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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6호. 2018.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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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주의 모습은?
[1480호] 2018년 05월 16일 (수) 13:48:13 전북대신문 press@jbnu.ac.kr

   
▲조선시대 전주의 지도

풍수지리에 따르면 건지는 하늘의 기운을, 곤지는 땅의 기운을 뜻한다. 조선시대의 전주의 북쪽에는 건지산이, 남쪽에는 곤지산이 있었다. 하늘의 기운이 북쪽을, 땅의 기운이 남쪽을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에서 전주읍성 앞으로 전주천이 흘렀다.


1789년의 전주는 인구수 1만 6694명으로 조선에서 5번째로 큰 도시였다. 당시 시내는 오늘날 풍남문부터 객사까지에 불과했다. 풍남문 뒤로 이어지는 풍남문 3길을 따라 완산경찰서에 이르면 그 건너에 전라감영이 있었다. 전라감영은 조선시대 전라감사가 근무했던 관청이다.


전통적인 전주의 경계는 지난 1907년 무너졌다. 일제가 설치한 조선통감부는 폐성령(廢城令)을 내렸기 때문이다. 조선팔도의 옛 읍성들을 모두 허물어졌다. 전주를 감싸고 있던 전주읍성도 풍남문만 남기고 이때 파괴됐다. 전주천 너머에 살던 일본인들은 풍남문을 기준으로 서쪽에 자리 잡았다. 이에 조선인들은 전주를 지키기 위해 풍남문 동쪽에 한옥을 짓기 시작했다. 그 수는 600채에 달해 오늘날의 한옥마을이 됐다.


지금의 전주시청 자리에는 전주역이 들어섰다. 지난 1914년 개통된 전라선은 오늘날의 기린대로를 따라 여수로 이어졌다. 지난 1914년 10월부터 여객운송을 시작했으며 12월부터는 화물운송을 시작했다. 사설철도로는 부산초기전기선에 이어 가장 오래된 철도다. 당시 전라선은 각종 군수물자와 병력 수송에 이용됐다.

 

김도원 기자 albert972@jbnu.ac.kr
주연휘 기자 aquanee98@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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