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명인을 만나다- 35 고수환 악기장] <br> “변함없이 맑은 소리 내는 가야금을 만들고파” - 전북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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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7호. 2018.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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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명인을 만나다- 35 고수환 악기장]
“변함없이 맑은 소리 내는 가야금을 만들고파”
어렸을 때부터 분필, 나무뿌리 도장 파며 놀아
삭힌 오동나무와 품질 좋은 누에…제작 공들여
가야금 비롯한 현악기 박물관 열고 싶은 소망
[1480호] 2018년 05월 16일 (수) 14:16:55 전북대신문 press@jbnu.ac.kr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손재주


까맣게 때 탄 손, 손톱 밑에 낀 자잘한 나무 톱밥들이 지난 세월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간 나무를 만지며 느껴왔을 손 주름은 지난날들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통나무 조각들과 이곳저곳 톱밥들이 즐비한 작업실은 오랜 흔적이 느껴졌다. 작업실뿐만 아니라 방 안에도 자신이 만든 악기를 두고 매일 연주하는 고수환 명인(70). 다른 이들은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어갈 1950년대 초, 명인은 비단옷에 구두를 신고 가죽가방을 들고 다녔다. 풍족한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낸 그였다. 어느 날 갑자기 집안이 몰락해 중학교 진학이 어려워졌다. 가까스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명인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한문공부를 시작했다. 천자문, 사자소학, 계몽편 기본을 배우고 시장에 가서 3500자 한문책을 사다 스스로 공부했다. 서당에 다녀온 후에는 뒷산에 가서 놀았다. 전쟁 직후 민둥산은 그의 놀이터였다. 단단한 땅에서 자란 똬리 모양 뿌리를 캐다 작은 칼로 깎고 다듬으며 달팽이 같은 동물, 곤충 형상을 만들기도 했다.


동네에 사방공사나 조림사업을 한다는 소식이 돌면 명인의 손길은 바빠졌다. 공사장 인부들이 하나 같이 도장이 필요하다며 그를 찾았기 때문이다. 공사장의 일당을 받기 위한 문서에 필수적으로 도장을 찍어야 했던 당시, 그는 손재주로 여러 사람에게 도장을 파주기 시작했다. 7살 어린 나이였지만 민둥산 상수리나무를 꺾어 연습하고 분필에다 파며 혼자 맹연습했다. 때로는 시장에 가서 도장 파는 사람 앞에 가만히 앉아 자세히 관찰하며 도장 파는 기술을 익혀갔다. 정성 어린 도장을 건네받은 동네 어른들은 고마움의 표시로 명인에게 용돈을 주기도 했다.

   
▲ 명인 작업대


▲공방에서 운명을 만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친누나와 함께 가야금 공방에 들렀다. 가야금을 본 순간 명인은 눈을 떼지 못했다. 매끄러운 자태와 손가락으로 줄을 튕기면 나는 맑은소리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띠톱으로 줄을 매 나무를 깎고 구멍 하나도 끌로 찍어 뚫던 시절, 그는 무엇보다 가야금을 온전히 손으로 만든다는 데 큰 매력을 느꼈다. 그 이후 명인은 가야금 제작 과정을 배워보기로 마음먹었다. 황방산 너머 있는 제작 터까지 버스는 하루 한, 두 대에 불과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거쳐 잔심부름을 하러 가는데도 명인은 즐거웠다.

 
가야금 제작 공부는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길게는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쉬는 날은 두 달에 한 번이었고 일은 열심히 해도 표시가 나지 않았다. 선생님 없이 혼자 일을 할 때는 놀고 있는 것처럼 보여 괴롭기도 했다. 선생님의 따끔한 말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일을 마친 밤마다 참을 인 한자를 마음으로 수십 수백 번 되뇌며 쓰디쓴 나날을 보냈다.


군대를 제대한 명인은 본격적으로 가야금을 제작할 뿐만 아니라 직접 연주해야겠다고 다짐 했다. 본인이 직접 연주해 가야금의 음정을 알아보고 변함없이 맑고 투명한 소리를 내는 가야금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악기를 손보러 공방에 놀러 온 황병주 스승에게 어려운 사정을 얘기하며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정성을 다해 만든 좋은 가야금 하나를 스승께 드리는 것으로 레슨비를 대신했다. 그러고는 일주일에 3일을 꼬박 스승의 작업실을 찾아가며 가야금 연주를 배워나갔다.



▲남다른 품질, 남다른 정성


힘들게 배워온 그의 가야금에는 특별함이 있다. 바로 삭힌 오동나무와 품질 좋은 누에고치에서 뽑은 실이다. 돌 틈과 자갈땅에서 힘겹게 자란 오동나무는 나이테가 촘촘히 박힌다. 촘촘한 나이테와 적절한 두께를 지닌 나무여야 비로소 가야금 울림 판을 만들 가치가 있다. 일반적으로 나무는 수분의 쏠림이 있기에 오동나무를 눕혀 그 자리에서 1년을 묵힌다. 이후 나무를 용도에 맞게 켠 다음 6년을 더 말린다. 가야금 틀을 잡아가기까지 그는 수천 수 만 번의 깎기를 거듭했다. 나무를 자연건조를 시키되 비에 젖고 눈도 맞으며 인고의 세월을 견딘다. 부식된 부분은 깎아내고 남은 부분으로 울림 판을 만든 뒤 실내에서 3년간 삭힌다. 아무리 기술이 좋다 해도 나무를 건조하지 못하면 나무가 뒤틀리며 소리도 변하기 때문이다.


그의 가야금 줄 또한 좋은 누에고치에서 출발한다. 누에고치는 봄 뽕잎 먹고 자란 춘잠과 가을 뽕잎 먹고 자란 추잠 가운데 윤기 좋은 춘잠을 쓴다. 실공장에서 누에고치 실을 뽑아 모아 실타래를 만들면 명인은 이를 다시 풀어 감는다. 옛날에는 손으로 직접 돌렸지만 요즘은 기계로 실을 감으며 이를 다시 방망이에 감아 물에 적시고 수증기를 삶는다. 실이 응고돼야 줄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또 다시 감아 줄을 만든다. 명인의 가야금을 쓰는 연주자들은 음이 변하지 않는다며 호평한다. 어떤 이는 자신만 알고 싶은 악기라 다른 연주자에게 알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배우는 마음이다. 100% 완벽한 악기는 없다고 생각하며 무거운 책임감으로 임한다.

   
▲ 명인 작품들


▲60년 가야금 세월, 좋아했기에 즐거웠다


독특하게도 명인은 가야금을 만들고 바로 팔지 않는다. 가야금 소리를 검증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만들자마자 가야금을 바로 파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며 “실내 온도를 맞춰놓으며 고급 가야금은 3개월까지도 연주하며 때를 기다린다”고 전했다. 그러니 그의 가야금은 재료 준비부터 최종 마무리 단계까지 10년이 걸린다. 명인은 자신이 만든 가야금이 좋은 연주자를 만나 좋은 소리를 울리고 그것에 사람들이 감동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는 바람을 전했다.


좋아서 시작한 가야금이었지만 순탄치 않은 날들도 있었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 어려운 시절을 보내야 했고 결혼을 하기 까지 난관에 부딪치기도 했다. 요즘은 대량생산된, 질 낮은 중국산 가야금이 국내로 수입되고 모든 가야금의 제작과정이 기계화돼 악기장들의 설 곳이 좁아졌다. 이전과 달리 급변한 상황에 명인은 골머리를 앓아야했다. 또한 그는 암묵적인 가야금 판매 시장 역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60여 년을 가야금과 함께해온 명인. 그는 ‘내년에 조금 더 나아질 거야’라는 마음으로 살아왔다며 지난날들을 회상했다. 명인은 앞으로 현악기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자신이 만든 악기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악기도 모으고 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악기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예술과 전통을 꾸준히 이어가고픈 작은 소망이 있다. 명인은 “내가 가야금 만드는 게 참 재밌고 즐거웠기에 업으로 삼을 수 있었다”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면 좋겠다”고 미소 지었다.


유경희 기자 ace@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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