새가 더덕더덕 묻어있었다. 점심시간이면 아이들은 평소보다도 더 강도 높은 목소리를 냈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악마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부모에게, 나아가 나 자신에게 화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아이들이 미웠다. 그러나 그들은 다수이고 나는 오로지 혼자였다. 가뜩이나 어눌한 말을 계속해서 아끼게 되었다. 말을 하는 방법까지 잊어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른다. 나는 정말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어머니는 이러한 상황을 까맣게 몰랐으므로 나는 그럭저럭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교라고는 해도 초등학교보다 아주 약간 더 커진 정도였다. 그러나 아는 아이들만이 온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앉은 안경을 낀 남자애부터, 그 아이의 친구들까지. 생각보다 친구를 사귀는 일은 쉬웠다. 허탈할 정도였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몰려다닐 때 의식적으로 시장 근처로는 가지 않았다. 기분 탓이겠지만 시장의 간판만 보아도 참기름 냄새가 풍겼다.


중학교와 같은 재단이라서 바로 근처에 있던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한 뒤에 나는 친구도 제법 있고 말도 적당히 재밌게 하는 소년이 되어 있었다. 친구들과 가족 이야기를 해야 하는 때가 오면 대충 얼버무렸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거짓은 나의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자연스러워졌다. 나의 거짓 속에서 아버지는 야근을 자주 하는 회사원이, 어머니는 집안일에만 전념하는 가정주부가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가끔 급식으로 김밥이나 생선 반찬이 나오는 날은 오후 내내 속이 답답했다. 체한 건가 싶어 화장실로 달려가 헛구역질을 해 보아도 침만 뚝뚝 떨어져 동심원을 그렸다. 비누 향기를 풍기던 아이들과 같은 위치가 되고 싶어서 시작한 거짓말은 점점 나를 잡아먹었다. 상상 속 나와 현실 속 나의 괴리감은 나로 하여금 연기를 하게 만들었다. 나는 ‘나’로 있기 위해서 나를 둘러싼 세상을 연극 무대로 꾸몄다.


생각보다 나는 연기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서툴게 시작한 거짓말은 곧 한 해를 넘겼고 또 절반을 버텼다. 졸업 때까지는 견디겠거니 치기어린 자만심을 가지기 시작할 무렵 학교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어머니가 사시나무 떨 듯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한 것이었다. 보기 드문 일이었다. 어머니는 나와 살게 된 후로 불안을 거의 감춘 상태였다. 그녀의 안에, 심지어 나의 피에까지 들러붙었던 불안은 결국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이야말로 막연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실체를 드러내기까지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안아주지 못하는 나를 한 팔로도 안아 올리던 강인한 아버지는 그리 허망하게 사라질 리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나는 그의 얼굴이 흐릿하기만 해 두려웠다.


교실로 돌아와 가방을 주섬주섬 챙겼다. 사물함을 뒤져 꼭 필요한 몇 가지를 탈탈 털어 가방에 욱여넣었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연극은 막을 내렸고, 다시는 무대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회사원이라던 나의 아버지가 갑자기 바다에서 죽었다는 부고를 들은 아이들은 나를 거짓말쟁이로 매도할 것이다. 그리고 담임의 부차적인 설명에 나의 어머니는 평범한 가정주부가 아니라 참기름 냄새를 풍기는 시장의 김밥장수라는 것도 모두 까발려지겠지. 나는 다시 교무실에 들러 담임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장례식장 주소는 알려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한들 담임은 제 직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할 테지만.


장례식장을 홀로 지키던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그 자리에 처참히 무너져 버렸다. 유독 작은 그녀는 더욱 말라 있었다. 어제까지 한 이불을 덮고 잤으면서도 차마 알아채지 못한 사실이었다. 그 마른 몸으로 온 세상을 뒤흔드는 야차 같은 울음소리를 내는 것은 더욱 진귀한 광경이었다. 멍하니 영정 사진을 보고, 그 한참 뒤에 가만 누워 있는 진갈색의 관을 보았다.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수의 조문객이 다녀간 뒤 처음 보는 한 중년 남성이 들어섰다. 단단하고도 말끔한 인상의 그를 보고 난 와야 할 곳을 헷갈린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어머니가 그를 반겼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하기 전 살던 옛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던 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기리는 곳임에도 그를 보는 뺨이 발갛게 물드는 어머니가 낯설었다. 오로지 아버지만을 기다리며 그 불안까지 나에게 물려준 그녀가 아니었던가. 나는 치졸한 배신감마저 들었다.


어머니와 나는 꿋꿋이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외로운 빈소를 지켰다. 집으로 돌아온 뒤 어머니는 이만 학교에 가 보라 했지만 나는 갈 생각이 없노라 답했다. 나의 아버지는 결국 그깟 학교 때문에 바다에서 스러져간 것이 아니었던가. 바다. 바다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그 좁다란 방을 빠져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나는 잠시 다녀올 데가 있다고 말한 뒤 무작정 뛰쳐나가 바다로 향하는 가장 빠른 버스를 탔다.


버스는 바다가 훤히 펼쳐진 도로를 막힘없이 달렸다.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바다를 멍하니 응시했다. 그러다 난데없이 호흡이 불규칙해졌다. 바다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자 호흡은 더욱 괴로웠다. 눈앞에 짙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나의 아버지를 삼킨 바다. 나의 든든한 품을 한 입에 해치운 바다. 나의 은신처를 단숨에 부숴버린 바다. 구역질이 났다. 그대로 뱃속을 깨끗이 비우자 육개장이며 수육의 파편이 드러났다. 이제는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없다는 사실을 거부하듯이 꾸역꾸역 밀어 넣은 것들이었다. 바다와 마주하고 나자 그제야 더 이상 도망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는 죽었다. 단순한 단어의 조합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온 몸에 와 닿는 생생한 어감이었다. 아버지는, 죽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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