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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1호. 2018. 0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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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소년, 도망치다
[1479호] 2018년 05월 09일 (수) 15:42:24 전북대신문 press@jbnu.ac.kr



바다에 다녀온 뒤 나는 참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좁은 방 안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그 냄새를 없애려고 섬유탈취제를 지나칠 만큼 뿌리고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새벽같이 일어나 걸었던 일들이 스쳐갔다. 예상대로 고등학교에서 사귄 친구들은 한 명도 빈소에 찾아오지 않았고 나 또한 학교로 돌아갈 용기가 없었다. 고작 연기나 해 가며 버텨야 하는 학교를 다니느라고 나는 아버지를 죽였다. 결국은 내가 아버지를 죽인 것이다. 어머니도 나 때문에 불안을 안고 살았다. 내 혈관을 타고 그것이 흐른다는 사실에 자꾸만 토기가 치밀었다. 방 안에서 참기름 냄새를 맡으며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죽였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어둠은 깊이를 더했고 아버지가 생생하게 살아나 나의 목을 졸랐다. 어머니는 매일 밤 주름이 늘어나는 얼굴로 방 안에 가만히 들어와 창가 쪽으로 돌린 나의 등을 한참 보다 잠자리에 들었다.



어느 날부터 어머니에게서 분 냄새가 났다. 그것은 향기롭다기보다 참기름 냄새와 섞여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에는 맡아본 적이 없는 냄새였다. 어딘지 불쾌한 느낌이었다. 어머니에게 비밀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래 시장에 가 보았다. 어머니는 여전히 김밥이 잔뜩 쌓인 가판대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나의 자그마한 어머니는 그 흔한 호객행위를 하는 법도 몰랐다. 나도 모르는 새 흘러나온 안도의 한숨을 그 자리에 두고 벗어나려는 찰나 빈소에서 보았던 남자가 어머니에게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는 그에게 환히 웃어보였다. 서글서글하게 웃는 남자에게 마주 웃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닌 것처럼. 두 사람은 미리 그려놓은 그림처럼 어울렸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분노가 치밀었다. 아버지가 바다에 잡아먹힌 지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잊히게 마련이라지만 너무 잔인한 것이 아닌가? 분노에 가득 찬 채로 집에 돌아와 이불을 펴고 누워 온 몸을 감싸 안았다. 그 상태로 눈을 꼭 감아보아도 어머니와 그 남자가 자꾸만 아른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누운 채 허공에 발길질을 했다. 선한 눈매를 가진 그 남자에게, 환하게 웃는 어머니에게 마구잡이로 소리 지르는 상상도 했다. 그들의 놀라 휘둥그레진 눈과 죄스러워 땅으로 내리꽂히는 눈빛이 생생했다. 벌써 ‘그들’이라고 묶어서 생각하는 스스로의 생각조차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나의 아버지는 고작 한 달도 안 되어서 기억 속에서 지워질 존재가 아니다. 적어도 한 평생을 바쳐 사랑한 여자에게서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직 성인도 되지 못한 십대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 남자는 속수무책으로 들이닥쳤고, 발그레한 뺨을 한 채 어설픈 분 냄새를 풍기는 어머니도 견디기 힘들어졌다. 그녀가 행복해 한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아버지의 최후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다. 칼로 마구 쑤셔져 치료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피를 철철 흘리는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물리적인 통증이 느껴졌다. 화들짝 놀라 거울에 벗은 몸을 비추어 보면 또 마냥 하얬다. 흉터도 없이. 결국 고통은 애틋한 마음을 잡아먹어 버렸다. 막 열아홉이 되었을 무렵 나는 빳빳한 주민등록증을 들고 집을 나섰다. 보나마나 내가 비운 자리는 그 남자가 금세 메울 터였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입 안의 여린 살을 짓씹으며 수십 번 다짐했다. 어머니의 지갑을 몰래 뒤져 꺼낸 돈으로 나는 무작정 더 큰 도시로 향했다.



도시의 밤은 어릴 때 먼발치에서 우연히 본 불꽃놀이보다 더 화려했다. 도시에 온 나는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해 무작정 소극장에 갔다. 표를 파는 사람에게, 그가 데리고 나온 극단의 배우에게, 배우가 투덜대며 연락하자 끌려나온 극단의 대표에게 나는 꾸며낸 사정을 말하고 도와 달라 빌었다. 잘 곳만 달라고, 청소며 자질구레한 일은 모두 하겠다고. 그 날부터 나는 매일 극장을 청소하고 배우들이 원하는 모든 잔심부름을 하고 불 꺼진 무대 위에서 잠을 청했다. 무대가 그리 크지는 않아도 관객들이 버리고 가는 쓰레기를 일일이 줍거나 유독 까탈을 부리는 배우들의 변덕을 맞추는 일은 섬세함을 요했다. 나는 때때로 쏟아지는 폭언과 히스테리를 고스란히 견뎠다. 그들이 자기도 모르게 나에게 익숙해지고 결국에는 길들여지기를 기다렸다. 결국, 그들은 나를 받아들였다. 나는 언제 구부렸냐는 듯 허리를 꼿꼿이 펴고 발성 연습을 시작했다. 그 동안에 십대 소년은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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