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명인을 만나다-36 조충익 선자장]
“바라만 보아도 가슴 시원한 부채 만들고 파"
[전북의 명인을 만나다-36 조충익 선자장]
“바라만 보아도 가슴 시원한 부채 만들고 파"
  • 전북대신문
  • 승인 2018.05.3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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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다 문득 본 태극문양에 마음 뺏겨 입문
표준 작도법, 수성 접착제 개발…제작 힘써
예술품으로 승화하고자 창작기법 연구할 것



▲자신의 적성을 찾기 위해 전주로


바람 부는 동문 길을 따라 걷는다. 동문 사거리에 이르면 푸른 잔디가 펼쳐진 공간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입구를 따라 들어서면 옛 정취 물씬 풍기는 태극선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형형색색 태극선 작품이 전시돼있는 공간, 그곳에서 조충익 명인(71)을 만났다.


시골에서 태어난 명인은 산 넘고 물 건너 학교에 다녔다. 학교까지 20리 길을 걸어 다니던 명인은 2학년 때야 비로소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또래 친구들과 달리 잔병치레가 많고 몸이 허약했기 때문이다. 5년간 학교를 다녔지만 수업일수는 고작 절반을 채울 정도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시골에서 농사짓기조차 힘들었던 명인은 집을 떠나 전주로 향했다. 그는 다른 사람 밑에서 심부름하고 서점에서 책을 팔며 생활해나갔다. 일한 품삯으로 밥을 먹으며 심부름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점차 세월이 흘러 독립할 나이가 되자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참 골똘히 생각하던 명인은 잊고 있던 손재주를 떠올렸다. 초등학교 앞이나 초등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 갑판을 펼쳐두고 기념품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공인된 기념품은 아니지만,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기념품을 만들고 싶어 이것저것 구상했다. 당시 학생들이 많이 쓰는 연필꽂이나 유명 철학자의 격언 액자를 주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시간표를 치장할 장식이나 크리스마스엔 크리스마스 카드를 직접 제작해 팔기도 했다.

▲ 명인 작업대

그러던 어느 날 옛날 전주 우체국 길 앞에 특산품을 들른 그는 잠시 멈춰서 부채를 바라봤다. 가게 앞으로 태극선이 줄지어 펼쳐진 광경을 보고 한참을 눈을 뗄 수 없었다. 우리나라 고유마크이자 전주의 특산품인 태극문양이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그간 여러 기념품을 팔아왔던 명인은 태극선을 보며 ‘한번 해보자’는 생각을 품게 됐다. 28세 무렵이었다. 부채를 배우고 싶던 그는 무작정 전통시장의 부채 가게를 전전했다.


▲스스로 공부, 표준작도법 탄생

 
막상 가게에 가면 도중에 하던 작업을 멈추는 명인들이 많았다. 당시 다른 사람들이 부채 제작을 따라 배울까 자신들의 비법을 전수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었던 명인은 스스로 공부해나가야 했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부채가 아닌 명인의 고민이 담긴 부채를 만들 수 있는 계기였다. 시중에 파는 태극선을 살펴보며 대나무 살이 엉터리고 태극문양의 비율도 제각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특별한 제도법이 없어 손 가는 대로 태극문양을 그렸기 때문이었다. 이에 명인은 부채 기본인 대나무 살부터 한지, 비단 등 재료를 찾아보고 기존에 판매되는 부채를 뜯어보며 제작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태극선의 태극문양도 그의 절실한 고민의 결과였다. 과거에는 다른 사람들의 태극선을 스스럼없이 본 따거나 태극문양 샘플 하나를 복사하면 그만이었다. 그리더라도 원의 반지름을 중심으로 원을 계속해서 돌려 그릴 뿐이었다. 태극선의 도면을 그리고 컴퍼스로 똑같이 비율을 맞춰야 했지만 실질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태극선 문양 꼬리가 길기에 부채를 움직여가며 그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명인은 비율을 살린 태극문양을 그리고자 태극선의 표준 작도법 개발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는 태극선 비율을 3등분으로 나눈 기존 작도법에서 더 나아가 6등분으로, 12등분으로 나누고 마지막으로 24등분으로 나눠 그려 마침내 표준 작도법이란 결실을 보았다.

좋은 대나무 부챗살을 고르는 게 명인 표 부채의 첫걸음이다. 대나무는 늘 푸르기에 장수하는 나무로 알고 있지만 대체로 대나무는 5~6년을 산다. 2년이 안 된 대나무는 덜 여물어 물렁거리고 6~7년 된 대나무는 섬유질이 굳어 잘 쪼개지지 않는다. 때문에 3~4년 산 튼실한 대나무를 골라 부챗살을 만든다. 뿐만 아니라 겨울에 대나무를 베야 하는데 여름에는 나무를 베면 수분과 당분이 많아 벌레가 파먹기 때문이다. 부채는 시작단계부터 통상 6개월이 걸리지만, 난이도가 높은 부채는 더 오랜 시간을 들이기도 한다. 이전에 명인이 만든 공작부채 경우 일일이 다듬은 부챗살이 8000개에 이르며 작업 기간 또한 수개월을 쏟아야 한다.

그는 ‘오래 사용해도 변함없는 부채’를 만들기 위해 제작법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여름 장마철에는 부채에 습기가 스며들어 곰팡이가 자주 피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명인은 자신만의 접착제를 개발해냈다. 기존 밀풀의 약한 접착력을 보완하고 대나무 살과 종이가 잘 붙을 수 있도록 수성접착제를 새롭게 만든 것이다. 오랫동안 한 가지 일에 열심히 몰두하다보니 사람들의 신뢰를 얻고 입소문도 났다.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오며 명인의 부채를 찾는 이들이 점차 늘어갔다. 그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묵묵히 했을 뿐”이라며 “다른 이들의 관심과 이목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그는 지난 1982년 아시안게임 때부터 태극선을 비롯한 다양한 부채 작품을 납품하며 우리나라 고유 문양을 전파하고 있다.


▲부채는 예술작품이다

더위를 식히고자 부채 쓰는 시절은 지났다. 선풍기가 쓰이고 에어컨이 등장하며 부채의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간편하게 쓰기 좋은 작은 선풍기가 유행을 끌고 축구, 야구경기장에서 조차 대량 생산한 PVC 부채가 확산됐다. 전통 부채는 점차 설 곳을 잃어갔다. 전통부채의 존재가 희미해지는 게 안타까웠던 명인은 2000년대 초부터 부채를 예술작품으로 승화하고자 했다. 그는 잘게 쪼갠 다양한 굵기의 대나무를 구부려 휘거나 잘라 부채에 붙이기 시작했다. 대나무를 활용한 회화기법을 창작한 것이다. 크기가 다양한 대나무 조각을 서로 이어 붙여 학이나 소나무를 만들고 이를 부챗살 위에 올려 새로운 부채로 탄생시켰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부채, 바라만 보아도 가슴 시원한 부채를 만들고자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더욱 많은 사람들과 부채를 나누고자 지난 2014년 명인은 부채박물관을 열었다. 예전부터 수집해온 부채들을 전시하고 자신이 그간 만들어온 태극선을 선보여 시민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인 혼자 박물관을 운영하기에 여력이 부족했고 더군다나 사람들의 관심이 적어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는 “국가사업으로 전통예술품을 지원해 많은 이들이 알 수 있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 명인 작품들
 

앞으로 그는 이제껏 해보지 않은 제작 기법을 연구하며 새로운 시도를 해볼 계획이라고 한다. 부채와 함께해온 44년의 세월이지만 아직도 색다른 부채를 보면 마음이 끌린다. 이제까지 크고 작은 어려움이 셀 수 없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힘든 시절을 겪었기에 한층 더 성장하고 성숙해질 수 있었다며 지난날들을 회상했다. “부채는 나의 영혼”이라는 조 명인. 그의 정성 담긴 부채로 사람들의 영혼은 따뜻, 마음은 시원해지길 바라본다.

유경희 기자
ace@jb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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