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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9호. 2018. 05.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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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토지조사 100년, 수탈의 역사를 따라가다]
일제수탈의 아픔…전군가도에 담긴 민족의 애환
비옥한 곡창지대 호남평야에 찬란한 문화 꽃펴
식량수탈위해 철도․도로 건설…문화재도 약탈
역사교육현장으로 재탄생한 식량수탈의 흔적
[1480호] 2018년 05월 16일 (수) 13:47:36 전북대신문 press@jbnu.ac.kr

   
▲일제강점기 대아저수지 공사(상)와 동산농장(하)의 모습. 가운데 인물은 동산조합장 친일파 임창평이다. 농어촌공사(대아저수지)와 동국사(동산농장) 제공

전주와 군산을 잇는 26번 국도의 본래 이름은 전군가도다. 우리학교 앞에서 시작해 군산으로 이어지는 전군가도는 한국 최초의 아스팔트 포장도로이기도 하다. 오늘날 국내에서 가장 긴 벚꽃길로 유명해졌지만 사실 전군가도는 가슴 아픈 식량수탈의 흔적이다. 식량수탈의 첫 단계였던 조선토지조사사업. 그 이후로 100년의 세월이 흘렀다. 전북대신문이 그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여는 말>


드넓게 펼쳐진 지평선, 노랗게 익어가는 벼, 국내 최대의 곡창지대 호남평야다. 후삼국시대 호남은 후백제의 중심이었으며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면서는 한반도 최대의 곡창지대로 자리했다. 호남평야의 중심에는 만경강이 굽이쳐 흐른다. 만경강 지류를 따라 전주, 익산, 김제가 형성됐고 찬란한 문화가 꽃폈다. 만경강을 따라 올라가면 나오는 고산에는 후백제 최초의 사찰인 봉림사가 있었다. 만경강 중류에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낚시를 즐기던 백구정이 있다.


만경강의 힘찬 물결은 일제강점기에 끊기고 만다. 조선 최대의 공사인 대아저수지 건설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만경강 상류에 수문을 세워 저수지를 만드는 작업으로 굉장한 규모였다. 대아저수지 등 농업관개시설이 식량의 수탈을 위해 건설됐으며 당시 일제는 조선을 식량생산기지로 만들 목적으로 산미증식계획을 수립했다.


1908년 일제가 김제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을 수탈하기 위해 건설한 전군가도. 도로를 따라 출발하면 곧 아파트들이 사라지고 평야 위에 세워진 공업단지가 나온다. 다시 10분간 달리다 보면 동산동이 보인다. 일제강점기 미쓰비시 기업 소유 동산농장의 소작농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오늘날 동산동이라는 지명은 당시의 동산농장에서 유래했다. 동산이라는 이름은 농장주 이와사키 야타로오의 호로, 일제의 잔재다. 동산동에서 전군가도를 따라 30분간 달리면 임피역을 만나게 된다. 일제강점기 군산 임피면과 서수면에서 생산된 쌀이 모이던 곳이다. 품질 좋기로 유명했던 서수면의 쌀은 일본 왕실로 들어갔으며 김제평야의 쌀은 대야면에서 모여 군산항으로 갔다.


전군가도를 따라 수탈당한 것은 쌀만이 아니다. 우리의 문화재 또한 장식품으로 전락했다. 대야면사무소에서 10분 거리에는 구마모토 별장이 있다. 여의도의 10배가 넘는 토지를 소유했던 일제강점기 군산 최고의 지주 구마모토의 별장이다. 후백제 최초의 사찰이었던 봉림사의 석탑과 석등 등이 구마모토의 별장 장식에 사용됐다. 해방 후 봉림사의 문화유적들은 오늘날 발산초등학교 교정에 전시됐다.


전군가도의 끝에는 군산항이 있다. 군산항에 도착하면 군산근대건축관이 눈에 들어온다.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이다. 일제강점기 근대화라는 명목으로 개인이나 기업이 대토지를 경영하는 지주제가 도입됐다.

 조선에 들어온 각종 금융기관은 대토지를 경영하는데 필요한 자본을 조달했다. 군산항을 통해 반출되는 쌀의 대금자금과 농지거래를 위한 대출 등의 업무가 조선은행 군산지점의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군산근대건축관에서 5분정도 걸어가면 옛 군산세관 건물이 나온다. 1920년대 조선-일본 간 관세가 사라지기 전까지 수탈된 쌀들은 이 세관을 거쳐 갔다. 군산항을 통한 일본의 쌀 수탈은 나날이 늘어갔다. 1933년에는 군산항으로만 국내 쌀 총 생산의 절반 이상이 일본으로 반출되기도 했다.


옛 군산세관에서 남쪽으로 걸어서 15분 거리에는 옛 일본식 근대가옥들이 있다. 과거 경술국치 이전 군산을 개항했을 때 일본인들의 거주지가 형성됐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부유층들이 이곳에 모여 살았다. 일본식 근대가옥의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한 것으로 유명한 히로쓰 가옥도 이곳에 있다. 일본인들이 거주하며 우리 문화가 꽃폈던 군산에 일본의 문화가 유입됐다. 히로쓰 가옥에서 8분 거리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처마와 대웅전 외벽에 달린 창문이 인상적인 일본식 사찰 동국사가 있다. 동국사의 앞뜰에는 불교 종파인 일본 조동종이 일제 식민지배에 앞장선 것을 사죄하는 참사문이 있다.


전군가도는 오늘날까지 전주와 군산을 잇는 국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전군가도의 한 줄기인 팔달로와 번영로를 중심으로 오늘날의 전주와 군산을 이뤘다. 식량을 수탈당했던 평야에는 공장이 들어섰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은 민족의 애환이 담긴 식량수탈의 역사 위에 세워졌다. 일제 토지조사사업이 완료된 지 100년, 가슴 아픈 일제의 식민통치 위에 오늘이 있다.


김도원 기자 albert972@jbnu.ac.kr
주연휘 기자 aquanee98@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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